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대보름이 이틀 남은 1635년 음력 1월 13일,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예천군수 홍진문이 안동을 거쳐 예안을 찾았다. 세금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토지를 측량하는 양전量田 때문이었다.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전국 대상 양전은 20년마다 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지역 단위에서는 매년 토지의 증감이나 비옥도, 풍·흉년 등을 조사해서 세금의 근거로 삼았다.
세금 규모 결정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조선의 양전은 단순히 토지의 물리적 크기를 재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개간이나 재난에 따른 토지 유실 등과 같은 물리적 증감도 확인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토지 비옥도에 따라 산출량을 매기는 일이다. 토지 1마지기가 어떤 곳은 150평, 어떤 곳은 200평으로 물리적 크기에 차이가 있는 이유다. 이를 결부제結負制라고 부르는데, 이로인해 같은 물리적 크기의 땅이라도 양전하는 사람이 높은 등급으로 평가하면, 토지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세금도 늘었다.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는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 땅의 등급을 높게 평가하려 했고, 백성들 입장에서는 토지(의 품질)를 줄여 세금을 적게 내는 게 중요했다. 양전을 위해 파견되는 차사원差使員 역할은 각 도의 감사 휘하에 있는 도사가 담당했지만, 경우에 따라 타지역 수령에게 이 업무가 위임되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공적으로 이를 처리한다는 객관성 담보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예천군수 홍진문이 예안현을 방문한 이유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진문은 아침부터 시내를 거슬러 올라 제천댁의 목화밭을 양전했고, 김광술의 집터까지 양전을 했다. 두 곳의 양전을 마친 후, 오천에 있는 탁청정으로 내려와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예안현 내의 들녘과 땅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양전했다. 심지어 날이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횃불을 들게 한 후 장부에 기재된 땅을 직접 재어 가면서 측량을 계속했다. 얼핏 보기에 양전을 담당한 차사원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홍진문의 이러한 행태는 일반적인 양전 차사원과 달랐다. 보통 다른 고을에서 파견된 차사원은 관례에 따라 한두 차례 측량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통은 각 고을에서 이루어진 자체 양전을 심의하는 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실제 각 군·현에서도 내부적으로 세금의 양을 가늠하고 예측하기 위해 자체 양전을 하므로, 도 차원에서 파견된 차사원이 모든 땅을 대상으로 한 양전을 할 필요도 없고 실제 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홍진문은 마치 예안현 땅 전체를 확인하겠다는 듯, 예안 땅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심지어 양전에 협조적이지 않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위력을 가하기도 했고, 양안과 조금의 차이라도 있으면 이를 꼬치꼬치 캐고 다녔다. 한 두 개의 결함만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예안현 자체 양안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고, 이를 잘못 작성한 책임을 예안현감에게 물리려는 듯 보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김령에 따르면, 예천군수 홍진문은 오래전부터 예안현감 남연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남연의 행실로 인해 홍진문이 크게 화가 난 일이 있었다. 기록이 없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남연의 못난 행동으로 인해 홍진문이 예안현감에게 앙갚음 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힘없는 백성들 뿐만 아니라, 사족의 거처까지 일일이 측량하고 다니면서, 양전을 핑계로 무언가 사단을 일으킬 속셈이었던 듯했다.
양전을 통해 지방관을 곤란하게 만들 방법은 단순했다. 땅을 누락시키거나 토지의 질을 낮게 평가해서 국가에 바칠 세금을 지방관이 편취했다는 사실을 찾아내면 이는 탄핵의 사유가 되고, 실제 이로 인해 파직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사실을 찾기 위해 불쌍한 백성들은 하루 종일 양전사에 불려 다녀야 했고, 지역 사족들은 자신의 거처까지 들락거리는 양전사 휘하 아전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두 수령의 감정 싸움에 등이 터지는 것은 예안현 백성들 밖에 없었다.
사람 간 사적 감정싸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공적 사안과 결부시키면, 등이 터지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교수간에 감정 싸움을 하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직장 내 부서장들이 감정 싸움을 하면 그 피해 역시 힘없는 부서원들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국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집단이나 사람들이 자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공적 장치를 이용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