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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해고자 소현숙·박정혜 씨의 고공농성 1년.
공장 옥상에 고립된 채 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노동자·시민이 경북 구미에 있는 고공농성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으로 모여든 이유를 각기 다르게 설명하면서도, ‘소현숙·박정혜’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윤석열 탄핵 이후의 세계는 소현숙, 박정혜가 고용승계 되고 노동자가 고립된 고공농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라며, ‘우리가 빛이 되겠다’고 힘을 전했다.
10일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고공농성 1년 맞이 1박 2일 집회 ‘희망텐트’가 열렸다. 오후 5시께부터 전국에서 시민 500여 명이 모였다. 특별한 소속 단체 없이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남태령 시위’를 비롯한 여러 투쟁 현장에 발 벗고 나서는 시민들도 자체적으로 버스를 빌려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응원봉을 들거나, 은박담요를 걸치고 저녁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진행된 문화제에 참여하고 자유발언도 이어갔다. 이들은 행사가 끝난 다음에도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르며 영하 10도의 날씨를 데웠다.
불탄 공장 아래, 참가자들은 100여 개의 개인 텐트와 몽골 텐트를 설치했다. 다양한 집회 참가자 구성을 고려해 성 중립 화장실, 비건식 등이 준비됐고, 의료지원 부스나 난방텐트도 준비됐다. 문화제가 열린 터에는 삿갓 난로가 곳곳에 설치돼, 시민들은 번갈아 가며 몸을 녹였다.
<뉴스민>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 3명으로부터 참석 계기와 탄핵 이후 세계에 대한 바람을 들었다. 연금술사(가명, 24), 최다한(23), 야맘량(가명, 25) 씨는 각각의 이유로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와 연대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사회와 현실에 대한 냉소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옥상에서 느낀 고립감 알고 있다”
비정규직 공장 노동자로서 공감도
‘타인의 삶’ 이해를 위한 발걸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구미 공장으로 향하는 건 손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광장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연금술사 씨는 ‘옥상에서 느끼는 고립감’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고, 그래서 내란 사태 이전에도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소식을 관심 갖고 확인해 왔다. 연금술사 씨는 일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내란 사태 이후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올출(최대한 참석)’ 중이다.
“과거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학교 옥상이 열려있어서 자유롭게 드나들었는데, 주 1회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에는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었어요. 거기서 바라본 옥상 풍경이 선명해요. 그랬다 보니, 건방진 말이지만 고공농성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고, 그때 제 마음이 떠올라 여기까지 왔어요.” (연금술사)
최다한 씨는 트위터에서 고공농성 소식을 접했고, 또한 일상에서 겪은 다양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쌓아온 입장에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한국옵티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싸우는 노동자에 대한 소식을 알았어요. 비상계엄 선포 후 포고령을 보니 집회와 시위를 금한다고 나왔던데, 곧바로 예전에 함께했던 세종호텔 농성과 해고 조합원분들이 떠올라 많이 걱정됐어요. 한국옵티칼도 마찬가지라, 이번 행사 소식을 듣고 오게 됐어요. 저는 스무 살 되자마자 식품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거든요. 여성 노동자가 많은데 월경 문제라든지, 여성 노동자 처우는 고려하지 않아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또 비정규직 노동을 전전하던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바꾸는 것에 동참해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최다한)
야맘량 씨는 연대의 방법을 몰라 약간 장벽을 느끼다가, 남태령 시위가 장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꿀벌을 지키기 위해 말벌을 퇴치하는 ‘말벌 아저씨’처럼,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민도 응원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도 전했다.
“이곳까지 오기 전에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접했어요. 그런데 보도에 나온 모습과 실제 현장이 달랐고,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를 꿈꾸고 있는데 배우란 현실을 보고 또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민도 응원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여러 어려운 곳에 내가 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남태령에서 환대를 받고 새롭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연대하는지 몰랐던 거예요. 한국옵티칼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불탄 공장에서 사람이 1년 넘게 못 내려온다는 말은 정말 이상한 말이잖아요. 그래서 오게 됐어요.” (야맘량)
“탄핵은 시작, 세상이 바뀌어야”
이들은 탄핵은 시작일 뿐, 중요한 것은 사람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세상이 곳곳에서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냉소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해요. 윤석열 정권 이후부터 사회적 우울감이 심했는데, 그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권태감, 절망감에서 왔던 거 같아요. 지금에는 연대를 통하면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거 같아요. 탄핵 이후의 세상이 중요해요. 전태일 열사 유서에 ‘너는 나의 나다’라는 말이 나와요. 이번에 그 말을 이해했어요. 남이 아니고 나의 일부예요. 연대는 사랑과 같은 거고, 이 사랑을 계속 지니고 간다면 느리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요즘에 가졌어요.” (야맘량)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가야 해요. 너의 일, 나의 일이 있지만 너와 나는 같이 차별받는 존재라는 걸 알아요. 설령 본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같이 싸우는 것이 민주시민의 사회라 생각해요. 윤석열 탄핵이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인권 감수성과 연대 의식을 키워나갔으면 해요.” (최다한)
“저는 예전에 거통고하청지회 시위에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외마디를 듣고 인식했어요. 그 말을 알고, 그 뜻을 내면화하고 있던 사람들이 여기에 나와있는 거 같아요. 비정규직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자영업자, 그리고 성소수자, 학교 밖 청소년,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분노를 쌓아오고 있었어요. 이처럼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도 당신과 함께 싸울 거다. 그걸 알려주고 싶어요.” (연금술사)
희망텐트 문화제,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
이들의 이야기처럼, 희망텐트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 또한 각자의 삶에서 비롯된 연대로 소현숙, 박정혜 씨와 함께했다. 문화제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국회의장을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잠시 후 비상계엄이 터졌다. 약속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고공농성 1년을 맞았다.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다. 지금 어렵고 지난한 시간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은 “엄동설한에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여기 옵티칼 희망텐트까지 함께해 준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죄라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다. 그런데 벼랑 끝에 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금속노조는 한 명의 조합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승계하는 날까지 19만 금속노조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현숙 씨는 “속으로 차오르는 울분을 참다가 포기할 수 없는 심정이다. 거리와 고공에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 건 이름 모를 시민과 연대자들이다. 그 힘으로 공권력과 자본의 강제 철거를 막을 수 있었다. 니토 자본은 우릴 시간당 생산량을 따지는 기계로 본다. 우리의 투쟁으로 노동자를 대하는 사회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혜 씨는 “공장 화재 후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짊어졌다. 열심히 일한 회사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컸다. 평택공장(한국니토옵티칼)에서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고공에 올랐다. 솔직히 이렇게 오래 있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친 순간도 많았지만, 우리를 위해 연대한 수많은 이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늘 말 그대로 빛이 돼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민이 왔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 현장으로 돌아가도록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설명했다.
집회와 시민 자유발언이 끝나고도 참가자 30여 명은 고공농성장 아래에 둘러 앉아 자정 무렵까지 멜로디언과 노래 소리를 공장에 채웠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