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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곳, 반월당 지하상가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하상가 운영권이 민간에서 대구시로 넘어오면서 조례를 제정했는데, 이중 ‘수의계약 우선권을 수분양자(임대인)에게 준다’는 조항을 두고 실제 영업 중인 상인들 반발이 거세다. 이곳 점포 403개 중 최소 85개가 아직 합의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를 중재할 의무가 있는 대구시와 시의회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05년 삼성물산 등 6개 민간 시행사는 도시철도 2호선 지하상가를 조성해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그 대가로 20년간 사용권을 얻었고, 올해 2월 말로 그 기한이 종료되면서 권리가 대구시로 위임됐다. 3월 1일부터는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이 위탁 받아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수분양자’ 우선한 대구시 조례
문제는 조례다. 지난해 12월 16일 열린 제313회 대구시의회 정례회 제4차 본회의에서 반월당, 봉산, 두류 등 3개 지하상가의 실영업자와 상가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구광역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가 제정됐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이해당사자 간 의견을 조율해 온 대구시는 ‘실영업자와 수분양자가 합의한 경우 5년간 한 차례만 대구시와 임대차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원칙대로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조례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대구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가 조례를 수정하면서 ‘일정기간 내 두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종전 수분양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부칙에 포함해서 수분양자에게 수의계약 우선권을 부여했다.
본회의 3일 전인 12월 13일 열린 건설교통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대구시와 시의회는 지금과 같은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걸 예상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분양자 중 다수가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노후 자금을 투자한 것이고, 20년 부여된 사용권이 만료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최근 5년 사이 분양권을 매매한 이들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수분양자 민원을 반영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명확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정회를 통해 수정한 부칙이 담긴 안을 마련해와 의결했다.
수분양자와 상인 간 갈등···대구시는 뭐하나
상인들은 수정된 조례안에 대해 “수분양자의 피해보상에만 집중하면서 영세상인이 입찰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결성된 반월당지하상가 영세상인 생존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 설명에 따르면 403개 점포 중 대략 13%만이 수분양자와 실영업자가 같다. 나머지 87% 점포의 수분양자는 월세를 받는 임대인이다.
비대위는 지난 2월까지 조례안에 언급된 사용료율표에 준하는 합의금(권리금)으로 실영업자(상인)와 수분양자 간 합의가 이뤄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의계약이 이뤄지는 과정이었던 2월 초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대구시설관리공단)이 수분양자와 상인들에 보낸 공문에서 ‘현재 수분양자 및 실영업자 본인 명의로만 신청할 수 있다’는 기준을 ‘배우자, 직계존비속 및 그 배우자까지 명의변경 가능하다’고 변경 공지하면서 수분양자들에게 더 나은 조건이 마련됐다. 때문에 합의 의사를 밝혔던 수분양자들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합의금을 높게 요구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현재 실영업자인 상인 중 약 50%는 수분양자와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대구시 조례에 명시된 ‘수분양자에게 우선권 부여’, 대구시설관리공단의 공문에 명시된 ‘가족까지 명의변경 가능’ 조건이 상인들에 불리한 조건이 되면서 나머지 50%는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대위에 속한 상인 37명은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수분양자의 합의금 요구를 거부하며 법적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이들 중 일부는 계약기간이 끝나 불법 무단점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보증금마저 돌려받지 못할 걸 우려해 영업을 포기하고 철수한 사례도 다수 있다. 지난달 2일에는 한 상인이 지하상가에서 가스를 폭발시키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상인은 평소 대구시와 시설공단의 불공정하고 일관되지 않은 행정으로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에 답답해 했다고 전해진다.
상인 비대위, “해결될 때까지 집회 이어갈 것”
비대위는 대구시에 “수분양자와 실영업자가 조례안에 나와 있는 사용료율표를 적용해 재합의를 할 수 있도록 중재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대구시의회에서 조례가 개정될 때까지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황정희 비대위 부위원장은 “수분양자들은 자기들 피해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 나중에 들어온 수분양자들 입장에선 큰 손해를 봤다는 건데 그 비용을 왜 우리에게 청구하는가“라며 ”‘공유재산법에 따라 사고팔면 안 된다’거나 ‘2025년에 대구시로 운영권이 넘어간다’고 명확하게 고지하고 거래를 감시했어야 할 대구시와 시행사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합당한 범위 안에서, 대구시가 중재를 위해 제시한 사용료율표에 따라 합의금을 내겠다는 거다. 시에서 책정한 감정평가액에 기초한 자료가 있는데 왜 그 이상의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그걸 시는 묵인하는가“라고 말했다.
우원구 대구시 건설산업과장은 “반월당 지하상가는 대구시로 운영권이 넘어오면서 공유재산이 됐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 다만 작년에 타 도시 사례를 분석하고 현장도 가보면서 조례를 통해 기존 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며 “2023년부터 민간사업자, 상인회와 면담을 하고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고지했다. 이해관계자가 여럿이라 풀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경실련은 지난달 7일 보도자료를 내 “대구시가 수분양자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위법, 부당한 일을 자행하고, 수분양자와 전대차 관계에 있는 실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거라 밝혔다.
대구경실련은 “대구시의회는 무상사용·수익허가 기간이 만료되어 지하상가 점포에 대한 권리가 소멸된 수분양자에게는 엄청난 특혜를 부여하고, 전대차로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 상인에게는 지하도상가에서 쫓겨나게 한 것”이라며 “반월당 지하상가를 관리하는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은 여기에 더해 반월당 지하상가 점포의 양도를 허용한다고 한다. 공유재산 사용권의 양도는 지하도상가의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 불법 전대를 조장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