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지역의 중견이 된 감독, 그 시작을 톺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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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를 지난해 개봉하고, 현재 단편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와 두 번째 장편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 후반 작업에 한창인 김은영(& 황영) 감독의 시작점은 그다지 알려진 바 없다. 2010년에 첫 단편을 완성했으니 어느덧 ‘감독’ 소리를 들은 지 15년, ‘중견’이라 호칭하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경력을 쌓았는데 말이다.

이만한 세월을 견뎌내며 꾸준히 창작에 임한다는 것은, 전심전력으로 영화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는 증명인 동시에, 이제는 전세방 빼서 작품을 완성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일정한 외부적 평가와 인정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대개 단편을 만든 다음 지역 영화제에서 응원과 격려의 소개 절차를 거쳐 보다 큰 외부 영화제로 본격 평가를 받은 후에, 두 번째 관문인 장편 제작(과 개봉)에 성공하면 이제 다른 길을 찾기보단 여기에서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한다.

김은영 감독과 황영 프로듀서(겸 감독)는 함께 작업하던 중 살림을 합치게 되었고, 오랫동안 공동 작업을 진행해 왔다. ‘고라니북스’ 명의로 생산적인 활동을 지속해온 감독 듀오에게 2025년은 분기점이 될 해다. 두 번째 장편으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돌파할 수 있을지, 전작이 옴니버스 웹드라마 형태로 출발한 데 비해 본격 장편 시도는 어떤 평가를 얻을지 지역의 영화판을 주시해 왔다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감독의 시작은 과연 어땠을까?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의 스타일에 도달했을까? 확장은 거듭했을지언정, 지금 보여주는 형식의 토대는 이미 구축해 있었을까? ‘온고지신’이란 사자성어처럼 김은영 감독의 신작을 만나기 전 ‘그(들)의 첫 번째 영화’를 복습하는 건 작가를 향한 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유가 될 테다.

# <소녀의 방>, 되돌아보는 감독의 First Step
이미지와 사운드로 전달하는 지역 청년의 꿈, 그리고 좌절

영화는 인물의 대사 없이 시각적 이미지와 이를 보완하는 음향, 약간의 음악으로 채워진다. 배경은 주인공인 소녀의 방과 그가 배회하는 도시의 곳곳이다. 작은 원룸 방에서 사는 소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직업으로 삼았거나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입부에서 소녀는 건물 계단에서부터 자신의 방에 이르는 구간을 붓으로 선을 그어나간다. 딱히 페인트가 발려 있지는 않은데, 그가 선을 그은 자리에선 가느다란 실선으로 무지갯빛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희미한 선을 표시하며 소녀는 방문을 닫는다.

방안은 아기자기한 그림과 소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방의 주인은 그림을 그릴 때 외에는 그저 멍하니 머문 상태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지만, 달리 TV에 집중하는 기미도 없다. MTV 영상은 변화무쌍하게 흐르지만 이를 쳐다보는 소녀는 그다지 표정 변화 없이 공허할 따름이다.

그림을 그릴 때 외엔 몽상에 머물던 소녀는 외출한다. 도시의 변두리를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던 그는 폐허에 이른다. 그곳에서 종이봉투를 얼굴에 쓴 누군가가 소녀를 손짓해 부른다. 손에 이끌린 그는 봉투를 뒤집어쓴 채 함께 종이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반복한다. 어느 틈에 소녀의 곁에 봉투를 착용한 이들이 늘어난다.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던 작업을 마치고 소녀는 다시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도시의 광대무변한 전망을 바라보며 소녀는 풍경을 스케치로 담는다. 하지만 캔버스를 채울 색연필 필통은 부주의로 까마득히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더는 작업을 이어갈 수 없으니 방으로 퇴각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방에서도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다 이번엔 붓이 가득한 통을 엎어버린다. 소녀의 표정은 캄캄한 방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망연자실한 형상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도시의 어딘가를 방랑하기 시작한다. 무엇인가 애타게 찾지만, 막상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드러나진 않는다. 마치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처럼 멀리 바깥에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게 아니기에 그럴 테다.

감독 특유의 경향성과 분위기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소녀의 방>은 김은영 감독의 공식적인 첫 번째 영화다. 2010년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단편제작 워크숍 결과물인 본 작품은 감독이 지향하는 스타일의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원형질의 작업이다. 미술을 전공한 이력 덕분에 단순 분류로는 극영화로 뭉뚱그릴 수 있지만, 마치 실사화된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이미지가 진득하게 묻어 있다.

영화는 상징과 표현을 통해 추상적으로, 하지만 시각 매체의 특성에 부합하게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인상을 관객에게 남기려 한다. 주인공의 소망과 원하는 미래는 그가 스케치해 형체를 갖춰가던 피조물이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다 끝내 소멸하고야 마는 것처럼 점점 흐릿해져만 간다. 소녀가 품은 꿈은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온전히 자리를 잡기 힘들다. 그렇게 의지를 잃어가며 그는 무기력한 방황을 반복하는 중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온갖 세상사가 이어지지만, 막상 이를 지켜보는 소녀는 그 무엇에도 주목하지 못한다. 명백히 이 영화에서 텔레비전은 ‘바보상자’와 동의어다. 아무리 매일 다른 소식이 화면에 출력되더라도 그것은 방의 주인이 지루하게 반복하는 일상에 털끝만큼도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녀는 그저 해야 할 최소치의 것만 묵묵하게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건조한 일상을 반복한다. 소박한 일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계적인 동어반복이다. 물론 그가 여기에 만족할 리 없지만, 요란법석 시끄러운 이 도시에서 소녀에게 누구도 명확한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번화가의 보도를 건널 때도 숱한 타인과 반대편에서 머물던 그는 마지 못해 신호등에 따라 머뭇대다 넘어갈 뿐이다.

불빛도 찾기 힘든 심야의 운동장 벤치에 주저앉은 소녀와 함께 처연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가 노래를 부르는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지 관객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마치 인형극에서 복화술로 노래를 구사하는 느낌처럼 입술은 달싹거릴락 말락할 따름이다. 그렇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엘리엇 스미스’가 고요한 화면에 (마치 영화 시작에서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로 덧칠을 마무리한다. 잃어버린 꿈을 위한 추모곡처럼.

<소녀의 방>은 지방의 청년세대가 겪는 어떤 갈망에 관한 이야기다. 뮤직비디오와 실험 애니메이션의 요소가 혼합된 작업은 소설 작법에 입각한 서사 전개 대신에 영상 시의 방법을 택한다. 유럽의 작가주의 애니메이터들이 종종 선보이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혼합이 본 작품에서도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다만 극영화 위주에 추가되는 정도의 차이랄까. 아마 애니메이션 애호가라면 몇몇 작가와 작품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법하다.

영화는 도시형 판타지 요소도 지닌다. 봉투를 쓴 익명의 존재들, 주인공 소녀도 동화되고 마는 추상적 집단은 그처럼 꿈을 잃고 이름과 개성도 상실해 가는 숱한 동류를 상징화한 이미지로 동원되었을 테다. 그들 각자가 소녀처럼 ‘자기만의 방’에 꿈을 채워나가던 이들일 것이고, 그들 모두 도시의 환상 속에서 정작 고유한 꿈을 잃어가는 존재들일 테다. 마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그들을 그러모은 존재 역시 마땅히 이 21세기 대도시에서 분명한 탈출구를 안내하지 못한 채 그저 환영에 그친다.

그렇게 김은영 감독의 작은 우주가 소리소문없이 빅뱅을 치른다. 10여 년 넘게 현재로 이어지는 부단한 창작의 기원이라 할 ‘최초의 발자취’다.

# <고추가 사라졌다!>, 응답하라! ‘타임캡슐’처럼 기록한 10여 년 전 대구
고추 모종을 되찾기 위한 모험은 골목을 타고 흐른다

‘은지’는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 방을 얻어 살고 있다. 원룸 형식이 보편적으로 들어서기 전, 대학가 주변에 흔하게 보이던 사랑방 월세/사글세 형태다. 그 시절엔 현관 밖 벽에 붙여 화분을 내놓고 키우곤 했었다. 은지 역시 고추 모종을 구매해 대문 밖에서 매일 물을 주며 돌보던 참이다. 그런 고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고추를 대체 누가 뿌리채 뽑아간 걸까?

은지는 자기 방 한구석에 놓인 명탐정 코난처럼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웃에 살면서 심심하면 후배를 놀리는 게 취미인 창수 선배를 용의자로 올린다. 하지만 창수 선배는 풀독 알레르기가 있다. 애초 고추 모종을 건드리기도 힘든 조건이다. 다음으로 집 앞에서 심심하다며 길고양이를 건드리는 꼬마를 추궁하지만, 달리 혐의점이 없다. 그런데 자기 할머니가 인근 빌라 옆 공터에 고추밭을 가꾸고 있단다. 무더운 여름에 땀 뻘뻘 흘려가며 잠복수사도 나서보지만, 고추 서리로 몰려 봉변을 당할 위기를 겨우 모면한다. 동네 유일한 꽃가게 사장님도 수상쩍긴 하지만, 심증뿐이지 달리 물증은 없다. 그렇게 은지의 추리는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그런 은지에게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가 있다. 오래 알고 지낸 동년배 친구 ‘제국’이다. 별일이 없어도 문득 자길 기억해달라는 듯 불쑥 등장하곤 하던 그다. 하지만 제국 역시 뚜렷한 범행 동기는 찾을 길 없다. 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은지는 이제 자신이 왜 고추 모종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돌아보기 시작한다. 논점의 일대 전환인 셈이다. 사실 피해랄 것도 크지 않다. 꽃가게에서 모종을 사려면 1,500원만 주면 될 일인데 말이다.

꽃가게 사장님은 동네 청년회의 주축이기도 하다. 그는 인근 대소사를 훤히 꿰고 있다. 고추 모종을 수사하러 가게에 들른 은지와 대화하던 그는 예전에 은지가 가게에 들렀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당시 은지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추 모종이 아니라 그걸 심었던 당시의 추억에 매달리고 있는 주인공인 것. 과연 왜 은지는 모종에 운명이 달린 듯 맹렬히 집착하는 걸까? 이제 추리극은 다른 국면으로 전환한다.

감독도 배우도 더불어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반가운 얼굴들

감독은 워크숍 수료작품인 <소녀의 방> 이후 2년이 지나 대구 다양성 영화 제작지원사업에 힘입어 후속작에 돌입한다. 전작과 비교하면 확연히 익숙한 극영화 구조를 취하는 <고추가 사라졌다!>이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조나 스타일에서 변함이 없는 그만의 색채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다.

영화는 일본의 청춘물이 응당 그러하듯 한여름의 시간대를 활용하듯 작렬하는 태양광 속에서도 파란 하늘과 시원한 물기를 간직한 것 같은 영상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미스터리 뼈대이지만, 딱히 심각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일상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기조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감독의 작업에서 전과 이후로도 일관된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소품과 장치 활용 역시 그런 색깔을 한층 더 진하게 만든다. 전반부엔 미스터리와 코미디가 혼합되고, 후반부엔 로맨스의 정취가 두드러진다. 그런 혼재가 큰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연출력이 괄목상대다,

반가운 얼굴들이 여러 명 눈에 띈다. 은지 역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만옥’으로 대중적으로 각인된 이민지 배우가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수호천사로 왕성하게 활약하기 시작하던 즈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한결같이 무슨 배역이든 녹아드는 이 변화무쌍한 배우는 <고추가 사라졌다!>에선 슬픔과 상실을 딛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미래로 향해야 하는 과도기의 은지 캐릭터 그 자체로 승화한다. 보고 있자면 우리가 이민지란 배우에 대해 떠올리는 가장 근원적 이미지를 은은하되 옅지 않게 발산함을 확인할 수 있다.

순박한 시골 청년 같은 인상의 제국 역 한주완 배우 역시 본 작품 직후 공중파 드라마 등을 통해 인지도를 대폭 넓혔다. 능청스러운 창수 선배를 맡은 홍기준 배우 역시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연기자로 성장했고, 또 다른 한국독립영화 수호요정, 임호준 배우 역시 은지의 방황을 책임져야 할 미스터리의 실체로 얼굴을 내민다. 감독의 인상적인 초창기 작업인 동시에 이후 주목받을 여러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확인할 기회도 되는 작품이다.

반가운 건 배우뿐만이 아니다. 제작진이 특별히 의도한 장치는 아니겠지만, 10년이면 휙 변하는 한국 사회 세태에서 어느덧 잊고 살던 멀지 않은 과거의 풍경이 오롯이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 이제 오리배는 안전 문제 등으로 더는 대구 시내 호수에서 볼 수 없다. 김광석 거리의 벽화 역시 상당수는 덧칠되었거나 원래의 형상과는 동떨어진 상황일 테다. 대구 구도심에서 은지와 제국이 미로처럼 좁은 길을 지나치던 골목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는 마치 타임캡슐처럼 그 당시의 풍경을 기억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지역 중견 감독의 행보를 꾸준히 관찰하는 재미

소개한 두 편의 초기 단편 작품은 감독의 근작에 비교하면 투박하고 엉성할 순 있지만, ‘작가’로서 주목받기 위한 일관된 형태와 개성을 시작부터 분명하게 함축하고 있었다. 원석이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갈고 다듬어가며 정련해 현재에 이르렀음을 이들 영화를 보고 나면 확인할 수 있다.

김은영 감독의 영화들은 일단 곱고 예쁘다. 배경과 장치에서 아기자기한 팬시함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미술로 출발한 경력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본인 작업 외에도 지역 영화인들의 적지 않은 작업에 미술 담당으로 참여했고, 독립영화극장과 영화제에도 홍보 영상을 도맡곤 했다. 출판 및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며 지속 가능한 작업의 기반을 구축하려 꾸준히 노력해 왔음은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례다.

한때 대구 독립영화의 정체성처럼 외부에서 언급하던 사회적 사실주의 경향과 감독의 작업은 언뜻 연이 없어 보인다. 예민한 시사적 쟁점은 감독의 영화에서 첨예하게 강조되지는 않는 편이기에 더욱 그럴 테다. 하지만 도시의 익명성과 황량한 풍경 (<소녀의 방>,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동시대 청년세대가 겪는 애환과 고민의 조명 (<눈을 감고 크게 숨 쉬어>, <더 납작 엎드릴게요>, <야식금지클럽>) 등의 소재를 극단적 갈등과 대사 서술이 아닌 형태로 화면에 구현하는 작품 세계는 굳이 사회 비판에 무게추를 두지 않으면서도 일정하게 세태를 반영하는 중이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진 않으면서도 근작으로 넘어올수록 감독의 영화 속에서 우리가 흔히 지나치곤 하던 지역의 잊히고 사라져가는 풍경이 두드러지고, 큰 이야기 속에서 놓치는 일상의 소소하긴 해도 사회적 의제와 잇닿은 이야깃거리가 강조된다. 첫 (옴니버스)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가 종교기관 부설 출판사의 노동 실태를 적절한 풍자와 함께 구현한 게 그런 대표적인 예시다. 이는 장편 창작 과정에서 넘어서야 할 진입장벽에 고심하며 대비했다는 징표다. 그런 감독의 도약을 지켜보는 건 늘 흥미롭고 두근거릴 일이다.

<김은영 감독 작품연보>

[단편] 소녀의 방 (2011)
[단편] 고추가 사라졌다! (2012)
[단편] 중고, 폴 (2016)
[단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2017) ※ 각본/편집/미술
[단편] 평야의 댄서 (2021)
[단편] 눈을 감고 크게 숨 쉬어 (2022)
[장편] 더 납작 엎드릴게요 (2023)
[단편] 야식금지클럽 (2024)
[단편]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 (2025, 예정)
[장편] 우울한 좀비와 브런치 (2025, 예정)

<작품정보>

소녀의 방
2011|한국|드라마|19분
감독/각본/미술/편집 김은영
촬영 최창환|조연출 이지환|조명 고현석
출연 손은민(소녀 역), 이지환(봉투1 역), 고현석(봉투2 역), 김은영(봉투3 역)

2011 12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경쟁

고추가 사라졌다!
where is my pepper
2012|한국|드라마/코미디/미스터리|23분
감독/각본/미술/편집 김은영
PD 황영|조연출 권진애|촬영 최창환|조명 전상진
주연 이민지(은지 역), 한주완(제국 역)
출연 홍기준(창수 역), 임호준(기철 역), 이영서(꼬마 역), 이연희(할머니 역),
전아로미(기철애인 역), 손성호(이씨아저씨 역)

2013 14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경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