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산불 사흘째···농심도 타들어 간다

13:33
Voiced by Amazon Polly

경북 의성 대형 산불 발생 사흘째, 24일 오전 11시 기준 진화율 71%로 큰불은 잡힌 상황이지만, 농심은 여전히 타들어 가고 있다. 경북소방본부는 산불 3단계를 발령하고 2,500명이 넘는 인원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4일 오전 의성 산불 발생지인 안평면 괴산리로 들어서는 길. 인접 도시인 안동시부터 짙어지기 시작한 하늘이 의성군에 이르자 잿빛이 되었다. 소방헬기 소리,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가득한데 도로에는 농기계(경운기 등)를 몰고 나온 주민들도 보였다. 여전히 산불 연기가 자욱했지만, 농민들은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산으로, 밭으로 나섰다.

괴산리 산불 발화지로 들어서는 길. 주민 김응상(74) 씨는 산불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대피하지 않고 집을 지켰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자두나무밭이 펼쳐져 있고, 백구 2마리도 줄에 묶여 있다.

“여기서 500m 앞까지 불길이 왔어요. 성묘객이 와서 불을 냈다고 하대요. 집에 있었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불꽃이 하늘로 솟구쳤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불이 넘어갔어요. 소방관이 큰불 잡으면 갈퀴 들고 가서 잔불도 잡았어요. 강아지들도 있고, 좀 더 불길이 다가오면 대피하려고 지켜보고 있었어요. 잠 못 잤죠. 아직 연기도 가시지 않았고, 냄새가 심해 목이 아파요. 제 밭에 나무가 다 타진 않았지만 연기가 심하면 꽃눈이 말라서 아무래도 걱정이 들어요.” (김응상 씨)

▲김응상 씨가 산불 이동경로를 가르키고 있다

안평면에 마련된 임시대피소. 막 아침 배식을 마치고 면사무소, 보건소, 적십자 등 관계자들이 뒷정리를 했다. 대피소에는 텐트가 촘촘하게 펼쳐져 있지만 대부분 비었다. 안전이 확보된 지역 위주로 주민들이 서둘러 귀가했기 때문이다. 아직 진화 작업이 종료되지 않아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일부 지역 주민만 대피소에 남아 있다. 이들은 대피소에 마련된 의료 부스를 방문해 상담과 약을 받기도 했다.

귀가하기 위해 대피소에서 차량을 기다리던 신안3리 주민 김옥이(94) 씨는 “크게 아픈 건 없어도 많이 놀랐어요. 집 뒤에 불이 났는데. 산자락에 살거든요. 동네에 서른 가구쯤 되는데 불나고 전부 다 대피해서 왔어요. 놀라서 말도 못 해요”라며 “거기는 연기도 자욱하고, 하얀 서리처럼 날려요. 전 동네 산이 불로 다 덮여서. 이제 큰불은 잡혔다니까 다시 집에 가야죠. 집 정리하고, 밥도 해야죠”라고 말했다.

▲안평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

대피소에 있던 안평면사무소 관계자는 “대피소에서는 평소 복용하던 약을 가져오지 않아서 걱정하신 주민들도 있고, 빨리 귀가해서 복구작업과 농사를 시작하려는 주민도 있다”라며 “주거지 안전이 확인된 주민 위주로 귀가를 지원하고 있다. 진화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곳의 주민은 잔류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산불 진화 작업이 완료되더라도 산불로 인한 주민 건강 영향 우려가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찰과 지원도 필요하다. 김동은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산불 시)천식, 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을 가진 주민은 연기 노출로 호흡 곤란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심장 질환 환자도 심박수가 불규칙해지거나 흉통이 발생할 수 있다. 영유아, 소아, 임신부, 노약자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산불을 경험하면 심리적 고통, 불안, 우울 증상을 오랫동안 호소할 수 있다. 주민들과 진화대원에 대한 심리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목이 따갑고 콧물, 기침이 나고 눈도 따가우면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호흡이 곤란하거나 가슴이 조여오며 의식이 흐려지면 응급상황이므로 신속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라며 “N95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천 마스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불 발생 인근 지역에 거주한다면 헤파필터가 장착된 공기 청정기를 사용해 실내 공기를 정화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안평면 괴산리에서 바라본 산등성이. 산불 연기로 가득하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