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⑯ 깃발을 든 개인,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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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앞둔 구미 공단. 불타고 멈춰 선 공장은 외딴섬처럼 어둑하다. 특별한 대중교통이 없는 이곳에 지난 10일 500여 명의 노동자 시민이 모였다. 1년째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와 연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공식 행사가 끝나고도 2시간가량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노래와 연주로 시간을 채웠다. 노조 깃발을 든 이도 있지만, 소속된 단체 없이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1년 문화제 안내만 확인하고 수도권에서 온 이들도 있다. 무지개 깃발도 있고, ‘내 손에 있는 막대가 깃대 같냐 죽창 같냐’,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라고 쓴 깃발도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흔들린다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 깃발을 흔드는 야맘협(가명, 23) 씨는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수도권에서 버스를 맞춰서 구미에 방문했다. 야맘협 씨는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직후부터 여러 집회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도 여러 차례 함께하게 됐다. 전장연 시위에서 야맘협 씨는 인터넷 밈 ‘말벌아저씨’를 빗대, 전장연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말벌시민’이라는 밈을 퍼뜨리기도 했다. 전장연 시위 당시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집요하게 실명을 확인하려 하자 ‘나경원’이라고 대답한 뒤로 그는 실명 공개를 자제하고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야맘협 씨가 광장에 나오게 한 결정적 계기다. 한창 트위터를 하다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고, 경기도에 있던 그는 두려운 마음도 들긴 했지만, 순간 국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택시비 부담에 망설이게 된 그는 택시비를 고민했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초라하다는 무력감은 이내 윤석열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힘들게 지켜온 민주주의를, 무능한 대통령이 망가뜨리려 한다는 사실에 화가 식지 않아, 4일 첫차를 타고 국회로 향했다. 그리고 당일 오전 광화문에서 민주노총 등이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로, 여러 투쟁 현장에 발걸음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희망텐트에 참여한 야맘협(가명) 씨

야맘협 씨가 본격적으로 투쟁 현장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남태령’ 시위, 그리고 전장연 시위를 겪고서다. 농민들이 구성한 전봉준 투쟁단 행진이 남태령 부근에서 막히자 이들과 함께하려 모인 시민 중에 야맘협 씨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환대’를 느꼈다. 특별한 사회운동을 한 적도, 소속된 단체도 없는 개인으로서 낄 수 있는 자리일까 하고 생각하던 곳에서, 함께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큰 환대를 받았다.

“한국옵티칼 소식을 과거에 접한 적 있어요. 저는 어떤 명제가 헷갈릴 때, 특정한 정체성을 지우고 일반명사를 넣어봐요. ‘남자랑 남자가 사랑하는 게 말이 되느냐’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고치고. ‘사람이 불탄 공장 위에서 1년을 버틴다’는 말로 고쳐서 보면, 이상한 말이잖아요. 그래도 오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는데, 계엄 이후 남태령, 전장연 시위를 겪고서는 달리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큰 환대를 받았고, 저라는 개인도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연대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던 거 같아요. 지금은 어떤 단체도, 정당도, 동아리조차 해본 적 없는 저 같은 ‘개인’도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윤석열 내란 사태로 이어지는 여러 집회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드러내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사태를 해석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윤석열 탄핵 이후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방향을 제시한다. 야맘협 씨는 본인에게 두드러지는 소수자성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개인도 여러분과 연결돼 있으며, 이러한 개인도 연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윤석열 정권 때부터 사회적 우울감, 절망감이 심했어요. 한낱 개인인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감정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개인으로서가 아닌 연대를 통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저는 소수자성이 특별히 없는 편이라, 제가 왜 저랑 크게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혼자 화내고 울고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이해했어요. 전태일 열사의 짧은 유서에 ‘너는 나의 나다’라는 말이 있어요. 남이라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일부이고, 그래서 울고 화낼 수 있는 거라고요. 그래서 연대할 수 있고, 그게 사랑이에요. 이 마음을 지켜나간다면, 느리더라도 조금씩 세상도 변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야맘협 씨는 마지막으로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며, 냉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냉소에 빠지지 않은 것이 중요해요. 이곳에도 성중립 숙소가 준비돼 있고, 무지개 금속노조 깃발, 뱃지도 있잖아요. 연단에 서서 커밍아웃해도 같이 눈물 흘리고 웃기도 하고요. 조금씩 변해왔고, 인류애적 사랑은 아직 있다고 느껴요. 당사자성이 부족한 제 발언도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참 좋아요. 아르바이트에 지쳐 인류애가 떨어지는 날에도 광장에 나가면 깃대를 잡고 있는 손에 핫팩을 쥐여주는 분도 있고, 응원도 해주셔요. 냉소적 사회인 줄 알았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 사랑이 남아 있다고 느껴요.”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