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㉒ 대구 ‘윤석열 퇴진’ 광장 꾸린 사람들-김무강, 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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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4일 오후 찾은 대구 달서구 민주노총 대구본부 입구에는 지난 주말 집회에 사용된 물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가 매주 토요일 열리고 있기 때문에 정리할 틈도, 필요도 없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조직으로 지역 노동 사안에 대응하고 산업별 노조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 이들은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대구에서 광장을 유지하는 주체 중 하나다.

민주노총에서도 다양한 광장에 대한 고민을 듣기 위해 김무강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책기획국장, 현지현 정책선전국장을 만났다. ‘광장’은 집회가 열리는 물리적 공간을 뜻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말하는 모든 사람과 장소, 시간을 상징한다. 시국대회, 집담회, 트위터 등에서 대구 시민들이 연 광장은 보수정당 아래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협받아 온 목소리를 담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일 오후 대구 달서구에 있는 민주노총 대구본부 사무실에서 김무강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책기획국장, 현지현 정책선전국장을 만났다.

현지현 정책선전국장은 매주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국뉴스를 전하고 있다. 직접 한 주 동안의 주요 뉴스 브리핑을 정리하고 무대 위에서 최대한 쉽게 핵심만 전달한다. 우리가 놓쳐선 안되는 뉴스가 뭔지, 어느 지점에서 함께 분노해야 하는지 친구가 설명해 주는 듯한 코너에 팬도 생겼다. ‘다 같이 불러볼까요, 현 국장님’ 사회자의 멘트에 종종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있지만 왠지 친숙하다.

“뉴스 브리핑을 쓸 땐 가십거리는 배제하고 핵심 쟁점만 짚으려 노력해요.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쟁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같이 담고요. 선동은 중학생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해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다양한 세대가 광장에 함께 하는 만큼 어려운 단어는 풀어 쓰고요.” 현 국장은 현수막, 피켓 등 선전물을 기획하고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는 행진 선동을 준비하는 등 만능 활동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지현 정책선전국장은 매주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현 국장의 뉴스 브리핑’ 코너를 담당한다.

김무강 정책기획국장이 주력한 광장은 집담회다. 집회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늘어야 한다고 봤다. 지난 1월 24일 연 ‘탄핵파티 에피소드, 100개의 응원봉, 100개의 이야기’는 고민의 1차 결과물이다. [관련기사=[탄핵파티] ① 응원봉, 우리의 이야기 에피소드1(‘25.1.24)]

실내에 모여 조별로 둘러앉은 40여 명의 참가자는 12.3 윤석열 내란사태 이후 바뀐 일상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했다. 김 국장은 “토요일 집회가 계속 이어질 순 없다. 다만 광장에 온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위해 힘쓸 때 서로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초 목표했던 인원보단 집담회 참석 인원이 적긴 했지만 그만큼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시민단체, 노동조합의 여럿이 함께 기획했는데, 핵심은 ‘탄핵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였다”며 “참가자들이 꼭 시민단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가정,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도록 하는 데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준비했다. 연결된 사람들을 저희가 지지하고 지원할 수도 있다. 탄핵, 대선으로 이어질 정국에서 광장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금속노조 어묵트럭, 화물연대 커피트럭, 민주노총 머리띠 배포, 윤석열에게 엽서 쓰기 같은 기획 사업도 함께 준비했다.

▲23일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는 ‘탄핵파티 에피소드1, 100개의 응원봉, 100개의 이야기’를 개최했다. [관련 기사 [탄핵파티] ① 응원봉, 우리의 이야기 에피소드1 (2.01.24)]

다음 달 출범식을 앞둔 ‘민주노총 대구본부 달곰이지부’도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광장의 경험이 끊기지 않도록 더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고민은 민주노총이 잘할 수 있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귀결됐다. 여러 이유로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달곰이지부로 모여서 노동자의 권리를 이해하고 사회를 바라보면 좋겠다는 게 기획 취지다. 노동법 공부뿐만 아니라 전태일 이야기, 지역 노동사안에 대한 토론, 여성주의 책 읽기, 글쓰기 모임 등 신청자들로부터 여러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현 국장은 “코로나19를 겪은 10~30대의 경우 온라인상의 혐오에 더 쉽게 노출되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이 ‘광장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프라인 모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달곰이지부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신청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다. 민주노총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낮아진 영향이 있지만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기존의 노동조합 틀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가입도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민주노총이 광장을 연다’는 표현에 어색해하면서도 “고무적”이라고 답했다. 조끼와 깃발을 숨기고 광장에 나왔던 박근혜 탄핵 정국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자랑스럽게 깃발을 휘두르고, 참가자들은 그 아래서 안전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들은 민주노총의 일상 업무인 결의대회,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 참여하기도 한다.

김 국장은 “지금까지 민주노총이 해오던 집회의 방식이나 문화가 지금 열린 광장과 차이가 있다. 보통 민주노총 조합원끼리 (집회를) 한다면 항의 과정에 몸싸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분위기를 보며 경찰도 어느 정도 예상한다. 집회 일부인 조합원 발언도 관행적이거나 피상적인 측면이 있다. 시민들이 이걸 보고 실망할까봐 걱정되고, 긴장된다”고 말했다.

현 국장은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며 덧붙였다. “보통 집회를 하다 비가 오면 전 ‘어떻게 해야 빨리 끝내고 집에 갈까’ 생각한다. 집회, 기자회견 같은 자리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장에 참여한 시민들은 ‘비 오는 날 집회 참가하는 법’을 SNS로 공유한다. ‘김장 비닐 사서 덮어쓰기’, ‘다이소에 사는 판초 우비 사서 입기’ 같은 거다. 이런 순간 보며 반성하고, ‘더 열심히 해야지’ 한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연대할지, 지역 노동환경의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민주노총 대구본부의 고민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고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