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방공포대가 성산 빼앗고, 2016년 사드가 마을 빼앗나

[르포] 사드 예정지 성산리 주민들 이야기
“삶의 터전 깡그리 없어질라”
“대통령이 직접 와서 보시라”

17:03

지난달 27일 1년 중 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삼복(三伏) 중 중복(中伏) 점심께, 성산3리 마을회관 지붕 위에 걸린 태극기는 힘차게 휘날렸다. 까맣게 그을린 중년 남성들이 하나, 둘 마을회관을 벗어났다. 비슷한 연령대 남성 서넛은 이미 마을회관 바로 옆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산3리 주민들은 중복을 맞아 닭 19마리를 고아 나눴다. 막 삼계탕 한 그릇씩 비우고 나선 남성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드 배치 때문에 취재 다니고 있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진 백성이 말한다고 먹어나 주겠어? 당신네들 이야기한다고 방귀나 뀌겠냐고”
“취재할 것도 없다. 하는 것 보이 지금 갖다 놓는 건 기정사실인 거고”
“지금 박근혜 함 보이소. 딱, 고대로 밀고 가잖아요”
“X새끼들이라 카이. 성주로 딱 정해놓고, 양산에 간다. 음성에 간다. 칠곡에 간다. 말만 흘리고 성주는 말도 없었잖아. 성주로 벌써 찍어놨던 기라. 그러니까 더 X새끼 아이가”
“내가 카는게 그거 아니가, 성주 4만5천 인구는 다 죽어도 상관없다, 이기라”
“박근혜 선거 운동 엄청시리 했거든. 지금은 뭐라 하는지 아나. 아이고 말도 못한다”
“나도 후회합니더. 박정희 대통령 했는거 봐 가지고 잘 안하겠나. 배웠던 게 잘 안 하겠나 했더니, 개코나”

끼어들 틈도 없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미 배치가 기정사실로 된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자포자기부터, 믿었던 대통령을 향한 성토까지. 말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들이 사는 성산3리는 국방부가 지난달 13일 사드 설치 장소로 확정 발표한 성주 성산포대 바로 아랫마을이다. 성산을 끼고 있는 성산리는 1리부터 6리까지 나뉘는데, 3리는 그중 성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성산3리 마을회관 앞에서 바라본 성산
▲성산3리 마을회관 앞에서 바라본 성산

어린 시절, 추운 겨울 버티게 해준 성산
방공포대 들어오면서 ‘지뢰’ 사고⋯“불안한 산”

2015년 말 기준으로 성산3리에는 117명이 살고 있다. 마을이장 이양권(64) 씨와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5~60년 동안 터 잡고 살아왔다. 이들을 낳고, 기른 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은 족히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성산은 어린 시절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해준 버팀목으로 기억된다.

“땔감 구할려고 자주 올라갔지요. 나무를 해야지 겨울에 방을 뜨뜻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까. 암만캐도 (성산이) 우리한테 도움을 많이 줬지요”

– 이양권 마을이장

마을 주민들은 성산에 기대 삶을 영위해왔지만, 1967년 갑작스레 성산을 빼앗긴다. 국가는 이곳에 방공포대를 설치했다. 성산은 군인들 차지가 됐다. 산 군데군데 지뢰를 심었고, 철조망을 둘렀다. 주민들은 철조망 너머 울창하게 자란 나무가 탐이 났지만, 접근하지 못했다. 지뢰는 허술하게 심겼다. 비가 많이 내린 후면 여지없이 지뢰 사고가 발생했다. 이장 이 씨도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막내 동생뻘 되는 마을 동무가 지뢰 사고로 발목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드 배치 장소로 결정된 성산포대(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사드 배치 장소로 결정된 성산포대(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군인들이 접근을 못 하게 막아 놓으니까, 거기가 나무가 많거든. 사람이 많이 가는 덴 나무가 적고, 안 가는 덴 많잖아요. 나무를 가져다가 땔감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가고 싶거든. 사고 난 곳은 철조망 안은 아니었거든. 그 밑이었는데, 유실됐거나 이래 되가지고⋯비가 많이 오면 유실될 수 있잖아요. 일반인은 어느 게 지뢴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그 근방에 가면 불안한 거지. 자기도 모르게 밟으면 발목이 절단 날 수 있으니까”

– 이양권 성산3리 마을이장

어린 시절처럼 자유롭게 오를 순 없었지만, 성산을 떠나지 않았다. 산 아래서 밭을 일구고 참외를 심어 생활을 이어왔다. 겨울에 심어, 여름 땡볕 아래 수확한 참외를 팔아 자식들을 키웠다. 장성한 자식이 마을을 떠나도 마을에 남았다. 이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은 덕분인지, 다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웰빙, 건강이 중요한 삶의 가치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젊은 부부들이 마을을 찾았다.

▲성주읍내에서 성산리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성산리 마을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성주읍에서 성산리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성산리 마을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매일 아침 들려오는 방공포대 기상나팔 소리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벌어져, 답답해”

40대 이영주(가명, 여) 씨는 두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7년 전 성주로 귀농했고, 2년 6개월 전 성산3리로 들어왔다. 성산 바로 아래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남편은 2년 6개월 동안 돈이 생길 때마다 직접 조금씩 집을 손봤다. 뜰 안에 놓인 작은 돌 하나까지 남편이 직접 가져다 채웠다. 영주 씨 가족은 올봄에야 마루 공사까지 마무리하고 온전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7월, 듣기에도 생소한 사드가 집 바로 뒷산에 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진짜 저는 맨날 여기(성산) 쳐다보면서 울죠. 우리 애기 아빠는 내가 우울증 걸리겠데요. 눈물이 나요. 아이들 때문에 들어왔고, 건강하게 살려고 들어왔는데, 군부대가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왔어요. 대게 가까워요. 아침엔 군인들 기상나팔 소리도 들리고, 저녁때는 불빛도 보이는데⋯불편한거, 사소한 건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여기서 벌어지니까. 그게 제일 답답하고⋯”

– 이영주(가명, 40대, 여)

영주 씨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불안함과 억울함을 함께 토로했다. 10살 딸 아이는 벌써 학교에서 나도는 흉흉한 소식을 전해왔다. “딸래미 학교에서 벌써 전학 간다는 이야길 들어요. 형편 되는 사람은 전학 간다고…여기 2개 있는 초등학교도 애들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아마 학교도 없어지는 상황이 될 거예요. 애들은 다 뜬다고 봐야 해요”

흉흉한 소문은 학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1년 전 대구에서 생활을 정리하고 성산리로 들어와 식당을 개업한 손 씨(여, 50대 중반)는 식당 손님이 확 줄었다며 울상이다. 손 씨는 귀농 준비를 하는 친구에게 성산리를 추천했다가 낭패를 봤다며 볼멘소리도 덧붙였다.

“포천계곡하고 저쪽으로도 장사 안된다고 난리다. 작년만 해도 거기 예약도 들어오고 자리도 없고 난리라는데, 올해는 영 없다고 하더라. 여기가 공기도 좋다고 해서 우리 아저씨 몸도 안 좋아서 대구 생활 정리하고 들어왔는데…내 믿고 아는 사람도 여기 땅 샀더니만, 난데없이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 얼굴 보기도 그렇다. 집 지으려고 계약 다 해 놓고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있다”

– 손 씨(50대 중반, 여)

불안감은 성산3리에 그치지 않았다. 성산3리보다는 상대적으로 성산과 떨어진 성산1리 주민들도 불안감은 마찬가지다. 성산1리 마을회관에서 한가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던 할머니들은 기자의 방문에 반색하며 말을 쏟아냈다. 수십 년을 성산에서 살았다는 수동댁은 “안 됩니다. 여기 사람은 너 안 죽음 나 죽기라. 인제 저녁 먹고 읍에 데모하러 갈라고 한다. 저기 저 할매는 연세가 89이재. 89년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막아야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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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은 너 안 죽음 나 죽기라”
“대통령이 직접 와서 보라고 하세요”

수동댁은 마을 젊은 사람들 이야길 듣고 싶다는 부탁에 손수 기자를 끌고 마을 청년들이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50대 남성 4명과 여성 3명이 뉴스를 보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남성은 “사드 때문에 소주 먹고 안 있는교. 참외는 뒷전이라 카이, 2세 문제지. 농사야 안 지으면 그만이지. 전자파 그거. 이제 성주로 시집올 사람 없어. 총각들 다 죽어”라고 핏대를 세웠다.

또 다른 남성은 “군민들을 너무 무시한다는 거지. 내가 볼 때는 그래, 무식해서 모르는데,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사드가 배치된다고 생각 안 해요. 미사일 하나 날아오면 전면전이잖아. 전쟁 나면 사드가 뭐가 필요하노. 나는 빨갱이도 아니고, 여태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지금은 ‘가스나’라고 한다카이. 내가 볼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는 거야”라고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던 대통령을 향한 비난은 성산리 어디를 가든 들을 수 있는 반응이었다.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분노는 매일 아침 들려오는 성산 방공포대의 기상나팔 소리처럼 실제적인 두려움이 근저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땔감을 구하러 오르던 동네 뒷산을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막았고, 이번엔 마을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성산을 다시 잃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이 깡그리 없어질 수 있으니까. 이 마을도 그렇고, 사드 전자파가 문제가 있잖아요. 여기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은 그게 더 심하다고 봐야 되고, 넋이 나갔다고 봐야지. 청정 지역이고 공기 좋다고 왔는데, 이런 일이 나니까 갈팡질팡 어떻게 할지를 모르잖아”

– 이양권 성산3리 마을이장

이들의 마지막 기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성산리를 방문해주는 것이다. 성산3리 마을회관서 만난 마을 여성들은 하나같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와 보시라고 해야 해요. 직접 보면 다를 거라니까”라고 말했다. 사드가 배치되는 성산 바로 아래서 살아가는 자신들을 직접 만나보면, 대통령이 결정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이들의 간절한 눈빛에서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