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지 못한 탄생] ③ 고난 받는 이주아동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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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2000년전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이주한 예수는 이주민이었다. 2000년 뒤 한국. 어떤 이들의 탄생은 온전히 축하받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있지도 없지도 않은 존재가 되는 미등록 이주아동. 국가는 이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언제든 강제추방될 수 있는 미등록 이주민의 위태로운 생활이 이주민의 자녀에게도 대물림되기에, 이들의 부모도 이주아동의 탄생을 온전히 축하하지 못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국적국으로 되돌아가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특히 아동이 미등록일 경우, 아동 시기 제공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의료, 복지, 교육 등 각종 서비스 대상에서 배제된다. 그중 한 사람, 미등록 이주아동 강태완은 한국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분투했고 한국에서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지역특화형 비자로 취업한 곳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본다.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미등록 이주여성
② ’강태완’의 길에 선 미등록 이주아동···D-96
③ 고난 받는 이주아동을 위한 기도

번화가, 상점마다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뒤숭숭한 한국 사회, 모처럼 맞은 휴일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캐럴처럼 달갑다. 박순종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목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분주하다. 한 손에 배냇저고리, 한 손에 쌀 포대를 들고, 박 목사가 찾아가는 곳은 새로 태어난 이주민이 머무는 곳이다.

23일 박 목사의 발이 닿은 경북 경산시 한 원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손님을 맞으러 급하게 피운 것인지, 현관에는 숯 몇 덩이를 담은 그릇이 놓였다. 이제 막 불이 붙은 듯, 그릇에서 약한 온기가 피어났다. 환기는 잘되지 않아 다소 매캐하다.

일렁이는 공기 너머, 안방 문을 열고 투이(가명, 26) 씨가 나왔다. 잠옷 차림으로 두 손으로 갓난아이를 안았다. 이 아이의 생일은 12월 11일. 그날 투이 씨는 병원에서 300만 원을 주고 출산했고, 특별한 산후조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투이 씨, 그리고 남편은 모두 베트남에서 온 미등록 이주민이다. 한국에 유학생으로 왔다가, 같은 형편의 사람들끼리 마음이 맞아, 살다 보니 첫 아이를 낳았다. 투이 씨 부부는 아이의 출생을 마냥 축하하고 기뻐하지 못했다. 미등록 이주민으로서 그들 자신조차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해 살아가리란 확신이 없었다.

부모가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이들의 자녀 또한 환영하지 않는다. 언제든 부모와 함께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로 추방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투이 씨 부부는 고민 끝에 아이와 6개월만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후에는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께 아이를 보낼 것이다. 한국에서 너무 커버린다면, 새롭게 베트남 땅에서 적응하기도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리엔(가명)이다. 비록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세상에 기록되지 않은 아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행복을 빌며 축복하는 이도 있다.

박 목사가 기도했다.

“우리 리엔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해주세요. 엄마, 아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6개월 뒤면 엄마 품을 떠납니다. 미등록 엄마, 아빠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도 안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엄마 옆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박순종 목사가 리엔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예배

“연약한 이들 사이 예수 나셨네, 그 낮고 천한 곳, 구유에 누웠네. 그를 맞이한 건 거룩한 자 아닌, 동방의 이교도였다네. 연약한 자로 예수가 나셨네. 연약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라. 가난한 자로 예수가 태어났네. 가난한 자 복이 있으라.”

다시 캐럴이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번화한 대구의 거리. 이번에는 조금 다른 노래도 섞여 나온다. 예수가 평생 살폈던, 가진 것 없는 자, 연약한 자, 빼앗긴 자, 고난에 처한 자를 부르는 노래다. 크리스마스를 맞은 대구의 중심 번화가에 모인 사람들은 단상을 쌓고 그 앞에 모여 앉아, 한국에서 고난에 처한 이주민을 생각하며 두 손을 모았다.

예수 탄생 2024주년, 대구경북 종교인과 이주민, 그리고 이주민과 함께하는 사람 120여 명이 25일 대구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를 열었다.

이날 예배에서는 고경수 대구평화교회 목사, 한창수 엠마오교회 목사, 박성민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장수연 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대표, 정의석 커다란숲교회 목사, 정금교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이 기도와 설교, 축도에 나섰다.

“다치지 마십시오. 죽지 마십시오.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 이주배경 아동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리고 중도입국한 아이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감정으로 살아갈까요. 서로 차별하지 않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고, 서로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국적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문화적 배경이 달라도 서로가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박성민 목사)

▲25일 대구 동성로 구 한일극장 앞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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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애 첫 6개월을 살다가 베트남으로 보내질 투이 씨의 아이 리엔은 훗날 한국을 기억할까. 어떻게 기억할까. 앞으로 겪을 6개월의 한국은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을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이기에, 미등록 이주민이기에 리엔이 보호받을 장치는 한국에 없다. 그를 보살피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박순종 목사는 6개월 뒤 리엔을 보내겠다는 투이 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첫 아이라 투이 씨는 아직 겪지 못했을 테지만, 투이 씨처럼 아이를 고향으로 보내고 힘들어했던 많은 이주민을 박 목사는 기억한다. 투이 씨처럼 고난에 처한 많은 이주민을 위해 기도 한다. 리엔이 척박했던 한국 대신, 그를 돌봤던 사람들의 온기와 기도만큼은 기억하기를 기원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