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손가락질을 멈추자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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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희생된 모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또 참사가 발생했다. 태국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오던 제주항공 항공기가 지상에 내려온 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담장에 추돌했다. 전체 탑승 인원 181명 중 2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숨을 거뒀다. 참사의 일차적 원인으론 버드 스트라이크가 지목되지만 사상 최악의 참사가 된 이유가 그뿐인가에 의문은 제기되고 있다.

일요일 아침 사고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발 희생 규모가 작어야 한다는 거였지만, 곧이어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홍준표 대구시장이었다. 이 와중에 그가 또 어떤 글을 SNS에 남겨 분란을 만들까, 덜컥 그 걱정부터 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사고 소식이 알려지고 약 3시간 뒤 SNS를 통해 애도의 뜻부터 밝혔다.

다만, 그는 서두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 공항 주변에는 언제나 새들 접근을 막는 조치를 취하는데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참사라면 이번 항공기 참사는 참으로 유감”이라면서 애도에도 조건을 붙이는 메시지를 남겨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국내 최대 규모 항공기 참사를 두고, ‘~로 인한 참사라면, 유감’이라니. 앞으로 그가 어떤 언동으로 유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지 벌써부터 두렵다.

그는 이미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을 두고 막말성 발언을 반복해 왔다. 그 발언도 살펴보면 주로 반대 정파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2017년 3월엔 “좌파들이 해난사고를 정치에 이용한 지 3년”이라고 했고, 그해 겨울 제천화재 참사가 발생하자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세월호보다 더 잘못 대응해 사상자를 키운 제천 참사를 어떻게 책임지고 수습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후에는 “제2의 세월호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참사조차도 그에겐 정쟁의 수단이다.

그간 반복적으로 발생한 참사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럴 때 일수록 정치권은 쓸데없는 메시지를 남기는데 공들이지 말고, 그 손가락질을 멈추는 게 공익에 더 부합했다. 벌써 홍 시장의 조건부 애도가 나왔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고 소식이 알려지던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난하는 글을 먼저 올려 논란을 샀다. 그 글은 곧바로 정쟁 소재가 됐다. 이 대표는 별다른 사과의 말도 없이 글을 삭제하고, 사고 수습 메시지를 새로 올렸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첨예하게 대립만 해온 여야 정치권을 돌아보면, 작은 파열음도 참사 수습이란 당면 과제를 방해할 여지가 크다. 위기의 순간,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할 국가의 최고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 지금 이순간 만큼은 여야 정치권 모두 휴대폰을 두드리던 손가락질을 멈추고, 서로를 향하던 손가락질도 멈춰, 두 손을 맞잡아야 한다.

제발, 손가락질을 멈추자.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