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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조용한 새해 첫날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2일, 대구 중구 옛 대구백화점 앞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바삐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의 마음을 나눴다.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 대구4.16연대가 마련한 추모분향소는 4일 오후 3시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추모분향소 운영 주체 중 한 명인 한유미 대구416연대 집행위원장은 무거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한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아리셀 참사에 이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분향소를 계속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속상하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 환경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사회적 재난 참사가 예상 불가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일상을 지켜야 하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참사가 반복된다고 이태원 참사 당시 수차례 말했는데, 다시 또 참사가 발생했다는 게 좌절스럽다”면서도 “슬픔을 적극적으로 나눠야 국민적 트라우마가 치료될 수 있다.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여력이 안 났지만 민주노총 대구본부를 비롯한 단체들이 분업을 통해 나서줘서 분향소를 세울 수 있었다. 대규모 인명 참사가 자꾸 벌어지니 시민사회도 분업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다 같이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분향소가 설치된 2일 오후 3시부터 40분 동안 50여 명의 시민이 조문을 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줄을 서서 헌화한 뒤 방명록에 이름을 남겼다.
홀로 분향소를 찾은 30대 여성 A 씨(달서구)는 “연말에 너무나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누구나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서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며 과거의 참사와 미래에 만날 수 있는 참사를 생각했다”며 “대구시가 두류공원에 분향소를 마련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멀어서 가지 못했다. 시내를 지나가다가 분향소가 설치된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들어갔다. 사람들이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대 남성 B 씨(북구)도 “대다수 국민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경험을 갖고 있다. 관련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지만 콘크리트벽이 그 위치에 꼭 있어야 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기장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비행기를 멈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도 먹먹했다”며 “뉴스에서 볼 땐 실감이 안 났는데 분향소에 들르니 ‘실제로 있는 일이구나’ 느껴져서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분향소 천막 옆에 새겨진 글귀 ‘다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이유로 어떠한 이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도록,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사회를 요구하고 바꿔나가는 일에 함께 하겠습니다’를 한참 동안 읽은 40대 여성 C 씨(남산동)는 10살 딸과 서점에서 책을 사고 나오던 참이었다. C 씨는 “전주 사람이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라 뉴스가 더 와닿았다. 계속 마음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추모분향소에 들르니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들에게 닿을까 싶어 딸과 헌화 후 메모를 남겼다”고 말했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학생 4명도 추모분향소를 찾았다. 경일대 항공서비스학과 재학생인 박지원(24, 남) 씨는 “학교 수업에서 배운 항공기 안전 문제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참사 희생자 중에 승무원도 있어서 마음이 안 좋았다.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사고”라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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