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응원봉이 열어젖힌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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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건을 기록하는 일을 오래 해오면서 구축한 세계관은 이렇다. 세상의 폭력 앞에 사람들은 한없이 유약하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에 대해 타인은 관심 두기 어려우며, 그리하여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파도 같은 세상의 파멸에 휩쓸려 흩어지기 마련이라고. 그렇기에 세상의 폭력에 저항하는 순간을 더 귀하게 여기기로 했다. 그 순간에 사람들의 얼굴과 말들을 기록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청도 삼평리와 밀양에 들어선 송전탑을 보면서 국가와 도시의 필요로 지역을 착취하는 권력에 비해 이에 맞서는 주민의 몸은 한없이 유약하다고 느꼈다. 거대한 국가권력과 그것이 파괴한 주민들의 고유한 인격과 공동체에 대해 기록했다. 일상의 평화를 추구하려는, 농촌을 희생시키는 제도에 저항한 그들의 말은 쉽게 조롱당했다. 주민을 향한 연대가 이뤄졌음에도 그 조롱이 더 컸던 탓인지, 결국 송전탑은 세워졌다.

성주 사드 배치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2016년의 성주에 광장이 열렸고,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그 광장에서 고을 원님처럼 추대받던 권력자 군수는 웃음거리가 됐다. 광장에 모인 주민을 두고 ‘술집, 다방 하는 것들’이라고 비난하며 군수가 나름의 반격을 가하자 광장의 주민들은 술집, 다방에 분노하는 대신 술집, 다방 하는 사람이 뭐가 문제냐며 응수했다. 배척이 아닌 연대를 보여준 빛나는 순간이 켜켜이 쌓였다. 사드 반대 투쟁에 나선 사람들을 깊게 만나면서, 짧은 말로 요약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서사를 확인했고 기록했다. 그 기록이 고작 선거 결과를 근거로 조롱하는 말들에 대한 정성들인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조롱과 함께 ‘외부세력’이 있다는 배척도 더해졌다. 결국 주민의 탄식과 눈물을 짓밟으며 사드가 끝내 배치됐다.

그 이후로도 노동 현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그 현장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기록했다. 이윤을 위해 사람을 해고하고, 노조를 탄압하고,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집단해고 해버리는, ‘인격’이나 ‘인권’이 넘지 못하는 세련되게 야만스러운 기업의 벽을. 국가와 대도시에 착취당하는 소도시와 시민을. 색깔만 뒤바뀌는 정치권력들로부터 언제나 ‘나중에’라는 답변만 듣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 비정규직, 이주민을 기록했다. 그들은 일상에서 괴롭게 버텼고, 때로는 외롭게 저항하기도 했다. 그런 외로운 저항은 유약한 매듭으로 남아버린 줄로만 알았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대구의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시작은 무도한 권력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하지만 광장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말들을 들으면서, 모여드는 이의 얼굴을 보면서. 그리고 대구와 또 다른 지역 남태령에서, 서울 지하철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러 광장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저항과 그들의 말을 속속들이 전해 들으면서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이 가져와 쏟아내는 빛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며 유랑하던 사람이 저마다 간직하고 있던 크고 작은 불꽃이다. 그것은 분명 분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다양한 모양의 요구를 품고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은 윤석열에 대한 분노를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겪었던 차별들, 온갖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하고 싶은 이는 자유발언으로, 또는 깃발이나 몸자보로도 표현했다.

어떤 이들은 소리 내 호소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광장에 의미를 채워 넣었다.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는 그날, 일군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대구에서 열린 집회에 함께 했다. 형식적으로 이 집회는 망가진 공화국을 재건하자는 집회다. 계엄 세력이 멈춰버린 헌법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지만, 그 헌법은 ‘국민’의 권리만을 선언할 뿐이기에 이 집회에 국민으로서 아무런 권리가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참여하는 건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대구 집회에 참석한 한 인도네시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말이 이들의 집회 참여 ‘권리’를 수긍하게 했다. 그는 계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더욱 큰 공포였으며,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유독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이 극심해 분노하고 있던 차였다고 했다.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이들은 그저 그 광장에 존재하는 것으로 권리를 가질 권리를 주장했다. 이제 그들은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와 존재함으로써 몸으로 연대하는 사람들이 됐다.

정치권력과 언론은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일상으로 되돌아가자고 했다. 집권당은 계엄의 위법 위헌성을 인정하기는커녕 대통령 탄핵을 막아서며 내란을 이어오고 있다. 어떤 일간지는 탄핵안 가결 다음 날 ‘판단은 사법부로, 시민은 일상으로’라는 머리기사를 써냈다. 시민이 돌아갈 일상은 어디인가. 길바닥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에게, 일터로 삶터로 불시에 들어온 단속반이나 극우 유튜버로부터 강제 추방 당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또 차별받고 배제되는 다양한 이들에게 일상은 이미 크고 작은 권리가 정지된 비상계엄 상황 아래의 것이 아닌가. 그들 하나하나가 광장에 쏟아져나와 자리 잡기까지 겪은 유구한 서사를, 그 신문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해서 각자의 권리가 정지된 일상의 비상계엄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알고 있다. 이들은 대구에서, 또 경북 곳곳에서, 남태령에서, 권리 없는 사람들은 함께 광장을 열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오는 10일, 불탄 옥상 고공농성 1년을 넘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소현숙 박정혜와 함께할 것이다. 그 이후로도 광장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은 일상을 잃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치권력 교체를 말하고, 누군가는 개헌을 통한 새로운 세상을 말하지만, 계엄 이후 새로운 세상은 일상이 계엄인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곳에서, 이미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 대구에서 열린 시국대회에도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기록했다. 집회 말미에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전하려는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나는 제단 옆에 서서 국화꽃을 들고 영정 앞에 다가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촬영해 중계하면서, 그 표정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정한 애도는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이들이 아닌, 참사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표정에 있었다.

방금 전 자유발언을 마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얼굴. 장애인의 얼굴, 성소수자의 얼굴, 해고 노동자의 얼굴, 이주노동자의 얼굴, 여성, 청년과 노인, 착취당하는 지역민들의 얼굴은, 오래전부터 외롭게 저항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닮았다. 그들이 짓는 애도의 표정과, 냉소하지 않고 끝내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겠다는 새로운 표정을 보면서 그 얼굴을 더 잘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해사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난 4일 윤석열 퇴진 대구시국대회 참가자들이 국화꽃을 들고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 추모에 나섰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