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윤석열이 간 길···홍준표가 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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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 부를 날이 다가온다. 헌법재판소는 25일을 최종 변론 기일로 정했다. 3월 첫 주다, 둘째 주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늦어도 3월 둘째 주에는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판사 중 기각 판결문을 쓸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은 덤이다.

그와 함께 곧 ‘전’ 시장이라 불리길 바라는 이가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이야기다. 그는 지난 23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시장직을 유지해달라’고 쓴 게시물에 댓글로 “대선이 만약 생기면 시장직 사퇴 합니다”고 밝혔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 다퉜던 두 사람의 묘한 ‘전’관되기다.

물론 한 명은 ‘목숨 걸 용기도 없고, 하야 할 용기도 없이’ 비상계엄을 시도한 죄로 권한을 몰수 당한 채 직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처지이고, 다른 한 명은 라이벌이 ‘한밤의 해프닝’ 때문에 내려놓게 된 권한과 직을 손에 넣기 위해 지금 쥐고 있는 권한과 직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2022년 7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차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구시)

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만큼 공통점도 적잖이 갖고 있다. 특히 지난 3년 사이 윤석열과 홍준표 두 사람은 검사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을 더 만들어왔다. 지난 3년새 한 사람은 서울 용산동에서 다른 한 사람은 대구 산격동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쌓아 올린 화려한 전적이다.

먼저 두 사람은 모두 비판하는 언론을 용인할 만큼의 큰 그릇을 갖지 못했다는 걸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건이 모두 MBC와 관련 있다는 것도 닮은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바이든-날리면’ 보도 후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 외교부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홍준표 시장은 2023년 대구MBC의 TK신공항특별법 검증 보도를 ‘가짜뉴스’로 지칭하며 취재거부를 선언했다. 그의 측근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고발도 했고, 대구시는 대구MBC 기자의 시청 출입을 막았다.

불편하고 성가신 언론의 취재를 통제하는 것도 닮았다. 미디어오늘은 2022년 6월 이후 대통령실 출입을 하지 못하고 있고, 명태균 게이트를 촉발한 뉴스토마토도 관저 이전 천공 개입 의혹 보도 이후 2024년 1월 대통령실 출입 등록이 취소됐다. 대구MBC 사태 후 대구시 내에는 언론 블랙리스트 명단이 공유됐고, 시장이 참석하는 간담회는 정해진 언론사 외에는 참석이 불허된다.

언론을 대하는 그릇만 작은 건 아니다. 이들은 사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으면 법률가 출신들 답게 일단 책임을 미루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도 볼품없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부하’들과는 죽이 척척 맞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이들에겐 어김없이 음모론을 들먹이며 책임을 미루기 급급하다.

지난 6일 변론에서 그는 “12월 6일 홍장원의 공작과 특전사령관의 김병주 TV 출연부터 바로 내란 프레임과 탄핵 공작이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이들을 향한 공작설도 서슴없이 유포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명예나 자존심 따위는 없고 오직 사법적 처벌을 미루려 남을 음해하고 책임을 미루는 실패자의 비루한 모습이다.

홍 시장은 대구MBC 취재거부 사태, 대구퀴어축제 방해 등의 문제가 법정으로 옮아가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자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대구MBC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행위와 자신은 상관없다고 주장했고, 공무원들이 퀴어축제 현장에 나가 축제 진행을 방해한 것도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법원은 대구시의 행위가 법률적 근거가 없고, 불법적인 일이라고 판단했지만 모두 자신의 지시는 없었고, 공무원들이 알아서 했다는 주장을 한 셈이다.

최근 명태균 게이트가 자신을 향해서 조금씩 그물망을 좁혀오자, 여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중 자신의 측근들이 명태균에게 비공표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돈까지 지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고, 아들이 명태균과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공개되자 마찬가지로 측근에게 속아 그런 것이라며 두둔하기 바쁜 모습만 보였다.

과거를 돌아보면 측근 관리, 무능한 아들들이 저지른 문제로 곤경에 처한 여러 대통령이 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그의 해명이 오히려 ‘전’ 대구시장에서 ‘현’ 대통령이 되는데 미흡한 점이 많다는 걸 자인하는 꼴임에도 책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5년 중 3년 만에 전직이 될 위기에 처한 건 비판을 용인하지 못하고 책임은 미루기 바쁜 모습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호시탐탐 비판하며 책임을 추궁하는 이들을 일거에 ‘수거’하려는 욕심이 비상계엄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전직’이 되고자 하는 홍 시장을 응원하면서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