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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 이 영화의 제목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고백할거야>로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김선빈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 숏-폼 제작지원작으로 작업한 이 괴이쩍은 제목의 단편은 언뜻 중세에서 근대 초입에 흔하게 볼 수 있던 유럽 소설 제목을 연상시킨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제목과 달리 당시 원래 제목이 그 자체로 한 문장을 이루던 그런 느낌이다.
예를 들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세계의 여러 외딴 나라로의 여행기. 네 개의 이야기. 처음엔 외과 의사, 그다음에는 여러 척의 배의 선장이 된 레뮤엘 걸리버 지음>이 정식 제목이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첫 출판 당시 제목은 좀 더 길다.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강 하구 근처 무인도 해변에 표류해 스물 하고도 여덟 해 동안 홀로 살다가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다. 흔히 ‘문장형 제목’이라 부르는 작명법이다.
제목을 눈에 확 들어오게 짓는 건 작품 소개에서 필수 요소일 터, 온갖 창의가 동원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돌출하지만, 본 작품의 제목은 참신함이라 해도 뭔가 선을 넘은 기분이다. 일단 어떻게 읽어야 할 지부터 고민되지 않은가. 한글 문서로 작업하려면, 이대로는 저장도 할 수 없다. 대체 왜 이런 제목을 고집한 걸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본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문장형 제목’은 제목을 천천히 읽는 것만으로 작품에 담긴 내용이나 주제를 독자가 유추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을 그렇게 독해해보자.
컴퓨터 작업을 해본 이들이라면 금방 어떤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할 법하다. 호기심이 점화된 가운데 내가 생각한 게 정답일까 갸우뚱하는 관객에게 곧 해답이 등장한다. 대체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많은 이들이 당연히 품었을 의문은 영화의 도입부로 곧바로 연결되니 말이다.
말 못 할 고민에 휩싸인 주인공이 보이는 해프닝과 숨은 진심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E 드라이브 ‘말똥가리’ 폴더 속에 들어있는 파일명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2년 전에 찍었던 단편영화 제목이 곧 이 작품 제목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곧바로 연결되는 한여름 땡볕의 영화 제작 현장.
주인공은 단편영화 연출 경력이 있지만 이후 잘 풀리진 못한 듯하다. 재능의 한계인지 운이 없어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는 지금 ‘남’의 영화 제작 현장에서 보조로 아르바이트 중이다. 원래 현장 통제를 맡기로 했던 게 슬레이터로 역할이 바뀐 상황. 그런데 아뿔싸! 영화 주연배우가 하필 전에 사귀다 헤어진 사이다. 이제 아무도 모르는 고민을 부여잡고 주인공은 전전긍긍하기 시작한다.
관객은 그의 고뇌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주인공은 죽을 맛이다.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고 싶지만, 아무리 숨고 싶어도 주인공의 보직은 슬레이터다. 자신의 초라한 영락을 전 연인에게 감추고 싶어도 결국 상대는 그를 알아볼 수밖에 없는 노릇.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닌지 반가움에 주연배우는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온 상태다. 옆집 불구경하는 관객의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가는 중이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고 외면하려 해도, 결국 정체가 발각된 걸 깨닫고 혼란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오랜만에 복귀한 제작 현장은 그에게 잊었던, 혹은 도피하고 싶던 영화의 꿈을 서서히 부활하게 만든다. 그가 자포자기한 채 외면하던 지난날의 꿈은 옛사랑의 추억과 버무려 한 번 점화되니 꺼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지 않아도 한여름 무더위 속인데 말이다.
지역 ‘영화 청년’의 자전적 초상을 화면 가득 재연하다
이 난해한 제목을 가진 영화가 예정하는 관객은 과연 누구일까? 아마도 첫 번째 관객은 영화를 만든 감독 자신일 것이다. 두 번째는 함께 작업하는 주변의 스태프와 동료들, 세 번째는 위로와 응원이 절실히 필요한 동 세대 청춘들일 테다. ‘지방러’로 영화를 꿈꿨거나 현재진행형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또래 세대와 많은 고민을 공유하지만, 여전히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은 망설여지는 그런 이들에게 바치는 ‘청춘 송가’ 같은 작업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헤어진 커플의 과거와 현재를 그들이 만나게 된 영화현장을 매개로 풀어낸 로맨스 드라마 골격을 취한다. 그와 동시에 주인공이 겪고 있는 어떤 슬럼프를 극화하듯 묘사한다. 영화의 꿈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지만, 누구에게도 영화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지방 출신이자 정성을 쏟아부은 작품으로 영화제 한번 가보지 못해 제작 현장에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열등감이 영화 내내 누적된다. 그런 자괴감에 주인공은 더더욱 실수 연발을 거듭하고 이는 영화를 보는 (그리고 주인공의 심리를 아는) 관객에겐 피식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오직 외부적 상황만 놓고 보면 극 중 제작진에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그런 주인공을 지켜보던 주연배우는 마침내 구원의 천사처럼 손을 내밀어준다. 그와 함께 플래시백으로 그들이 만났던 2년 전 제작 현장이 소환된다. 지금은 외장 하드 속 파일명(바로 이 영화의 제목)으로만 남은 그 당시 활기 넘치던 주인공의 모습이 재생된다. 역시 엉망진창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말이다. 엄격하게 따지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영화 촬영과 사적 감정이 막 뒤엉킨 혼란한 상태였지만 주인공에게도 좋았던 옛 시절 풍경이 있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또 사고를 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동안 꾹 억눌러왔던 창작 의욕이 넘친 결과로 일어난 문제다. 물론 그 제작 현장에선 다시 주인공을 쓸 확률은 낮아질 테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주인공에겐 뭔가 잃었던 걸 회복하는 계기로 남을 그런 한여름의 어느 날인 건 분명하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밤하늘에 별이 떠올랐다.
지방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의 참을 수 없는 소외감
영화는 2030 독립영화, 흔히 ‘학생영화’다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전형적 형태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작업을 계속하는 감독 자신에 대한 회고와 위로, 현재에 대한 성찰이 가득히 뒤엉킨 채로 말이다. 누군가에겐 위안 혹은 치유로, 다른 누군가에겐 나르시시즘과 자기변명으로 보이기 딱 좋을 형태의 작업이다. 관객 각자의 가치관과 삶의 좌표에 따라 본 작품에 대한 인식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할 법하다.
청년세대의 독립영화인들이 자전적 주제로 작업을 선보이는 건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지역 창작 중에도 그런 유형의 작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왔다. 지역 독립영화 ‘클래식(?!)’이라 할 <아스라이> (2008, 김삼력 감독), <그들 각자의 영화판> (2014, 김홍완 감독) 같은 작품이 그 예시라 하겠다. 김선빈 감독의 이번 작품 역시 넓게는 그 범주 안에 속한다.
하지만 뭔가 조금 다르다. 미묘할 수 있지만, 작품은 무한 불안과 열패감에 휩싸인 채 몸부림치는 (감독과 제작진의 현실을 압축해놓은) 주인공과 차가운 주변 환경을 묘사하는데 치중하는 고단함이 가득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묘하게도 그 안에서 긍정과 의지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처럼.
물론 전국 각지에 영화학과가 늘어나면서 유사한 톤의 작품을 목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묘한 변별력이 꿈틀거린다. 대개 정규 영화과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는 작업이 4학년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의 불안을 표현하거나, 그와 반대로 대책 없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뛰어노는 청년의 발랄한 한때를 표현는데 그치는 정도라면,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는 행위의 명과 암을 조명하는 일군의 작업은 보다 ‘다크’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
이 영화 속에서 보이듯, ‘대구에 영화학과 없지 않나요?’ 툭 던지는 악의 없는 다른 제작진의 질문은, 호의를 가장한 ‘대구에서 영화를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라는 기이한 위로로 연결된다. 숱하게 들어봤을 그런 무의미한 이야기들. 심지어 지역 내에서도 여전히 받는 대접을 소환한다. 케케묵은 옛말처럼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는’ 걸 당연하게 치부하는 현실 속에서, 무심코 던진 돌에 맞는 개구리 처지다. 지역을 떠나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건, 서울에 가지 못하는 이류, 삼류에 불과하다는 뒤틀린 인식으로 인해 서글퍼지는 지역 청년의 초상이다.
예정된 패배에 주눅들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이어가는 영화
그런 냉대와 무시 속에서 소외된 지역 영화인들의 자전적 작업은 자연히 애조 어린 기운을 휘감은 채 탄생하곤 했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어나듯 그런 정조를 띤다. 앞서 언급한 ‘클래식’ 역시 그런 애절함이 가득한 기록영화 뺨치는 작업이다. 하지만 지역의 영화창작자 중에 유독 김선빈 감독이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들은 그런 어쩔 수 없는 열패감을 아직 소환할 때가 아니란 여유로움이 진하게 풍겨온다. 감독이 낙천적이어서일까 아니면 예전의 창작자와 다른 세대의 기운이 지역 영화판에 유입된다는 증명일까.
물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조금만 주변 상황을 돌아보면, 한국 영화판이 침체와 불황에 휩싸인 상태로 상당 기간 이어지리란 것쯤은 파악이 어렵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과 비교해 경쟁력이 취약한 건 어쩔 도리가 없는데, 더 경합이 힘겨운 시절로 접어든 것이다. 원래 문화예술 영역이 ‘열정’과 ‘재능’, 거기에 ‘운빨’까지 3박자가 딱딱 맞게 떨어져도 모자란 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다수의 영화를 꿈꾸는 청년세대는 (서울/지역 막론하고) 그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접을 수밖에 없을 운명이다. 부정할래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저 열패감에 사로잡힌 채 자학하듯 창작에 임하는 건 자신을 갉아먹기 쉽다. 억울하고 서러워도 결국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노릇. 그리고 대구 지역 영화는 여전히 그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도전하는 중이다. 이 영화가 끝나고 주인공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다시금 되돌아온 (사랑과 꿈이라는) 이중의 기회에 다시 좌충우돌 도전하지 않을까? 그런 순수한 열정이 청춘에 어울린다는 명제에 긍정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는 씩 웃으며 기분 좋게 11분을 투자해도 좋을 법한 자기 반영 소품으로 받아들여질 테다.
<작품정보>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
Action!
2021|한국|드라마|11분
감독/각본/편집 김선빈
주연 김다정(소이 역), 김미은(경민 역)
출연 장병기(감독 역), 이재남(촬영감독 역), 정예진(조연출 역),
강소령(인물FD 역), 이광민, 박준희(그 외 스태프 역)
촬영/조명 장현빈|PD 박재현|동시녹음 이명형|사운드믹싱 홍성준(이너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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