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⑱ “누구나 소수자성은 있다, 모두가 함께 만드는 민주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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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김아영(23) 씨는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두 번 정도를 제외하고 대구시민시국대회에 꼬박 꼬박 참석하고 있다.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갈림길에 서있던 오후 제15차 시국대회에도 출근 도장을 찍었다. 집회 시작 시각 보다 일찍 와서 앞자리를 사수하며, 행진을 포함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영 씨는 지난 3일 밤 느꼈던 두려움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미쳤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소름이 쫙 돋았다. 너무 공포스러웠다”며 “비상계엄을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역사로 배웠고, 박근혜 탄핵 때도 계엄이 논의된 적 있는 걸로 안다. 그때도 시위에 나왔기 때문에 계엄이 좀 더 실질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엔 실제로 계엄이 선포됐고, 해제되기까지 라이브를 통해 계속 봤다. 그 새벽이 정말 공포였다”며 “실제로 국회에 군인들이 총을 겨누기도 했고, 장갑차를 사람들이 막았다”며 “내 일상이 다 바뀔 수 있겠다는 공포, 총소리가 들릴까봐 너무 무서웠다”고 전했다.

그는 시국대회에 참석할 때마다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온다. 이날도 민주노총 대구본부 캐릭터 ‘달곰’이를 활용해 윤석열 ‘가속 구속 사형’, 국민의힘 ‘가속 해체 몰수’라고 적힌 손피켓을 직접 만들어 들었다. 피켓 테두리엔 꼬마 전구를 달아 손피켓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많은 집회 참가자들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손에 든 응원봉에는 민주노총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준 붉은색 머리끈도 매달렸다. 두건으로 활용한 수건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연대집회에 참여했다가 받은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의 갈림길에 선 18일도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참석한 김아영(23) 씨는 민주노총 대구본부 캐릭터 ‘달곰’이를 활용해 윤석열 ‘가속 구속 사형’, 국민의힘 ‘가속 해체 몰수’라고 적힌 손피켓을 직접 만들어 들었다. 피켓 테두리엔 꼬마전구를 달아 손피켓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졸업 후 대학원 입학을 앞둔 아영 씨는 “박근혜 퇴진집회 당시에 중학생이었는데, 엄마가 말려도 혼자 나갔다. 박근혜 퇴진집회가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고, 광장을 통해 탄핵이 빨리 이뤄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페미니즘이나 인권, 부조리한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평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와 현재 집회가 어떻게 다른 것 같냐고 묻자, “훨씬 더 개성화된 개인들이 광장에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아영 씨는 “그때는 잘 몰랐는데 박근혜 퇴진 집회에선 일부러 민주노총 조끼를 안 입고 집회에 가거나 했다더라. 지금은 개인들이 개성을 훨씬 더 자유롭게 드러내고, 가시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성소수자, 농민과 같은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수용되는 광장으로 확장된 것 같다”며 “사실 이들은 늘 광장에 있었는데 일반시민들에게 와닿지 않았고, 언론에도 주목하지 않았다. 남태령의 전봉준투쟁단 농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같이 오랫동안 해왔던 투쟁들이 보이고, 하나씩 저희의 시선이 닿는 것 같다”고 짚었다.

아영 씨는 “소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 합의된 것도 있겠고, 그전까지 소수자들이 꾸준히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왔던 결과물”이라며 “나와 같은 소수자 이웃을 찾고, 그들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광장이 과거보다 지금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소수자성’에 주목했다. 그는 “누구나 소수자성은 하나씩 갖고 있다”며 “저는 여성이고, 제 친구들 중에서는 성소수자도 있고,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TK딸’이라는 구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이전에는 TK 뒤에 붙는 수식어들이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았지 않았나. 물론 그게 현실이기도 했지만, ‘대구사람들 다 죽어야 한다’ 같은 험한 표현들이 퍼져있었다”며 “TK딸을 통해 저희 여성의 언어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가시화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선언, 우리가 계속 있었다는 존재에 대한 확인도 되는 것 같다”며 “그만큼 우리가 힘이 있다는 것을 TK딸이라는 명명 속에서 계속 키워나갈 수 있다. 그래서 좋은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과 관련해서도 “뉴스와 SNS를 통해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이번 법원 폭동은) 극우세력, 폭동을 ‘한국의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를 뜻하는 줄임말로 연애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모인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 집단을 의미하는 영미권 신조어)’ 범죄라고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공감이 된다”고 말했다.

폭동에 참여해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들 상당수가 2030 남성으로 확인됐고, 이들은 극우 유튜브나 극우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영향이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30 남성들은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내건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층으로 꼽힌다.

이어 “민주노총이나 전장연 집회를 대하는 공권력의 태도가 달랐던 점도 지적하고 싶다”며 “유튜브를 통한 극우스피커에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성살해(교제살인)나 여성을 상대로 한 20대 남성들의 강력범죄가 많았지만 대처가 미온했다. 그런 상황들이 쌓여서 ‘해도 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 지난해 12월 14일 대구시민시국대회에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든 김아영 씨. 참가자 뒤편으로 시민들도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 18일 <뉴스민>이 대구시민시국회의와 함께 발행한 호외의 1면 메인사진으로 실렸다. (사진=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달서구에 사는 아영 씨는 대구에서 살면서 체념도 적지 않았다. 그는 “선거 개표 방송 때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좀 힘이 빠지는 게 있다”며 “다행히 저희 가족 내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크지는 않은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집 밖에서는 (무조건적인 국민의힘 지지) 그런 분위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 했던 곳의 사장님도 선거운동 활동에 나설 정도로 국민의힘 지지자셨는데, 그런 소재를 꺼내면 평소와 다르게 대꾸를 안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극적 반항을 하는 정도”며 “무력감일지, 학습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도 있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씁쓸함도 표했다.

아영 씨는 최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구미 옵티칼 투쟁문화제 같은 노동자 연대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는 “내가 가서 힘을 보태면 안 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었다. 또 나를 위해서도 이런 연대 활동을 통해 답답함과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며 “목소리를 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좀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데 보탬이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평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도 여성과 노동 의제다. 그는 “환경과 동물권, 성소수자, 장애인 문제에도 조금씩 관심이 있는데, 특히 여성과 노동 의제에 관심이 많다. 당사자성이 있는 분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영 씨에게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들이 평등하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동네에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이나 혼자 가기 어려운 분들을 모시고 함께 투표장으로 가기도 한다. 사실 그분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지만, 그래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재산이나 권력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차별되지 않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광장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며 “광장이 계속 확장되고 커져야 지속 가능성도 커진다. 지치지 말고 다같이 ‘희망’을 보면서 계속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