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정말로 하고싶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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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부터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권고한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주는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곧바로 수상 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인권위원장 앞에서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된 인권위 권고를 막기 위해 저항한 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지지 의견을 시상식에서 발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난 금요일 시상식, 인권위원장 앞에서 잘못된 권고를 지적했으나, 통쾌함보다는 씁쓸함만 크다. 유난스러운 건 아닐까. 좋은 보도를 했다고 칭찬하고 상도 준다는데, 그 면전에서 비판을 해야 하는 무례도 마음에 걸렸다. 비판이 인권위원장 마음에 와닿으리란 기대도 크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문제와 관련해 특별한 변도 하지 않고 받을 순 없다는 마음이 가장 컸기에, 후회는 없다.

기자는 혼자서 기사를 쓰지 않는다. 기자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공장이나 농어업 등 위험한 현장과 거리가 먼 책상물림에 불과하다. 기사는 수많은 사람의 경험과 노동으로 쓰인다. 버스 기사 김민수(가명) 기사는 김민수의 인생과 강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의 아픔으로 쓰였다. 그들의 경험과 노동으로 쓰인 기사이기에 이 기사에 대한 격려는 그들에 대한 격려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수상 소감으로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다. 인권위원장 비판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됐다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주민에 의존하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시상식이 벌어지는 이날에도 이주민이 어떻게 죽고 다치고 추방당하는지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강제 단속 중 도망치다 다쳐 유산하고 추방된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 강제 단속으로 보호소에 갇혀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와 보호소 벽을 사이에 두고 면회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유튜버의 수익을 위해 사적으로 짐승처럼 체포당하고 추방되는 모습이 찍힌 수많은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 영장도 없이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는 강제 단속 문제는 그대로 두고, 보호소 구금 상한선만 그어둬 사실상 미등록 이주민을 징벌하는 제도를 유지하려는 국회와 그에 동조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최근 사망한 이주노동자 이야기. 전세사기를 당하고도 외국인이라서 별다른 구제 대책을 받을 수 없는 이주민 이야기. 한시적 구제 대책이 오는 31일 종료됨에 따라 안정적 주거, 생활, 교육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던 당일날에도 내가 사는 곳 인근에서 강제 단속으로 양쪽 발의 뼈가 부서지고, 손이 베이고, 척추를 다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6명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다. 다치고 강제 추방 돼 그가 살던 방에 덜렁 남은, 추방된 사람이 기르던 푸른 허브와 식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뉴스민> 보도로 계속 이어가려 한다. 인권위가 권력자의 심기보다 국가 제도의 문제로 다치고 추방당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라면서.

▲시상식이 열리는 프레스센터 인근 카페에서 작성한 수상 소감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