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노동자, 고향을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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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직은 195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를 다니는 것으로 정규 교육을 마쳤다. 이후 5년간 중장비 기술자로 생활하다가 1986년 4월부터 삼척 탄좌에서 광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지하 수백미터 검은 벽의 감옥 /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 누구나 / 한번 들어오면 쉽게 나갈 수 없는 곳”(‘막장인생’) 그는 광부 생활을 하는 중에 노동자 시인 박노해·김해화의 시집 등을 읽고 광부들의 삶을 알리고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권혁소·이원규 등의 시인이 탄광을 무대로 시를 쓴 바 있지만 직업 광부가 시집을 출간한 것은 성희직의 <광부의 하늘>(도서출판 황토, 1991)이 최초다.

영천에서 태어나 삼척에 광부로 안착한 시인의 이주 경로는 1955년 영천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조선업 노동자가 된 백무산의 이주 경로와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를 게 없다. “여기 아니면 밥 못 먹을까 / 이 짓 아니면 못 살아갈까 / 친구 소개로 공장 바꿔 보고 / 소개소 찾아가 직업 바꿔보고 / 삼천리 강산이 마르고 닳도록 / 십수년 세월을 돌고 돌아봐도 / 노동자의 굴레를 벗을 수가 없어”(‘광부 이력서’) 이 시에 나온 것처럼 노동자는 공장을 바꾸고 직업을 바꾸어도 여전히 노동자다. 그런데 산업 사회의 임금 노동자가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고향이다. 농본 사회가 사라지면서, 노동자와 고향은 더 이상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철학적·존재론적 관점의 고향은 장소(場所=땅) 귀속적인 동시에 초(超)장소적이다. 먼저 하이데거의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 이상을 뜻하지 않는다. 대구에서 태어난 사람의 고향은 대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하이데거에게 고향이란 당신의 존재를 중명해 줄 초장소를 가리킨다. 고향이 장소이면서 초장소라는 정의는 모순처럼 들리지만, 자신의 고향(장소)을 더욱 고향답게(이상적인 장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 한 모순적이지 않다. 대구 사람이 이상적인 장소를 네바다 사막이나 남극에 건설할 수도 있겠지만, 대구 사람이라면 그 어느 곳도 아닌 대구를 더 이상적인 장소로 만들려고 애쓸 것이다. 이때 고향을 장소 이상의 장소로 가꾸려는 노력은 그 장소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이나 전통 등의 초장소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것에 기댄다. 애향심은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다.

고향이 장소이면서 초장소(관습·전통 등의 가치)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고향을 잃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신은 대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당신 마음속에 대구가 장소만은 아닌 초장소로 기입되어 있다면, 당신은 어디에가서도 대구 사람일 것이다. 그럴 때 고향은 잃어도 잃는 게 아니다. 이와 같은 하이데거의 고향론은 그의 철학과 깊이 연루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향이 유지될 수 없는 산업 기술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보수주의적인 처방과 연관되어 있다.

하이데거에게 고향은 당사자가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바꿀 수도 없는 운명이다. 반면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적 관점에 따르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곧 고향이다. 전광식이 <고향>(문학과지성사, 1999)에 썼듯이 마르크스에게 “고향은 생태적이고 본유적인 것이라기보다 소유와 관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고향은 부르주아의 특권이며, 성희직이나 백무산처럼 가진 몫이 없는 이들은 밥(직장)을 찿아서 “삼천리 강산이 마르고 닳도록”로 유동해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더라도, 산업 기술과 자본주의는 고향으로부터 노동자 또는 노동 예비군을 떼어낸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고향 상실자라고 부르지만, 고향 상실을 인간의 존재 상실이라고 호들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향을 상실한 노동자들은 타향을 고향으로 만든다. 전국에서 흘러든 광부들이 1980년 사북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내 피와 땀이 배인 이 일터가 / 좀더 사람 사는 재미가 있고 / 좀더 일하는 재미가 있는 직장”(‘광부 8’)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이것이 지리적 운명에서 풀려난 노동자들에게 맡겨진 새로운 운명이다.

장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