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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주] ‘영화, 시그림을 만나다’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본 후 시인은 그 영화의 이미지를 시로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 함께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와 그림,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좋은 영화 또한 한 폭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시인과 화가가 본 그 영화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돈 룩 업’
감독:아담 맥케이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2021년, 러닝타임 126분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지구를 파괴할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다가온다는 불편한 소식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을 만나 심각성을 얘기하지만 심드렁하기만 하다. 인기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얘기하지만 모두들 무관심하다.
6개월 뒤 지름 10km의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 1km가 넘는 거대한 쓰나미가 지구를 휩쓸고, 지진으로 지구가 부서진다. 히로시마 원폭 10억 배의 가공할 위력이다. 지구에 살던 거의 모든 생물이 멸종될 것이고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이건 팩트다. 과학으로 증명되는 일이다. 그러나 외면한다. 이제 시시각각으로 다가와 우리 눈으로 확인 할 수도 있다. 꼬리가 긴 별똥별의 모습으로 우리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회피한다. 안보면 없어지는 일일까. ‘룩 업’(Look Up). 제발 좀 하늘을 쳐다봐! 그러나 난 ‘돈 룩 업’(Don’t Look Up)
아담 맥케이 감독은 할리우드의 재간둥이다. 세계 경제가 휘청한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를 그린 ‘빅쇼트’(2015), 가장 약삭빠른 부통령을 통해 미국 정치권의 허위를 고발한 ‘바이스’(2018)를 연출했다. ‘돈 룩 업’을 포함해 이 세 작품을 ‘식겁할’(freak out) 3부작이라고 부른다.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를 통렬히 비꼬는 3부작이다. ‘돈 룩 업’에서는 정치와 경제, 언론에 대중까지 싸잡아 신랄하게 풍자한다.
화가 이영철의 그림 ‘무상화(無常花)-Ego 유희(遊戲)’는 명쾌한 이미지로 영화의 풍자성을 담아냈다. 캔버스의 절반이 넘는 거대한 불기둥이 지구를 덮친다. 곧 지구를 박살 낼 듯 맹렬하다. 붉은 파편을 뿜어내며 속도감 넘치게 낙하한다. 그 아래의 인간 5명은 눈과 코를 막은 채 사악한 입술로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중간이 미국 대통령이고 왼쪽이 비서실장인 아들, 오른쪽이 미국 정계의 큰 후원자인 기업가이다. 좌우 끝에 있는 것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을 호도하는 방송인 앵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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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국민의 안위보다 철저히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주의자다. 지구 멸망의 위기를 야당에 밀리는 상황을 역전시키는데 이용하려고 한다. 비서실장인 그의 아들은 무능력하면서 권력의 맛에 취해 지구를 지키려는 이들을 우롱하고 조롱한다. 특히 기업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성을 파괴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도피한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알고리즘을 맹신하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다. 앵커는 시청률에만 목매며 진실을 외면한 채 희희낙락하는 미디어의 전형이다.
그들 머리 위에 있는 세 명은 혜성을 최초 발견한 디비아스키와 담당 교수 민디 박사, 지구방위합동본부장이다. 고함을 지르며 안타까워하지만 공허할 뿐이다. 그리고 맨 밑에 줄지어 선 사람들이 일반 대중들이다. 그들은 우매하다. 스스로 진실을 밝혀 볼 수 없다. 물결에 휩쓸려 편 가르고, 증오하며, 종국에는 포기해 버린다. 감독은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겪은 혹독한 미국의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비유하는 듯하다. ‘룩 업’과 ‘돈 룩 업’의 대결이다.
화가는 처연하면서 절박한 지구 상황을 무상한 꽃으로 묘사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늘 제정신인 사람들의 외침에 대해 영화 속 풍경처럼 반응하고 살아오면서 용케 멸종하지 않고 버틴 종(種)”이라며 “세상은 무상(無常)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까닭은 에고(Ego)가 지배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했다.
생긴 것은 사라지고, 태어난 것은 죽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면 지구 재앙 또한 만물 순환 고리의 일부일 뿐이다. 대중의 욕망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지구 종말은 여전히 환각의 놀이터이다. 그러나 화가는 민디 박사와 동료, 가족들이 사랑을 확인하며 기도로 종말을 맞이하는 풍경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다. 에고가 지배하는 욕망의 숲을 지난 이들이 참 자아와 만나 깨닫는 사랑의 꽃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별빛으로 푸르게 빛나는 그림의 하늘 배경처럼 할리우드 영화의 풍자극에서 만물의 섭리를 깨닫는 맑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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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UP
_ 권기덕(지구)는 지구가 죽는다고 했다
멈출 수 없는 디비아스키 혜성의
지독하고
우주적인 사랑(지구)는 딸기잼을 밥에 비벼 먹으며
지구가 죽지 않기 위해선
가면을 벗고
나체로 드러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고 했다지구가 사랑스럽지만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보여줘요지구를 유리 식탁 위에 눕힌다
누군가는 지구 입에 돈을 물리고
누군가는 지구 몸에 낙서를 하고
누군가는 지구 귀에 욕설을 퍼붓는다
누군가는 지구 눈에 선거홍보물을 붙이고
누군가는 지구 배꼽에 죽은 개구리를 올려놓으며
누군가는 지구 목에 뱀을 풀어놓는다식탁 아래 푸른 악어가 입을 벌린다
식탁 다리 하나가 부러진다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구는 살아갈 수 있을까요?가질 수 없는 건 가볍지 않습니다
웃을 수 없는 건 웃기지 않습니다그저 장난스러운 립(lip)을 기대했나요?
(지구)는 낙담한 채
지구는 어차피 죽는다고 했다보통의 일상은
위선과 욕망에 가려진 착한 이웃과
반복되는 저녁의 풍경들지구는 절망했고
지구는 수치심으로 가득했으며
지구는 빛과 우주먼지가 되는 상상을 했다지구는 다시 태어날 계절이 찾아온다면
(지구)의 기억이 필요하다고 했다죽어서도 함께 바람이 흐르는 사이였으면 했다
시인 권기덕은 지구를 의인화했다. 그것도 밝고 긍정하는 자세로 업(UP)을 주문한다. 무거운 주제를 희화화한 영화처럼 시 속에서 경쾌한 블랙 코미디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지구가 유리 식탁 위에 눕혀졌다. 돈과 낙서, 욕설로 유린당한다. 선거 홍보물에 뱀까지 풀어놓으며 지구를 농락한다. 절망한 지구는 빛과 우주먼지가 돼 산화하는 상상을 한다. 과연 지구는 살아갈 수 있을까.
시인은 ‘죽어서도 함께 바람이 흐르는 사이였으면 했다’고 끝을 맺는다. “결국 지구는 다가온 운명에 죽음을 면치 못하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날 지구의 미래를 떠올려 본다. 지구와 진실한 (지구) 사이에 바람이 흐른다면 말이다”라고 시작(詩作) 노트를 적었다.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괄호 안 지구이다. 괄호는 설명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영화 속 천문학자들이다. 그들은 정치가, 언론인, 기업가와 달리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이 지구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괄호 안 선한 지구인 것이다.
화가와 시인은 입을 맞춘 듯 지구 멸망의 대재앙에서 인간성 회복과 부활을 꿈꾼다.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가 후반에 등장하는 율(티모시 살라메)이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민디 박사 가족의 식탁에서 감동적인 기도로 사람들을 위로하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율은 지구 멸망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이다. 세속적인 지구인들과 구별되는, 신앙의 힘을 응축한 인물이다. 그를 통해 모든 갈등이 봉합되고, 종말 또한 끝이 아님을 시사한다. 지구라는 물질적 종말에도 지구를 살아온 인류 문명의 정수인 셈이다. 그래서 지구가 다시 태어날 계절이 찾아왔을 때 (지구)의 기억이 필요한 이유이며,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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