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낯설고 위험한 세상에서, 수연과 선율의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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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남은 아이가 세운 계획의 전말

13살 ‘수연’은 영화 시작과 함께 고아가 되었다. 부모의 부재 속에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지만, 의지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니 이제 세상에 오직 혼자다. 물론 그는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게 짠 궁리는 하나둘 어그러진다. 손만 내밀면 잡아줄 것 같던 친구도 피를 나눈 가족처럼 살갑게 대하던 이웃도 동네 대소사에 앞장서던 교회도 막상 닥치니 믿을 구석 하나 없다.

나름대로 절친했다고 믿던 친구는 집에서 하루를 같이 자는 것도 거북하다며 돌아서고, 옆집 ‘이모’는 수연이 보기엔 가족이 아니라 객식구로 보이지 않는 벽을 둘러치는 게 명확해 보인다. 교회 ‘오빠’는 친하게 지내자며 접근하지만, 어째 추근거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담당 공무원은 속 시원한 대책이라곤 도무지 내놓지 않으면서 현실을 인정하라고만 한다. 이대로 가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보호시설에 수용될 판이다. 수연은 필사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그에게 번쩍이는 계시가 내린다. 7살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어느 가족의 유튜브 채널이다. 영상 속에서 화목하고 단란한 풍경은 지금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비교되는 장면의 연속이다. 나도 저렇게 행복한 가정에 입양될 수 있다면 밝은 미래가 기다릴 텐데, 수연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Plan-B’를 발동한다. 어떻게 하면 이 가족의 삶에 자신이 슬그머니 편입될 수 있을까?

동생이 될 아이의 이름은 ‘선율’이다. 일단 그의 마음부터 얻어야 할 것 같다. 수연은 선율을 따라다니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치원 하원에 부모가 따라오지 않는 걸 기회 삼아 선율과 접촉한다. 그렇게 접근한 수연은 용의주도하게 선율의 양부모와 관계를 만들고, 선율의 언니 몫으로 입양될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진실은 기대와는 퍽 달랐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보호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취약한 아이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결정적 차이는 구성원 중 늙거나 병든, 혹은 아직 어려 보호 없이 자립하기 힘든 개체를 가족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책임으로 해결하는지 여부다. 고래나 원숭이, 여타 비인간 동물 중 고등 지능을 지닌 것으로 간주하는 몇몇 종이 해당 행태를 일부 보이는 것 외엔 오직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원시인류의 화석 가운데 자력으로는 도저히 생존하기 힘든 심각한 부상을 겪고도 상당한 기간 생존했던 흔적에 주목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도 어쩔 수 없다!’ 오래된 편견과는 달리 고대 문명 형성기부터 국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조를 존립 근거로 삼고 수행해 왔다. 의탁할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는 정책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 시절부터 뚜렷하게 확인되는 부분이고, 한반도 역사에서도 고려 시대 국교의 위상을 갖던 불교 사원에서 해당 역할을 담당하는 관행이 수립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지역을 막론하고 동서양 통틀어 보편적 현상이다. 그만큼 특정 사회가 구성원 중 약자를 보호하는 실행력은 해당 체제 평가에서 가장 우선되는 요소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속설처럼 늘 100% 만족할 수준의 대책은 이뤄지지 않는다. 전근대 사회에선 절대적인 자원 부족이 문제였다면 현대 사회는 복잡한 관료제, 전통적 공동체 쇠퇴가 문제 핵심이 된다. 늘 국가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너무나 당연한 국가 책무라 오히려 덜 드러나는 해당 항목은 그저 적당히 취급되기 일쑤다. 복지논쟁에서 눈에 확 드러나는 업적 쌓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소모성 비용 취급받거나, 대책 없이 지역사회나 종교기관 몫으로 떠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21세기 한국은 현대 복지국가 시스템에 진입한 상태이지만, 급속한 변화 가운데 이웃과 지역사회 상호부조 기능이 희미해진 빈자리를 메울 공공서비스는 형식은 갖췄어도 여전히 빈틈이 적지 않다. 예전엔 ‘고아원’이라 불리던 보육원 체제의 한계, 해외 입양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노출된 입양제도 정비, 경제적 제약으로 함께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기존 가족과 연결을 유지할 여지를 남기는 그룹-홈 운영 등 여러 대안이 모색되지만, 시대 변화와 함께 새롭게 대두하는 쟁점들, 책임 소재를 놓고 갑론을박이 거듭되는 가운데 사각지대는 좀처럼 해소되지 못한다. 영화 속 아이들의 시련은 바로 그런 틈새에서 비롯된다.

기대와는 달랐던 유튜브 속 유토피아, 그리고 뜻밖의 발견

영화는 작품 제목과 인물의 이름 속에 많은 단서를 숨겨둔다. 수연은 13살 아이, 선율은 7살. 제목부터 이 작품이 둘의 이야기라는 걸 각인한다. 그와 동시에 영화의 제목은 험한 세상에 서로 의지해야만 하는 둘의 관계 교차를 통해 여러 경우의 수를 상상하게 만든다. 수연에게 선율은? 선율에게 수연은? 관객은 화면 속 그들의 관계를 관찰하고 판단하지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설정에서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다만 몇 가지 암시를 통해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수연은 처음엔 선율을 이용대상으로 접근한다. 보호자 없이는 보육원으로 수용될 처지이지만 정작 자신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에, 적당히 외부적 보호 역할을 해줄 가족 울타리가 절실한 그다. 오히려 동생을 새로 만들 필요는 별달리 없지만, 양부모를 얻기 위해서는 선율이 자신을 언니로 삼아야 진입 가능한 경로다. 선율은 그저 중간 경로에 불과한 존재다.

하지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새로운 동생은 정작 자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라는 걸 수연이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어떻게 보던, 자신은 혼자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신과 달리 정말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존재였다. 원래 계산과 확연히 다른 상황에 당혹해 하면서도 수연은 이제 어른들은 다가갈 수 없는 선율의 진심에 교감하며 보호하고자 애쓴다.

수연이 기대하던 양부모의 정체는 모래로 지은 집처럼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호막이 필요한 수연이 역설적으로 타인을 보호할 의무를 어깨 무겁게 물려받는 과정이 예정된 계획처럼 화면에서 차례로 진행된다. 선율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아이지만 수연은 동생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면모를 연달아 확인한다. 선율은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방어막을 두른 상태다. 이해와 단절을 거듭하는 가운데 둘의 밀고 당기기는 자석이 붙었다가 떨어지듯 둘만의 중력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이룬다.

두 아이만이 진입 가능한 물방울 속 작은 세계

선율은 다른 수단이 없으니 수동적으로나마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수연은 자신이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적 제도는 13살 미성년자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가깝다고 믿었던 이들의 표리부동을 겪으며 방어적으로 가장 나은 조건을 택하게 된 수연은 노력 끝에 성공했다고 믿지만,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된 것임을 이해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여기에서 영화의 영문 제목을 들여다볼 단계가 도래한다. ‘Waterdrop’, 즉 ‘물방울’이다. 세계 사진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찰나’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렌즈처럼 볼록 응결된 물방울은 마치 거울처럼 그에 비친 세계를 담는다. 수연이 바라본 세상, 선율이 바라본 세상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은 고스란히 화면 속 물방울에 투영한다. 그들이 바라본 세계의 풍경은 이윽고 관객에게 고스란히 반사된다.

조금 더 확장을 거듭하면, 그들을 둘러싼 ‘집’, 거주공간 역시 물방울과 겹치고 연결된다. 수연의 집, 양부모의 집, 수연과 선율의 집, 선율이 곤충을 ‘보호’하던 집···. 물리적 외형을 넘어 아이들이 개별 공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각을 유추하는 건 작품을 독해하는 또 다른 실마리다.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흔히 광고에서 경탄하듯 물리적인 환경에 그치지 않는다. 흔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금방 허물어진다고 이야기하듯, 아무리 외형이 번듯해도 그 안에 사람 냄새 온기가 머물지 않으면 감옥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속설과 이 영화 속 공간의 변별을 함께 연결해 보면 흥미로운 구석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두 아이의 처지는 마치 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반려동물과 마찬가지 신세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외톨이 동물들은 어떻게든 구원자를 기대한다. 생존을 위한 의식주 해결은 물론 결핍된 정서적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대를 그들의 시선으로 관찰한다. 버림을 받은 개나 고양이가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면 선택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양을 부리며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아이들 역시 위장술을 행한다. 물론 악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천사 같은 외모의 7살 아이도, 타인을 믿을 수 없는 13살 아이도 각자의 맞춤형 가면으로 위장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때로는 처연함을, 혹은 섬뜩함을 발견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영화 속 주인공들을 그렇게 ‘괴물’처럼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출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듯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또래 아이들만의 정서와 사고 체계를 일깨우는 데에서 멈추는 대신, 이야기는 그렇게 인공적인 유토피아의 실체 앞에 직면하고 그 백일몽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한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둘만의 공감을 형성하는 애틋한 교감을 풀어낸다. 물론 어렵게 응결된 물방울은 무한정 지속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작은 세계 역시 오래 버틸 수 없지만, 각자도생이 원래 목적이던 수연과 선율은 어른이 도달할 수 없는 순수한 연민과 자매애 끝자락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중견 창작자의 귀환을 주목하게 해주는 묵직한 작업

근래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해외 영화 가운데 특정한 어떤 결을 포착하게 된다. 사회 시스템에서 자의/타의로 이탈한 청소년의 제도권 바깥 삶이 종종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만의 작은 사회를 형성하는 설정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만 하는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 판단과 실행 가능한 주체라는 발견의 기회다. 비록 일시적인 찰나에 머물더라도 그들이 화면 속에서 뿜어내는 불가사의한 기운에 당황하면서도 놀라움을 느끼곤 한다.

그런 작품에 경탄하다 보니 왜 한국 독립영화에선 항상 수동적 피해자, 혹은 극단적 폭력에 노출된 희생자로만 그려질 뿐 저렇게 새로운 가능성을 표현하지 못하냐는 푸념도 나올 법하다. 공권력이 압도적 행정력을 발휘하고 청소년을 그저 보호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일탈’의 ‘해방구’는 영화로나 실제에서나 용인되지 않는다. 왜 한국 독립영화에선 찰나일지언정 그런 소수자들의 무정부 공동체를 볼 수 없냐는 요구는 현실 제약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가출 팸’ 묘사를 그렇게 포장할 순 없지 않은가.

그에 관한 아쉬움은 수연과 선율을 맡은 김보민, 최이랑 두 청소년 배우의 다층적인 면모로 일정하게 보완 가능하다. 특히 근래 한국 독립영화에서 유독 돋보이는 김보민 배우의 광대역 연기는 천하제일 가련 캐릭터와 함께 묘한 성적 기운과 속을 알 수 없는 의뭉함을 동시에 뿜어낸다. ‘아역 배우’라는 상투적인 위치 부여와는 걸맞지 않은, 실로 잊기 힘든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 2010년생 연기자는 초6에서 중1로 넘어가는 시기의 ‘소 악마’적 또래를 온전하게 재현해 낸다. ‘발견’과 ‘각인’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주변 어른들은 그들의 캐릭터를 통해 각각의 사회적 군상을 담당한다. 복지담당 공무원은 국가의 공적 책임성과 사회복지제도 현주소를 드러내며 내내 곁에 머문다. 비록 한계는 명확하지만 부족하나마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공권력의 양심 같은 존재다. 흥미롭게 구축된 또 다른 존재는 정부의 사회복지 역할을 위탁 대행하며 지역에서 뿌리내린 종교단체의 한계를 표상하는 목사 가족이다. 특히 ‘사모님’의 다면성을 눈여겨볼 만하다. 인간은 누구나 다면성을 지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존재다.

근래 활약하는 신진 창작자들이 지역 독립영화를 떠올리는 이미지이지만, <수연의 선율>을 연출한 최종룡 감독처럼 중견 영화인 중에도 ‘로컬’에 대한 관심과 방점을 놓지 않는 이들이 제법 존재한다. 오히려 ‘대구 독립영화’라는 이미지가 대중화되면서 개별화되어 있던 창작자의 고민도 새롭게 바뀌고 한데 모이는 지점을 포착하는 게 흥미로운 요즘이다. 그런 고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선으로 구현된 영화다. 친절한 해설 대신에 뚝뚝 끊어지고 생략되는 단절과 도약이 다소 모호하게 보일 수 있지만, 불행을 극단화해 전시하는 상투적 방법론을 과감히 벗어난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수연과 선율의 미래를 염려하고 행운을 기원하는 마음을 관객 각자 가슴 한구석에 물방울처럼 간직하게 될 테다.

<작품정보>

수연의 선율
Waterdrop
2024|한국|드라마|108분
감독 최종룡
출연 김보민, 최이랑, 김현정, 진대연

2024 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록뱀미디어상/CGK 촬영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