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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유구한 전통 중 일부다. 산전수전 겪어가며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자신은 물론 가족과 공동체를 건사한 기성세대는 보람과 성취감을 누리지만, 분투의 과정을 거치며 늙고 쇠할 수밖에 없다. 고생해 일군 유산을 누리기엔 남은 시간도 별로 없고, 무임승차한 후속세대는 자신이 고생해 이룩한 업적을 날로 먹는 것 같다. 괘씸한 일이다.
그런 상실감은 여러 결로 나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렵게 쌓은 기반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후대에 관한 충고 어린 근심부터 이제 늙고 병들어 예전과 다른 육신에 비해 찬란히 빛나는 청년세대의 젊음에 대한 질투까지 합리적 조언과 감정적 시기를 오가며 뒤엉키곤 한다. 결국에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오는 주장과 실제 동기부여는 상반되는 지경에 이르고, 본인도 무엇이 원인인지 헷갈리는 심리 상황에 처하고 만다.
나이 들면서 현명해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집만 더 심해질 뿐이라던 故 채현국 선생의 일갈처럼 생물학적 나이가 현명함과 사려를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살 찌푸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만,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잊힌다는 불안은 사회적으로 대책을 수립하고 보듬어야 할 몫이다. 자꾸만 세대/성/지역/수저(?)까지 뭐든 갈라치기하고 구분하려는 세태에서 노인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중화할 것인가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유독 ‘밉상’ 취급을 받는 집단이 있다. 목소리 크고 억지 주장을 일삼는 데다, 툭하면 나이를 위계화하는 행태를 드러내는 ‘경상도 아재’로 통칭하는 부류다. 이전 세대의 차별과 혐오를 고스란히 온존함은 물론, 청년세대에게 ‘근성’, ‘노력’ 드립을 전가의 보도로 삼는 이들에게 젊은이들의 시선은 고울 리 없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기성세대가 움켜쥔 권력을 잃는 순간, 순식간에 비극적 존재로 추락하는 형국을 보고 있자면 일종의 연민도 생긴다. 그렇게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이들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작업은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
강철 같던 심신에 닥친 위기 앞에서 기로에 선 중년 가장
소규모 경호업체를 운영하는 ‘지환’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참이다. 들어온 일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일해온 그는 가족처럼 함께 일해온 ‘승철’과 어느새 장성한 아들 ‘호준’을 직원으로 두고 여전히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직무에 충실하다. 그런 지환에게도 요즘 걱정이 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방식에 번번이 토를 달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방식이 너무 낡았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들어온 일이라고 다 받냐는 것이다.
그렇게 골이 쌓여가는 부자 관계는, 건물주 퇴거에 불응하는 세입자를 배제하는 작전 실패로 또 한 차례 거세게 충돌하기에 이른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우리가 경호업체이지 용역 깡패가 아니라며 항의하지만, 지환은 그저 맡은 일에 성실해야 할 뿐이지 입맛대로 따지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이 멀어지니 아들의 행태가 사사건건 밉기만 하다. 세상을 모르면서 입바른 소리만 하는 아들이 괜히 밉기만 하다.
실은 그에겐 남들에게 밝히기 뭣한 근심이 또 있다.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지환의 몸은 예전과 다르다. 갱년기가 접어든 육신은 이제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꾸만 딴생각에 빠진다. 말 그대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경호전문가답게 중년이 된 후에도 단단함을 과시하던 그에게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치부다. 아들이 자신의 방침에 딴지를 거는 것도 전부 다 자신이 예전 같지 않아서 얕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심기 탓에 굳이 화를 낼 게 아닌데도 예민하게 자식의 말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쇠락하는 심신은 언제까지 숨길 수 없다. 아들은 물론 직원들도 자신의 역량에 염려 섞인 반응을 보이자 더 위악적으로 강한 척하고 역정도 부리지만, 결국 스스로 한계가 도래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의 어깨는 쪼그라들고 판단과 사고능력도 스스로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과연 지환은 일생일대의 위기 앞에서 어떤 결단을 감행해야 할까?
가정불화를 사회문제의 출발이자 거울로 활용하는 접근법
독립영화에서 세대 간 갈등은 다양한 층위로 표현되며 단골 소재로 활용되는 중이다. 가족을 배경으로 할 때는 세대 차이와 문화적 충돌로, 직장 등을 무대로 할 때는 좀 더 본격적으로 기성세대 vs 후속세대의 대립 및 기득권 집단의 행태와 결합하곤 한다. 가족 내 갈등이 주된 요소가 될 경우, 부모 중 상대적으로 어머니와 자식들은 우호적 혹은 애증 관계로 풍부하게 묘사되지만, 대개 아버지의 경우 단선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성세대의 가족 역할 모델 중 남성은 대외 경제활동, 여성은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상정하는 구도와 연결해 볼 지점이다.
중년 이상의 연령대인 아버지 역할은 그렇게 평면적 캐릭터, 좀 더 비중이 있다면 반동적 가부장으로 설정되는 게 흔하다. 돈을 벌어오는 기계 혹은 권위적 가부장이 주로 맡은 역할이다. 개성 없이 무색무취하거나 아니면 역할에 맞는 기능적 존재로만 배경에 머무는 식이다. 그런 근래 풍토를 보고 있자면, <누구나 겨울이 오면>에서 가족 이야기를 부자간의 갈등으로, 그리고 표면상의 주인공으로 아버지를 세우는 설정은 퍽 이례적인 경우에 속하는 셈이다.
영화 내에서 소규모 경비업체를 운영하는 가족, 회사 내에서 신구 세대 차이를 상징하는 지환 vs 호준 부자의 충돌은 가족 내 불화 아니면 사회 일반의 풍경으로 분립하는 게 통상적이던 구분법 대신에 가족 관계를 확장해 사회적 갈등으로 확장하는 방법론을 취한다. 두 부자가 긴박한 현장부터 밥상머리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충돌하는 사건들은 그런 상징성을 시종일관 극대화한다.
지환은 세상이 야속하고 가족들이 서운하다. 오직 식구를 부양하고 세상 시류에 따라가며 열심히 일한 게 죄일 리 없건만,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 버렸다. 자신이 겪은 온갖 풍파를 되새기면, 아들이 토를 다는 건 도무지 물정 모르고 책임을 져 본 적 없는 얼치기라 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 일을 어찌할꼬. 강건하던 그 역시 세월을 거스를 순 없다. 부쩍 쇠약해지고 삐걱대는 걸 느끼지만, 그럴수록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아직 할 일이 많고 무너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부친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아들에게 공격적으로 군다.
호준은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하다. 대개 부모와 불화가 발생하면 그저 외면하고 거리를 두면 될텐데, 아들은 자꾸만 아버지에게 나름대로 ‘충언’을 아끼지 않는다. 사업 방향 변화를 제안하고, 무조건 강경 진압이 아니라 대화와 설득을 시도하기도 한다. 혼자 힘으론 역부족인 것 같아 삼촌 승철과 숙덕숙덕 밀담도 나누며 편을 만들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라 여기는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행동이 그저 자신에 대한 적대 행위로만 보인다. 내가 어떻게 쌓아 올린 성과인데 하며 말이다. ‘너희가 00를 알아!’ 상투적인 문구가 환청처럼 들릴 지경이다.
결국 지환의 아집은 둘 중 하나로 결착이 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다음 세대의 기회와 가능성을 탐욕스럽게 착취하며 진정한 권위가 아니라 폭력적으로 움켜쥔 채 놓지 않는 오늘날 한국 사회 기득권 행태를 답습할 것인가 vs 파국적인 대결 끝에 차세대에 떠밀려 쫓겨나거나 초라하게 몰락할 것인가 선택지만 남는다. 둘 다 사회적 비극에 가깝다. 물론 지환이 가진 몫은 그리 큰 사회적 지분은 아니지만, 그러하기에 이 ‘경상도 아재’의 고독한 분투는 가족물의 배경으로 더 부합될 수 있었다.
한계를 깨닫는 순간, ‘내려놓기’의 미덕을 희구하는 작업
지환과 호준의 항쟁은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려는 아들의 마음 씀씀이에도 갈수록 격화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니 부자간 힘의 균형은 서서히 기울 수밖에 없다. 마침내 더는 감출 수 없게 된 아버지의 육체적 한계는 아들에게 굴욕적인 패배로 귀결될 참이다. 하지만 대개 새로운 가부장의 권력 승계, 마치 고대 국가에서 왕위계승만 이뤄지는 결과로 상정되는 흔한 전개와 다른 변주를 택하는 게 본 작품의 차별점이다. 표면적 주인공은 아버지이지만 카메라 너머의 시선은 명확히 아들의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아버지를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환의 변화는 자신의 육체적 몰락에서 비롯된다. 만약 그가 외형적 강건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아마 변화는 더디거나 심지어 극단적 반동 인물로 퇴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가정을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고려장’ 전래동화처럼 누구나 나이를 먹게 마련이고, 자신이 전성기라 생각할 때 내려오는 건 세대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결단이다. 우리는 주변 곳곳에서 그런 아집의 폐단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곤 한다. 반드시 생물학적 나이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사정을 다 고려할 순 없다. 청년세대는 자신들이 처한 현재 상황의 책임을 기성세대의 전횡으로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별반 틀리지 않은 분석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갈등은 인류 역사 내내 벌어진 유구한 사례라는 통찰이 세대를 통틀어 필요한 시점이다. 갈등 해소는 상호 이해에서 출발하는 법이고, 지환이 속한 세대는 <국제시장> 영화에서 구현되듯 국가폭력과 빈곤을 헤쳐나온 생존자에 가까운 이들이다. 그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외면하고 단절해서는 그저 은폐만 될 뿐, 문제 해결의 길은 더 요원하다. 호준의 집요한 도전이 그래서 눈여겨봐야 할 구석으로 작용한다.
물론 후반부의 태도 변화는 지환이 자신의 무력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의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가족 분쟁은 더 심각해졌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적 계기가 없이 본인의 권력을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문제를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 대결로만 본다면, 그저 더는 청년세대와 겨룰 수 없기에 마지못해 택한 후퇴나 양보로 여길 수 있지만, 권력 관계라는 게 그 정도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경우가 적지 않다. 조금 더 거시적으로 자연스러운 세상 흐름으로 봐도 무방할 테다.
가족 공동체의 복잡한 셈법 가운데 애정어린 연민을 택하다
영화는 (잠옷이나 형광등, 위생용품 같은) 몇몇 소품의 활용과 의도적으로 배치한 장치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심리 변화를 은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격렬하게 대립해야 극적 긴장감이 올라가는 지환과 호준, 아버지와 아들이자 신구세대를 상징하는 둘의 항쟁은 치열하게 격화해야 한다. 하지만 가족물의 얼개 속에서 극한 대립이 과열되면 가족 유대는 붕괴할 위기에 처한다. 제작진은 아마 그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 고심했을 법하다.
그런 고민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영화는 부자 항쟁이 극심해지다 일방의 무너짐으로 급반전하는 형세를 선보인다. 그로 인해 위악적이던 지환이 갑자기 늙고 초라한 노인으로 폭삭 가라앉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결국엔 아들과 계속 싸우려 해도 이기지 못할 상황이라 항복한 것 아니냐고 볼 여지가 생긴다. 그렇게 쇠락한 아버지를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카메라가 너무 온정적이지 않냐는 의심도 등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캐릭터화된 ‘악’이 아니라면 독립영화 창작집단인 청년세대의 부모들은 대개 그런 존재다. 도무지 무너질 틈 없는 빙하 같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무너지곤 한다. 자식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힘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그 에너지가 맹목적으로 남을 해치는 데 분출하기도 한다. 정부나 사회가 내 가족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경험적 판단은 그런 편향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자녀세대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겨울이 오면>은 자식 세대를 억압하는 미시적 기득권인 동시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살아온 부모세대를 향한 양가적인 시선에서 ‘연민’을 좀 더 초점으로 설정한 작업이다. 물론 상호대립적 존재, 혹은 폭력의 화신으로 구현하는 (요즘 한국 독립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작업의 방향성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삶의 단면, 칼로 물 베기라는 가족 공동체의 복합적 면모에 대한 좀 더 다채로운 표현이 반가울 따름이다. 중반 이후 반전이 다소 급발진하는 느낌은 있지만,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경상도 아재’의 내면 구현은 제법 깊게 인상이 남는다.
<작품정보>
누구나 겨울이 오면
Winter is coming
2023|한국|드라마|33분13초
감독/각본/편집 이주원
출연 이달형, 최지헌, 김민선, 최인환
촬영/조명/색보정 전상진(컬러플러스)|프로듀서 장일경
미술 윤소희|동시녹음 이명형|조감독 류승원|스크립터 김주리2024 11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단편경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