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늘봄실무사 퇴직 속출 이유···“도저히 1명이 감당 못할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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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이게 맞나’ 고민했다. 늘봄지원실장님은 여러 학교를 겸임해 일주일에 하루밖에 안 온다. 어디 물어볼 곳도, 기댈 곳도 없다. 혼자 동떨어진 섬에서 일하는 기분이다.”

    “정규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의 안전과 교육은 모두 늘봄학교로 내모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장이 상주하지 않으니 오롯이 실무사 혼자 껴안고 간다. 현장의 고충을 모르고 내려오는 공문과 정책이 너무 많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대구지부가 이달 초 대구교육청 소속 늘봄교무행정실무사(늘봄실무사) 1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응답 중 일부다. 이 설문에선 응답자 92.2%(141명)가 과도한 업무량으로 건강 이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노동조합은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교육청에 “과도한 업무량을 분담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추가 채용하라”고 촉구했다.

    ▲26일 오전 ‘늘봄교무행정실무사에게 모든 업무 전가하는 무책임한 늘봄학교 졸속행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학비노조 대구지부)

    늘봄학교는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학생을 돌봐주는 제도로, 지난해 전국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 후 올해부터 모든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대구교육청은 올해 1월 1일부터 이를 담당할 인력인 늘봄실무사 237명을 신규로 채용했다. 하지만 학비노조 대구지부에 따르면 기존 방과후업무부장, 돌봄부장, 교무행정실무사 3명이 하던 업무를 늘봄실무사 혼자 감당하게 되면서 퇴사자 증가, 건강 이상 등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늘봄지원실 책임자격인 늘봄지원실장은 1명이 2~3개 학교를 겸임하는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늘봄실무사의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학비노조 대구지부와 대구교육청 설명을 종합하면 올해 1월 채용된 237명의 늘봄실무사 가운데 12.7%인 30명이 퇴직했다. 대구교육청은 “1월부터 3월까지는 수습기간이며 자녀 건강, 돌봄업무로 오인 등 개인 사정으로 사직한 사례도 있다”며 모두 업무량이 많아 사직했다는 노조 주장을 반박했다.

    이달 6일부터 10일까지 학비노조 대구지부가 153명의 대구교육청 소속 늘봄실무사를 대상으로 긴급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대부분인 92.2%가 입사 후 건강이 악화됐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신경정신적 이상 증세를 호소한 응답이 71.2%에 달했다.

    ‘공문 처리, 민원 및 전화 상담 업무가 매우 과중하다’는 응답도 대부분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78.4%가 ‘늘봄지원실장이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했다’고 답했으며, 구체적인 업무 내용으로는 ‘올해 운영 계획 수립’(53%), ‘학교운영위원회 심의’(36%)가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공문 접수, 교무실 전화 응대, 외빈 접대 등 늘봄학교 외 업무를 지시 받았다는 응답이 41%에 달했다.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30건 이상의 민원 전화를 받는다는 응답도 62%를 차지했다.

    교육부가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계기로 늘봄학교 안전 수칙을 대폭 강화하면서 늘봄실무사들에 학생 대면인계 의무를 지우면서 업무가 늘어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생 하교 안전 관리에 1시간 이상 시간을 쓴다는 응답이 77%를 기록했다.

    ▲늘봄실무사들이 받은 늘봄 민원 전화통화 기록. (사진=학비노조 대구지부)

    학비노조 대구지부는 26일 오전 11시 대구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교육청은 더 늦기 전에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늘봄지원실장을 모든 학교에 배치하고 학교당 늘봄실무사를 2명 배치해 업무를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심지어 대전의 안타까운 사건 이후 학생들의 하교 안전 관리 업무도 맡겨지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앞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방식이다. 졸속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근무로 인해 기자회견에는 불참했으나 발언문을 보낸 한 늘봄실무사는 “늘봄학교는 맞벌이 부모들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책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무제한 돌봄 기관이 아니”라며 “하지만 이런 정책의 한계를 설명하고, 민원을 응대하는 역할은 고스란히 늘봄교실무사에게 떠넘겨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늘봄학교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학교에 모든 돌봄 책임을 지울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학교의 역할과 돌봄 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학부모들에게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늘봄학교 행정 및 회계 업무를 담당할 추가 인력을 배치하고, 민원 응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지원 체계를 마련해 정책의 허점을 학교가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구교육청은 ”늘봄실무인력은 교육부 방침에 따라 모든 시도교육청이 교당 1명씩 배치하고 있다. 최근 대전 학생 사망사건으로 인해 초 1~2학년 늘봄학생의 귀가 안전 관리가 강화되고 학기 초 학부모 상담 문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면서 업무량이 늘어난 부분이 있지만 자원봉사자 인력, 예산을 신속하게 추가지원했다“며 ”매년 2~3월은 새 학기를 시작하는 시기로 늘봄실무사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 교직원의 업무가 가중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