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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보여줘 우리 길을 / 달라질 이 세상을
이 노래를 완성해 부르면 봄이 올 거예요’
김세윤(24) 씨가 든 손피켓 속 문구는 뮤지컬 <하데스타운> ‘웨딩송’, ‘wait for me’ 넘버 가사 일부를 차용했다. 손피켓엔 촛불과 꽃 한송이도 그려져 있었다.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하디스와 페르세포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기후위기, 자본주의, 독재, 노동운동, 연대, 사랑 이야기 등을 메시지로 담았다고 세윤 씨는 설명했다. 하데스타운은 2021년 초연, 지난해 재연된 작품이다. 세윤 씨는 지난해 가을에는 부산에서, 서울과 대구에서 초연을 각각 관람했다.
세윤 씨는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함께 희망을 노래하고, 뒤틀린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면 우리의 잃어버린 몸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는 가사”라며 “우리도 ‘봄’을 찾아야 하지않나. 우리가 그 봄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광장에서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다.

‘벽에 틈이 있어 / 기다려 촛불 든다’
예전에 광장에 들고 나온 또 다른 손피켓도 이 뮤지컬에 나오는 넘버 가사를 활용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쭉 살아온 ‘대구토박이’ 세윤 씨는 “흔히 대구경북 지역을 묶어 TK를 콘크리트라고 한다. 큰 벽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틈’이 있고, 그 틈으로 촛불을 드는 이들이 있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뮤지컬 덕후’ 세윤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부조리에 분노하고, 정의감이 내재된 사람으로 자신이 성장하게 된 건 이런 작품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세윤 씨는 “어릴 때부터 ‘덕후’로서, 만화책이든 그냥 책이든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접했다”며 “작품 속 주인공은 주로 정의로운 캐릭터로 나온다. 신념을 가지고 정의롭지 않은 일에 맞서는 상황에 이입을 많이 하게돼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감수성, 약자 감수성들이 층층이 쌓인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으로 지금 시국과 어울린다면서, 뮤지컬 <박열>을 꼽았다. 이준익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된 적 있는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 박열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민중이 눈 뜨면 권력이 이기는 세상은 끝나리라’는 뮤지컬 박열 넘버인 ‘자유’의 가사가 탄핵 정국 속 광장에서 등장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세윤 씨도 예술업계 종사자다. 클래식 전공자로 졸업 후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 세윤 씨는 “저는 태어나서 기억하는 모든 순간에 크고 작게 예술에 관심을 가져왔던 사람”이라며 “내가 사랑하는 작가와 배우, 종사자들이 거기에 충분히 오르거나, 올랐던 사람들도 있을 것인데, 그런 이유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면 슬프고 힘든 일”이라고 짚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적었던 그
12.3 내란 사태 후 정치의 중요성 인식
내란 사태 이후 일상의 균열과 공포
‘덕후’로서 여성·퀴어·동물·환경·복지·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사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주변 지인들과도 정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세윤 씨는 “일상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대통령 선거를 하면 잠깐 관심을 가지는 정도”라며 “오히려 계엄사태가 터진 다음날 정치 이야기를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정치가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느꼈고, 정치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됐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이번 내란 사태로 일상의 균열과 공포를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세윤 씨에게 계엄이란, ‘일상에 가해진 타격’이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12월 3일 밤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던 평범한 날이었다. 집에서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던 중에,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가족 중 누군가 ‘계엄 터졌다’고 알려줬다. ‘계엄’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세윤 씨는 ‘계엄이 뭐지?’라고 순간 생각했다. 영화나 교과서에서나 보던 단어가 현실 세계에서 등장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잠깐 멍해졌다. 머릿속을 떠다니던 물음표를 해소하기 위해 뉴스를 켰다.
세윤 씨는 “그 계엄이 이 계엄이 맞았다. 정말 뜬금없다는 생각과 함께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엄사태가 터진 이후 불안감이 계속 따라다녔다”며 “보려던 영화도 한동안 보지 못했다. 계엄사태를 인식하던 그 순간에 느낀 공포가 다가와서 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세윤 씨는 윤석열의 당선 때부터 불안과 절망을 느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 새벽 세윤 씨는 혼자 방에서 눈물을 흘렸다. 인생 첫 대통령 선거였는데, 절망감을 느꼈다. 세윤 씨는 “혐오를 내세웠던 사람이, 혐오정치가 이겨버렸다는 생각에 세상이 어디로 갈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세윤 씨에게 혐오 정치인의 승리는 짧은 커트 머리나 특정 복장 때문에 남성들로부터 ‘페미냐’는 공격의 대상이 되던 자신을 더 위협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혐오 정치가 ‘계엄’까지 할 줄은 몰랐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12월 7일부터 대구시국대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서너 번 빼고는 대부분 출석도장을 찍었다. 세윤 씨는 2월 두 번, 3월 평일 서너 번 빼고는 다 참석한 것으로 기억한다.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이번주와 지난주 집회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지만, 어쩌다 집회에 못 간 날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세윤 씨는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집회에 열심히 나가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컨디션 관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면서 “집회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숨쉬기’ 위해서다. 이렇게 라도 안 하면 버티기가 힘들다. 행동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간다”고 밝혔다.
특히 광장은 ‘혼자가 아닌’ 것을 느끼는 곳이다. 혼자 광장에 온 세윤 씨는 이곳에서 ‘우리들’을 만났다. 세윤 씨는 “광장에서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거나, 외로운 싸움을 했던 이들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며 “스스로 그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 답게 사는 것에 위협을 받지 않길 바라고 있다. 일상 곳곳의 혐오나 부정의한 세상이 탄핵 이후엔 반드시 달라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세윤 씨는 탄핵 이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광장을 통한 관심사를 이어갈 단체 가입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는 어디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광장을 통해서 조금씩 인연을 닿은 곳들 중에서 가입을 하려고 살펴보고 고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 세윤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드시 탄핵이 될 거라는 믿고있다. 세윤 씨는 “탄핵 선고일이 계속 미뤄져서 솔직히 지치고 힘든 마음이 들었다. 뭔가 해야 될 일도 손에 안 잡혔다. 그래도, 그래도 가장 어두운 밤 뒤에는 꼭 새벽이랑 해가 떠오르듯이 지금도 한 새벽 4, 5시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한다. 무조건 탄핵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