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㉘ 내란 옹호하는 경주 정치권···시민의 주체적 힘 키우기

'광장의 스펙터클'은 짧았고 100일 넘게 종식되지 않는 내란
앞서 했던 시민 행진을 대동놀이로 전환
'함께 웃는 사회', 윤석열 퇴진 이후의 세계도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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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문연지(26) 씨는 결혼 후 경주에 정착한 시민으로, 12월 14일부터 경주에서 열린 첫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집회 진행을 맡았다. 비상계엄 선포도 난생처음이고, 집회 사회도 처음이다. 연지 씨는 경주에서도 다소 늦었지만 지역 집회가 꾸려지고부터 집회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연지 씨도 공포스러웠지만, 비상계엄 선포 전에도 지역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을 조직해 나가던 차였기 때문에 지역 사회 변화를 시작할 계기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12월 3일 당일에도 경주 대학가에서 윤석열퇴진 국민투표 운동을 마친 후, 경주 윤석열퇴진 대학생행동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귀가한 연지 씨는 집에서 뉴스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의 공포 섞인 반응을 접하면서, 다시 밤늦게 집을 나섰다. 자정을 넘긴 시각, 친구들과 성명서를 적기 시작했다. 경주에서 윤석열 퇴진 운동을 이어왔던 만큼, 비상한 시국에 비판과 실천 방안을 담은 입장을 전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이 방학에 들어서는 시점이기도 해, 연지 씨도 자연스럽게 윤석열 퇴진 경주시민행동에서 함께 힘을 모으게 됐다. 이 단체에는 여러 정당과 함께 지역 시민사회, 민주노총 등이 참여했다. 경주시민행동을 꾸리는 실무단은 생업과 병행해 집회 준비에 나섰는데, 영상 제작, 발언 섭외, 행사 준비, 강사 섭외, 집회 신고, 홍보 등 집회 진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비용을 받지 않고 음향 장비를 공급하는 이도 있고, 공연자도 저비용으로 집회를 힘들게 꾸리고 있다며, 연지 씨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개인을 부각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주 봉황대 밝힌 응원봉
어둠 밝힌 시민들 용기 생각하면
경주서 광장을 열고 지켜내는 것 자체로 유의미

경주 봉황대에서 열린 첫 집회. 이곳에도 청년들은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당시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됐기 때문에, 집회장 분위기는 축제처럼 서로 기뻐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날 모여 환호한 시민 1,000여 명 중에는 실명을 밝히고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지역 고등학생도 있고, 중절모를 쓰고 환호한 장년층도 있다.

“경주에서 윤석열 퇴진 집회를 이어 나간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경주는 작은 도시예요.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해요. 여기 모인 시민들도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크고 작은 용기와 결단을 한 거고, 그렇게 광장을 열고 지켜내는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요.”

14일 봉황대에서 응원봉을 확인했을 때 연지 씨 또한 감명받았다. 처음 맡는 사회 역할을 대비하면서, 모이는 사람들의 특징이나 구성에 맞춰 집회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마련했다. 무대에 올랐을 때, 함께 모인 시민들이 연지 씨와 국회 탄핵안 표결 방송 화면을 오가며 보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안 가결을 선언하자 시민들이 일시에 기립해 환호하고 눈물 흘렸다. 경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이 됐다.

“집회를 사전에 준비하면서도, 함께 준비한 이들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경주에 살면서 국민의힘 쪽 일 제외하고 이만한 사람이 모인 걸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더욱 우리가 역사적 현장에 함께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광장의 스펙터클’은 짧았고
100일 넘게 종식되지 않는 내란
앞서 했던 시민 행진을 대동놀이로 전환
‘함께 웃는 사회’, 윤석열 퇴진 이후의 세계도 그랬으면

윤석열 탄핵안 가결은 시민들에게 격한 감정을 전해줬지만, 가결 이후에도 윤석열 내란은 쉬이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적으로는 극우세력이 세력화하고 전면화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갔으며,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은 극우세력과 거리를 두기보다 오히려 앞장서서 부추기는 형국이 됐다. 그러면서 경주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지역 정치, 행정과 관변단체 등의 분위기는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으로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집회 초기 봉황대로 향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이어가기 어려워졌다. 거리 행진에서 위협을 받거나 비난받는 일도 많아지면서, 경주에서는 다른 방향의 집회를 고안했다. 행진 대신, 집회에 모이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쌓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경주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는 함께 떡국을 먹고 강강술래, 박 터트리기와 같은 대동놀이도 한다.

“오래 집회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분들은 보기 어려워졌어요. 집회를 어떻게 꾸려나갈까 고민하다가 사람들끼리 떡국을 끓여 먹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하필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비 맞으면서 떡국을 먹었어요. 1회용품도 안 쓰고 집회 끝나고 다 설거지하고. 이런 과정이 지금 와서 떠올려보면 우리끼리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윤석열이 석방되고 또 힘들어졌지만, 이렇게 함께한 순간을 떠올리면 견딜 힘이 되기도 해요. 떡국을 같이 끓여 먹고 나서는 행진 대신 대동놀이를 해요. 할아버지도, 아이도 환하게 웃고 있어요. 우리가 다음 세상을 얘기하려면 이 집회에서도 그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함께 피로를 씻으며 즐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 웃고 함께 사는 사회’를 작게나마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윤석열퇴진 경주시국회의가 연 집회에서 대동놀이를 하는 참가자들(사진 제공=문연지)

연지 씨는 시민들이 함께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으로 경주 지역사회 변화의 걸음을 뗐다고 생각한다. 12.3 내란 사태를 겪으며 국민의힘에 가입했던 시민이, 극소수이지만 탈당하고 연지 씨가 활동하는 진보당에 가입하는 일도 있다.

연지 씨는 전후 민간인 학살의 상처를 곳곳에 지니고 있는 이곳 경주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단 한 번도 국민의힘 계열 이외의 단체장이 배출된 적이 없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독식하다시피 하는 배경에도 그러한 역사적 상처가 있다는 거다. 그럼에도 지역 분위기를 거스르는 소수의 시민들을 보면서, 연지 씨는 다양한 주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역사회 변화를 천천히 이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경주도 진보적인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민간인 학살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어요. 사실 이 지역이 워낙 국민의힘이 과잉 대표되는 곳이지만, 사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무관심한 사람이 많아요. 정말로 극우적인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윤석열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러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주목하면서, 길게는 기성 정치가 아닌 다른 정치를 대안으로 펼쳐가야죠. 정치인을 나라님 모시듯 하는 지금의 기득권 정치 말고, 주민이 주인 되는 주민 직접 정치를 모색하고 있어요. 경주 시민들도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소 버겁고 지치더라도, 우리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주민이 주인 되는 경주를 꾸준히 이야기하다 보면 결정적 시기에는 분명히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해 주실 거라 생각해요.”

▲윤석열퇴진 경주시국회의 집회 사회를 맡은 문연지 씨(사진=문연지)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