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㉓ 쿠팡노동자, 경제학도가 꿈꾸는 탄핵 이후 세상

"민주주의 주체는 바로 우리... 정치는 가까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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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박혜인(33) 씨는 스스로를 ‘경제학도’, ‘쿠팡노동자’로 소개했다. 혜인 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 졸업 후 쿠팡 본사 계약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했고, 현재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처음 쿠팡 물류센터로 일하러 갔을 때 다음엔 오지 말아야지 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 일자리 선택지가 많지 않아서다. 혜인 씨는 쿠팡 물류센터에선 고객이 요청한 상품을 모으는 ‘집품’, 포장, 상품 진열 업무, 계약직 당시에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격을 정하는 ‘프라이싱’ 업무 등을 했다.

▲ 지난 1일 윤석열 퇴진 17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박혜인(33) 씨가 행진 차량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업무 자체는 사실 크게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문제는 노동 강도죠. 쿠팡에서 노동자들이 1시간에 몇 개의 상품을 집품하는지, 진열하는지를 관리자들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그래서 일용직 노동자한테 빨리 하라고 재촉하기도 하고요. 점심시간 40분, 별도 휴식 시간이 20분으로 휴게 시간이 1시간인데 물류센터가 되게 크다보니까 휴게실 가는데만 10분 정도 걸리니까 사실상 휴게실에 가기도 힘드니까, 휴게 시간을 제대로 쓰기 어려워요.”

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했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종 물류센터에 간다. 쿠팡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집약된 곳이다. 혜인 씨는 “고객이 주문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집품이 이뤄진다. 빠른 배송을 위한 심야 노동도 빈번하다. 저도 야간 노동을 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며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나 건강권을 요구하기가 어렵고, 이를 위한 조직화도 쉽지 않다. 비용과 절감, 이윤을 우선으로 돌아간다”고 짚었다.

계약직으로 프라이싱 업무를 할 땐 재택근무였지만,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을 정도였다. 재계약은 3개월 단위로 이뤄졌고, 시간 당 업무 처리량도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기준에 미달되면 추가 교육을 듣거나 재계약이 어려웠다.

혜인 씨는 “컴퓨터 마우스가 5분 정도 안 움직이면 관리자에게 메신저를 통해 바로 연락이 온다”면서 “하루 8시간 근무 중 30분 정도를 제외하면 마우스나 키보드를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1분 정도 멈춰있으면 그때부터 기록이 되고, 30분 이상 넘어가면 안 되는 게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학도’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경제적 약자들을 보듬고, 더 나은 경제 환경 만들어지길
광장의 깃발 보며, ‘아름다움’ 느껴

혜인 씨는 평소 관심있던 정치경제학, 자본주의에 대해 더 파고드는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오는 3월 경북대 경제학과 일반대학원 입학도 앞두고 있다. 혜인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예습도 하고, 걱정도 하고 있다. ‘경제학도’로 살면서 잘한 일 중 하나로 <자본론>을 완독한 것을 꼽는다. 혜인 씨는 “사실 쉽지 않은 책인데, 전문 분야로 삼고 있어서 진학도 하게 됐다. 경제학 중에서도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있다.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는 청년 사회주의자 모임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될 당시에는 모임 회원들과 함께 여의도 집회에 나갔다. 혜인 씨는 “사회주의라는 게 자본주의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 운동은 청년들이 모여서 이 자본주의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해서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 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을 나눈다”고 소개했다.

혜인 씨는 정치가 경제적 약자들을 보듬고, 더 나은 경제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장의 시간을 경험하며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그는 “윤석열 계엄 이후로 경제가 더 안 좋아졌다. 환율도 급등하고, 12월 신용카드 총 사용액도 되게 많이 줄었더라.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준 것”이라며 “윤석열의 ‘나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정치가 국민의 삶,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게 크구나 느꼈다”고 체감했다.

▲ 대구시민시국대회 집회에서 도열된 깃발들 모습 (뉴스민 자료사진)

“예전에는 정치가 여의도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 시장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광장에 나가 집회에 참여하고, 또 투쟁 현장에서 연대를 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체는 바로 우리 모두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라는 게 멀리 있지 않구나 했어요. 우리가 당당하게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같이 경청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정치구나 싶어요.”

혜인 씨는 지난 1일 윤석열 퇴진 17차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선 마무리 집회 때 자유발언자로도 나섰다. 그를 통해 윤석열의 노동관에 대해 비판했다. 혜인 씨는 자유발언에 나선 이유로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거부권 행사를 너무 많이 했다. 거부권 쓴 법안들을 제가 ‘노션’을 통해 하나, 하나 정리했는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안이 너무 많았다. 특히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 3조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매주 집회 참석은 어렵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되도록 참석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집회에 참여한 혜인 씨는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이 건재하다는 생각을 깨주고 싶다. 대구경북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집회에 나가고 있다”며 “집회에 참석해서 수많은 깃발들이 펄럭이는 모습들을 보며 아름다움도 느꼈다”고 생각했다.

혜인 씨는 이를 보며 시도 썼다. 특히 평화 상징 비둘기를 통해 투쟁의 결기를 표현했다. 평화적인 집회를 통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지만, 그 메시지는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
네모난 빌딩숲 도시의 하늘 대신에
깃발, 수많은 깃발을 보았을 때

기수와 눈이 마주치고
무지개색 깃발이 무지개처럼 펼쳐졌을 때
연대해달라는 외침에 한달음에 기수가 달려와줘을 때
수많은 기수들이, 깃발들이 꽃처럼 피어날 때
마침내 기수가 동지로 되었을 때!
쇠종에 머리를 부딪히는 비둘기처럼 살아야지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