|
[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는 지역에 또 다른 과제를 남긴다. 대학 시절을 제외하면 평생 경북 안동에서 지낸 조석옥(66) 씨는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건강한 지역사회 구축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수도권 중심인 한국에서 이번과 같은 정권발 위기가 반복되더라도 지역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 위기를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석옥 씨는 국가적으로 삼권분립을 요체로 하는 공화주의를 복원 및 강화해야 하고, 지방자치 차원에서도 지방정부와 의회가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도 길러나가야 한다고 여긴다.
정체된 안동 지역사회
시민사회 덕에 환기
시민사회 역량이 윤석열 퇴진 집회로 이어져
석옥 씨에게 안동은 다소 답답한 도시였다. 정서적으로나, 사회 변화에 대한 무감각한 분위기나, 그리고 특히 정치적 다양성 면에서 그랬다. 현대판 세도정치로도 언급되는 안동 김씨, 안동 권씨의 국회의원 독점이 그 사례다. 정치적으로 다양하지 못한 지역사회에서 석옥 씨는 권력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이 지역의 전반적 분위기로 여겼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안동에 거주하는 젊은 세대도 답답하게 느끼는 듯 했다. 그들은 대구경북의 기성세대와 특별히 구분되는 성향을 갖는다고 하긴 어렵지만, 기성세대와 사회적 위치는 다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친구들과 외지에 갔을 때 대구경북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을 받곤 했다고 한다. 대구경북 출신 인물이 사회 요직을 차지한 역사가 있어 그러한 시선을 인정하더라도, 자녀들은 자신들이 대구경북 덕을 본 적 없다고 억울해하며 기성세대와 구분 지었다.
지역사회의 여건은 호락호락하진 않았지만, 석옥 씨는 악조건 속에서도 각자 활동에 매진하는 안동 시민사회가 그나마 답답한 안동의 공기를 환기하고 있다고 여긴다. 시민사회 운동에 지역의 밀착된 관계망은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했다. 여러 단체 간 관계 형성이 잘 되어 있고, 이들이 합심하면 익명성이 큰 대도시에 비해 목소리를 내기에도 유리한 조건이 된다. 이들이 모여 결성한 ‘열린사회를 위한 안동시민연대'(안동시민연대)는 실제로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부터, 지금의 윤석열 퇴진 광장을 꾸려가는 주축이 됐다.
석옥 씨는 안동시민연대가 꾸리는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촉구 시민문화제’에 꾸준히 나서고 있다. 2022년 교직에서 퇴직한 직후부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지역 활동가들을 뒷받침하고 싶다는 의지로 지역에서 여러 행동에 나섰던 차였기에, 시민문화제에의 발걸음도 자연스러웠다.

비상계엄 선포는 충격적이었다. 석옥 씨는 자욱한 최루탄이 떠올랐다. 1980년대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1980년 전두환 쿠데타 당시 시위에도 나섰기에, 그때의 아수라장 같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답답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듯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후퇴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걸 보며, 80년보다는 나아갔다는 안도감도 이어졌다.
안동에서는 1987년 6월항쟁의 역사도, 그리고 1979년 안동카톨릭농민회 소속 오원춘 씨 납치로 인한 저항 운동 또한 전개된 바 있다. 가깝게는 박근혜 퇴진 운동 또한 진행됐다. 이러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하며, 석옥 씨는 적어도 군경이 이제는 시민을 함부로 위협할 수는 없는 사회가 됐다고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내란 사태가 4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초반부의 안도감은 사라졌다. 분명 정부의 퇴행에 맞선 국회의 대응은 신뢰감을 줬다. 하지만 시일이 흐르면서 국회 내에서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헌법재판소 또한 미적대는 모습을 보이자 마음이 지쳐갔다.
안동 시민문화제에 발걸음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초반 집회에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였으나, 시일이 지나며 시민사회와 정당인의 비중이 커졌다. 2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안동문화의거리를 가득 채웠으나, 이제는 50여 명으로 규모도 축소됐다.
석옥 씨는 꾸준히 집회에 힘을 보태면서, 윤석열 파면 이후 건강한 지역사회를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됐다. 석옥 씨가 생각하는 건강한 지역사회란,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지역 의회를 기반으로 한 정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파면 이후, 시민사회, 지역 정치 역량 길러야
“이번 시민문화제는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꾸려가고 있어요. 더불어민주당, 녹색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도 힘을 크게 보태고 있죠. 우리 사회에는 의회를 불신하는 여론이 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의회만큼 투명한 곳이 없어요. 지금 상황에서 의회만큼 일하는 곳도 없고요. 뭐 하는지 다 알잖아요. 민주당 소속 시의원도 집회에 나오고 있고요. 녹색당이나 다른 진보정당 당원들도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고요. 이런 정치조직이 지역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정치조직과 시민사회가 좀 더 교류하고 단단하게 지역사회를 꾸려가야 해요.”(석옥 씨)
석옥 씨는 특히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건강한 지역사회 구축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도 설명한다. 중앙집권화된 한국 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내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지역사회가 단단하게 민주적 역량을 유지하고 있어야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옥 씨는 시민들에게 의회에 대한 불신은 결국 독재자의 이익이 된다며, 시민에게 정치 불신을 내려놓고 오히려 정치에 참여하고 관심을 높여가자고 제안했다.
“극우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시대죠. 유럽도, 미국도 그래요. 우리도 마찬가지고요.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만은 흔들리지 않고 버텨줄 수 있어야 해요. 지역 의회와 지역 단체가 역할을 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면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문재인 정부 때도 대통령이 인사를 통해 뭔가를 바꾸려고 하고, 적폐를 청산하고 검찰개혁 한다고도 했는데, 그런데 정작 검찰개혁은 제대로 안 됐죠. 지금 보면 알잖아요. 권력이 뭔가를 해결하는 게 아니고, 의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해서 제왕적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해요. 권력은 분산해야 하고, 입법부와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는 그런 공화주의적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이번 내란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아요. 지방에서도 의회가 제 기능을 해야죠.”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