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나의 일이, 너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라는 각성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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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갈림길, 난처한 부탁을 받은 주인공

‘지선’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곧 정규직 전환 심사를 앞둔 지선은 성실하지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퇴근 후 태권도장에 다니면서 신체를 단련할 겸 정신수양 중이다.

같은 사무실의 계약직 선배 ‘영주’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퇴사 의사를 밝힌다. 다들 놀라긴 해도 그러려니 넘기지만, 지선은 뭔가를 알고 있는지 표정이 밝지 않다. 영주는 지선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고, 그 부탁은 퇴사의 원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영주는 사무실 팀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그만두는 것이다. 하지만 팀장이 부서 내 상사인 데다 겉으론 별 큰 문제 없이 팀을 이끌어 왔기에 영주와 가깝던 이들도 그의 퇴사 원인이 설마 그것일 거라 생각하지 못한다.

야근하던 지선은 우연히 영주에게 직위를 이용해 압박하는 팀장의 행태를 목격했다. 영주 역시 지선이 자신들을 지켜봤다는 사실을 안다. 지선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문다. 예정에 없던 영주의 퇴사 탓에 팀 내 업무가 조정되어야 할 상황, 팀장은 지선에게 업무 공백을 대신 채워주길 기대하며 정규직 전환에 힘써 주겠다는 당근을 넌지시 내민다. 결국에 지선은 영주가 부탁한 진술을 거절한다. 못내 마음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선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유일한 목격자인 지선의 진술 여부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 향방을 가를 결정적 단서다. 그게 지선에겐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정규직 전환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 팀장에게 호의를 얻는 것과 비교해 정작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어 보이는 영주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있을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지선은 나름대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자료를 검색하며 끙끙 앓는 중이다. 과연 그의 선택은 어디로 기울까?

주변 눈치 대신,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수련의 과정

주인공 지선에게 지금 직장은 사회생활 첫 공간일 테다. 앳된 얼굴에 말수가 적고 먼저 말하는 법이 거의 없는 그는 시킨 일은 성실히 해내지만, 눈치를 보고 항상 주눅 들어 있다. 딱히 남을 험담하거나 시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정의감에 불타 행동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감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마 영화를 접하게 될 관객 각자가 자기 일처럼 감정을 이입할 대상으로 지선의 캐릭터를 설정했을 테다. 그런 지선의 성향은 옆자리 정규직 ‘나은’과 관계를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실무를 거의 떠넘기면서도 업무분담 기록은 1:1로 숟가락을 얹는 정규직의 행태에도 딱히 반발하지 못한다. 사내 인간관계 역시 철저히 위계질서와 유불리를 따지며 대처할 수밖에 없다.

흔히 멀찍이 떨어져 생각하면, 같은 계약직인 영주가 어렵게 내민 청원을 지선은 도의적으로 수락해 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지선의 상황이 된다면 과연 그런 원칙을 준수할 수 있을까? 지선이 며칠 내내 끙끙 앓아가며 고민한 끝에 내린 소심한 계산을 비겁하다고 매도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평범한 우리의 속물성은 대개 그렇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선(역을 맡은 배우 이승연)의 표정을 가만히 응시한다면, 그의 겁먹은 눈동자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 머물러 어쩔 수 없다는 자조로 이야기를 끝내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그저 현실의 거울 반영이 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비록 무섭고 떨리긴 하지만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주변에도 말하기 힘든, 오롯이 자신만이 떠안고 책임져야 하는 고통의 과정이 공감을 획득해야만 영화의 주제의식이 제대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떻게 그런 동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지선 역을 소화한 배우 이승연이 가진 어떤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아직 온전히 성인이 되지 못한 경계선에서 표류할 것 같은 마스크를 지닌 이 배우는 역시 지역 출신 김선빈 감독의 <수능을 치려면>에서 좀비 떼를 뚫고 동료를 잃어가면서 대학입시를 치를 이유가 무엇인지 고뇌하는 역할로 본인의 얼굴을 각인한 바 있다. 본 작품 역시 그런 배우 특유의 색깔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걸로 보인다. 때로는 우유부단할 정도로 망설이며 두려워하다가도, 일단 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을 향해 단호하게 눈썹을 모으고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오래 인상에 남을 이미지의 소유자다.

두 번째는 태권도 수련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상황과 변화를 전개하기 위해 이중적인 동선을 병렬한다. 당연히 1순위는 모든 사건의 진원지인 회사 사무실이지만, 그 안에서 그저 쳇바퀴처럼 돌아갈 것 같던 지선의 느리지만 확연한 변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건 마치 쉬어가는 것처럼만 묘사하던 태권도장 수련 장면이다. 처음 태권도장에서 지선은 회사에서 그가 보이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다.

여기에서 심신을 단련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고자 했지만, 정작 그의 어설픈 동작이나 그저 시킨 대로 따라가기 급급한 모양새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저 힘자랑하거나 남을 쓰러뜨리기 위한 공격 용도가 아니라 무예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듯 지선의 고민이 심화 성숙하는 변화가 수련 현장에서의 자세로 이입되기 시작한다. 처음과 끝에서 수미쌍관을 이루는 도장 장면을 놓치면 영화의 절반은 날리는 셈이다.

타인의 불행은 과연 나의 기회이기만 할까?

지선은 영주의 부탁에 처음엔 지극히 평범한 선택을 내린다. 곧 퇴사하고 남이 될 계약직 선배 vs 계속 얼굴 봐야 할, 특별히 나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고 오히려 호의적으로 도움이 될 정규직 팀장 사이에서 지선은 자신의 직장 생활을 걸어야 한다. 그가 열심히 검색하던 인터넷 정보로만 세상은 돌아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주의 퇴사 결심 과정에서 지선의 싸늘한 답변을 보며 남의 불의를 규탄하듯 매도하기란 은근히 어렵다.

하지만 지선은 천성이 선량하다. 자기 보신과 이익 계산 앞에서 나 혼자 뭘 할 수 있나, 내가 진술한다고 결정적 증거가 될까 같은 합리화를 해 봤지만, 같은 계약직의 고통을 외면한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양심의 가책으로만 지선의 변화를 설명하지 않는다. 감정의 동요는 이성적 합리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감독은 모두가 궁금할 미스터리,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한참 뒤에야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지선이 숙고한 끝에 내리게 될 결론의 개연성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저 영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선에게 예정된 미래라는 거다. ‘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계약직 직원에게 마치 운명처럼 가해질 구조적 폭력이라는 무언의 해설이 화면을 통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사람을 소모품 용도로 간주하는 인식, 신분제처럼 서열을 나누며 ‘더 큰 책임’을 운운하는 합리화, 그에 길들어진 사내 분위기 속에서 초반에 지선이 갖던 각자도생 의식이 버무려진다.

지선 앞에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지가 있는 듯 보인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시도하는 영주의 아무 보상 없는 부탁 vs 꿈에 그리던 정규직 전환 열쇠를 쥔 팀장의 호의라는 대비다. 단순 손익 계산으로 치자면 중반에 보인 지선의 1차 결정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느린 대신에 아마도 수십 번 다시 생각해 봤을 마지막 선택이 그가 지닌 은근한 내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간단치 않은 고뇌를 거쳐 주인공은 영주가 처한 불의가 자신에게도 다가올 위협임을 깨닫는다. 나는 다를 것이란 근거 없는 환상 대신,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구조적으로 직시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결론이자 주인공의 성장을 확인해 주는 변화상이다.

청년노동자가 당면한 세계, 그 두 번째 경과로서의 작업

왜 다수의 노동자가, 정규직을 양적으로 추월한 지 오래인 비정규직이 왜 단결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는 오랫동안 평범한 이들에게 물음표가 되어왔다. 하지만 실은 그 답은 어렵지 않다. 다만 몇 겹의 연막으로 은폐되고,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길 망설였을 따름이다. <바운더리> 속 지선의 방황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은 파편적 상황과 남들이 수군대는 여론엔 귀를 쫑긋 세우고 ‘객관’이라 단정하지만, 타인의 절절한 호소와 넘치는 증거는 아주 쉽게 ‘특수’한 사정이라 치부한다. 진실을 호도하는 연막도 문제이지만, 넘쳐나는 ‘FACT’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기를 꺼리는 세태 탓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분위기에 편승해, 여론의 ‘대세’를 추종하며 자기 판단도 아닌 것을 마치 주장하듯 펼치곤 한다. 사실이 아니란 게 밝혀져도 굳이 책임질 일 없으니 간편하고 뒤탈이 없다. 그렇게 쉽게 수군대며 타인의 고통을 가십거리로 소비한다. 비록 어떤 방향으로 결단하건 심사숙고를 거쳐 내린 결론이라면 책임 역시 감내할 수 있다. 지선은 그렇게 당장 눈을 가리는 유혹의 실체를 꿰뚫는 수련을 통해 가야 할 길을 찾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 길이 세속의 성공과는 무관하지만 말이다.

감독의 전작 <손끝>을 인상 깊게 봤다.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주인공이 중간에 자신을 배반하고 홀로 살아남길 택한 점장을 찾아가는 과정,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살아남기 위한 시련, 그에게 다가온 행운이 실은 같은 처지의 이웃을 향한 배려의 온정임을 확인하는 과정이 유려한 작업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즉자적 분노를 만만한 타자에게 토해내는 건 짜릿한 쾌감이지만, 정작 자신이 당한 사회적 모순과 억압을 타파하는 데엔 별 도움이 안 됨을 이해하려는 고통이 응축된 이야기였다. <바운더리>는 마치 <손끝>의 주인공이 절치부심해 잡은 첫 직장에서의 사연처럼 자연스레 이행한 이야기다.

대개 <바운더리>에 담긴 설정은 요즘 한국 독립영화들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청년층의 취업 현장 잔혹사에 도매금처럼 여겨질 법하다. 평범한 취업초년생이 어렵게 취업을 하는 순간 겪게 되는 다음 단계의 수난이다. 본 작품의 장점이라면 그저 나 자신이 겪는 부당함, 혹은 그걸 말없이 지켜보는 관찰자의 비겁함을 묘사로만 그치지 않고 풍경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선명하게 감정 이입하기 좋은 선과 악 대비, 혹은 압도적 힘의 우열 때문에 정당화되는 방조를 넘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부러 회색지대를 설정하고 법 적용만으론 애매하게 피해갈 구석이 있는 소재에 도전하는 방식이다.

주인공이 성장하듯 기대해보는 감독의 영화적 진화

<손끝>이 간결하게 단편소설의 작법으로 영화를 끌어갔다면, <바운더리>는 이야기 규모를 확장하고 상영 분량도 대폭 늘렸다. 소설로 치면 중편소설로 판을 키운 격이다. 그리고 이미 적지 않게 비교 사례가 양산된 청년세대 직장 체험기 형태를 취했기에 묻히는 측면도 감수해야 한다. 아이디어와 반전만 잘 뽑아도 먹고 들어가기 좋은 문법 대신에 이제 긴 호흡과 신랄한 품평 앞에 노출되는 셈이다. 그러나 변화 요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문법이 크게 변하진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다소 흐름이 느리고 종종 집중력이 감소하는 기분이 들긴 한다.

이런 아쉬움은 경험치의 한계에서 오는 진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떠올려도 막상 실행 과정에선 이전의 관성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일정한 오류와 그로 인한 비판, 피드백을 통한 수정을 거쳐야 해소 가능한 문제다. 여기에 창작자 내면의 욕망, 보다 자기완결 구조로 이야기를 확장하고픈 도전의식이 ‘장편 구조를 띤 중단편’ 현상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바운더리>는 그런 과도기의 산물 측면이 여러모로 관측되는 작업이다.

물론 이는 경험 축적과 (영화 속 지선처럼) 과감한 도전으로 극복할 숙제다. 감독은 전작에 이어 자신이 21세기 한국 사회 현실과 본인이 속한 세대의 현주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명확한 일관성을 지닌 연작을 공개했다. 좌충우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산만한 경향 대신에 ‘작가’로서의 태도가 뚜렷하게 관측되는 셈이다. 이제 두 편의 작업을 봤을 뿐이니 한 인간이 영화 속에서 성장하듯 감독의 작품 세계 변화도 기대해볼 만하다. 세 번째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주인공의 인생 다음 행보를 호기심 가득 기다릴 수 있겠다.

<작품정보>

바운더리
Boundary
2023|한국|드라마|30분|전체관람가
감독 정수연
출연 이승연, 서석규, 홍예지, 장태연, 이서하, 조영근, 강소령, 최용욱, 신웅기
촬영 전상진(컬러플러스)|프로듀서 임진호|미술 이수진|
동시녹음 송현직|조감독 김재은|스크립터 진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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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