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㉕ “광장은 내게 ‘연대’를 배우게 한 경험의 시간”

달곰이지부, 무지개인권연대, 누구나지회 가입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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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김상희(29) 씨는 매주 무지개 깃발을 들고 윤석열 탄핵집회에 참여한다. 감기에 걸린 한 번을 제외하곤 줄곧 광장을 지켰다. 동력 중 하나는 ‘연대의식’이다. 상희 씨는 “무지개 깃발을 갖고 와주셔서 고맙다, 나도 퀴어라고 인사해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며 “혼자 깃발을 들고있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또 집회에 무지개 깃발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설명했다.

무지개 깃발은 일상에서도 펄럭인다. 상희 씨는 퀴어(queer·성소수자)임을 숨기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물어보면 부정하지 않고, 운이 좋았던 건지 같은 퀴어도 있어서 ‘커밍아웃’은 어렵지 않았다”며 “오히려 퀴어 인줄 몰랐던 여성 동료가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 일도 있다. 농담처럼 ‘성소수자’가 더이상 소수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 김상희(29) 씨는 매주 무지개 깃발을 들고 윤석열 탄핵집회에 참여한다.

물론 상희 씨도 고등학생 때 서울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로 뉴스 기사가 나면서 처음으로 혐오 댓글을 접하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상희 씨는 그때 네이버에서 ‘퀴어’를 검색해서 웬만한 혐오 댓글을 거의 다 읽었다고 했다. 그는 “혐오발언에 대한 예방접종을 해둬서 일상 ‘커밍아웃’이 어렵지 않았을 수 있다”며 “퀴어에 대한 혐오발언에 새로운 래퍼토리가 없다. 저희 세대에선 과거랑 인식이 다르기도 하고 어쨌든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광장에 섰을 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며 다가온 중년 세대에게 긴장한 일도 떠올렸다. 성소수자 깃발이라고 설명을 하자, 그들은 “알려줘서 고맙다”며 깎듯하게 인사를 하고 미소를 보였다. 긴장했던 것이 무색했을 상희 씨는 거기서 밀려드는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았다. 상희 씨는 “‘광장’에 선 소수자로 안도감과 연대감, 소속감을 느꼈다”고 했다.

“소수자는 언제나 표준을 상징하는 다수자에게 ‘설명과 허락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꼈어요. 저에게 그 설명과 허락이 무겁고 상처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마음의 에너지를 적잖게 소모하는 일은 맞거든요. 하지만 광장에서는 그냥 거기에 있는 한 사람입니다. 그런 걱정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오히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소수자들을 안전하게 만나게 되는 공간이었어요. 저는 그저 연대자로 환영받고,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 말해줄 것이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기꺼이 달려 나갈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거제 한화오션 서문 앞에서 개최한 1박 2일 ‘투쟁 문화제’에 갔을 때도 그랬다. 그곳에서 만난 어떤 이로부터 ‘페미랑 퀴어가 나쁜 건줄 알았다. 그런데 만나보니까 그냥 사람이더라. 알지 못한 채로 오해하고 갈라져 있었구나. 직접 만나면 연대할 수 있는 존재였구나’라는 말을 듣고 뭉클했다. 또 그곳에서 준비한 성중립숙소에 누웠을 땐 마음이 편안했다. ‘민주노조’가 부르시면 달려가겠다고 문화제 후기를 썼고, 다음날 민주노총은 한강진 거리 광장으로 상희 씨를 다시 ‘소환’했다. 금요일 퇴근 후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연대를 배운 광장의 기억
다른 소수자들을 안전하게 만나는 공간
달곰이지부, 무지개인권연대, 누구나지회에도 가입

상희 씨는 “지난해까지 숏컷이었는데 여자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헛기침을 하면서 ‘나는 여자니까, 걱정하지마세요’하고 알리면서 들어갔다”며 “표준에서 벗어난 존재는 사회에서 뭔가를 설명 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설명할 필요 없는 존재’에서 오는 평온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상희 씨에게 연대를 일깨워주게 한 것이 바로 이번 광장의 기억이다. 시민들의 ‘광장’이 계속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민주노총 대구본부 달곰이지부와 대구퀴어단체인 무지개인권연대, 누구나지회에도 가입해 마음을 보태기 시작했다. 상희 씨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성지회 문화제와 구미 옵티칼 희망텐트에도 갔지만 그 이후로는 마땅한 연대를 못하던 차에 민주노총에 빚진 마음을 조금이나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부연설명도 했다.

상희 씨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자퇴한 뒤 사무보조, 공장, 콜센터 등에서 일해왔다. 10년차 직장인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인 상희 씨는 “저는 2~3년마다 이직을 하는 처지라서 이제 노조를 가입하거나 노동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처지”라며 “앞으로도 직장 내 노동조합을 통해 직접 노동단체권을 행사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에 노동투쟁 현장을 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찾은 것 같다. 적어도 후원이나, 머릿수를 보탤 수 있겠구나 했다”고 말했다.

집회에서 만난 다양한 이들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상희 씨는 “다른 분들의 자유 발언을 들으면서 내가 이전에는 잘 몰랐던, 인식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며 “그냥 지나가면서 접한 이야기와 눈 앞에서 누군가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하며 느끼게 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광장은 그런 경험의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 김상희(29) 씨가 든 무지개 깃발이 다른 깃발들과 함께 윤석열 탄핵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펄럭이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을 했는데, 탄핵이 안 될리 있을까”

이번 광장을 통해 표면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젊은 세대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도 상희 씨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SNS 등에서도 여성혐오적인 농담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느껴왔던 상황에서 이번 ‘서부지법 폭동’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상희 씨는 “그런 극우적인 커뮤니터 상의 분위기가 현실로 표출된 것 같다”며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쟤 일베한다’로 설명되는, 일부만의 문제라거나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수 남성들의 문화처럼 돼버렸고, 일부 여성도 같이 동조하는 것에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상희 씨는 “여성들은 여성혐오에 맞서 늘 싸워왔고, 계속 목소리를 내왔다. 잘 보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성들은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고 ‘싸울’ 곳을 찾아왔다. 그러다 광장이 열렸고, 나온 것”이라며 “동시에 온라인상에서 N번방이나 딥페이크 같은 문제가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오프라인으로도 나왔던 거라 생각한다. 우리사회가 이들을 올바른 시민으로 만드는 것을 위해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상희 씨는 오늘날의 ‘광장’이 열린 이유에 대해 상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하는 이유로 많은 이유가 있지만, ‘계엄’ 상황이 컸다고 했다. 2차 계엄 상황이 만들어질까 불안이 컸다는 상희 씨는 “계엄이 터졌을 때 그날 밤을 샌 모두가 아마 이거 해제되고 나면 100% 탄핵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너무 확실한 범죄인데 버티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납득되지 않는다”고 목소리 높혔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도 화가 난다. 대통령이 마치 잘못을 해 놓고 ‘혼나기 싫어서 땡깡 부리는 어린애 같다’고 느껴진다”며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을 했는데, 탄핵이 안 될 리가 없지않나”라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