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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밀도 있게 흘러간 탄핵정국, 12월의 거리에서 많은 시민을 만났다. 11일 달성군 국민의힘 국회의원 추경호 지역사무실 근처에서 30살 채 모 씨를 만났다. 그날 예정된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 장례식을 들렀다가 시내에서 하는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채 씨는 국민의힘 앞으로 근조화환도 보냈다.
채 씨는 지난 7일 대절버스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도 갔고, 대구 시내에서 매일 열리는 집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도 계엄 전부터 나갔다고 했다. 채 씨가 적극적으로 정치 의사를 표하는 이유는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채 씨는 ‘TK딸’이다. 그는 국민의힘의 지지가 강한 대구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자신이 사는 달성군이 ‘콘크리트 중 콘크리트’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아버지와 갈등도 있다. 그는 이번 윤석열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 20·30여성들이 많은 상황에 동질감을 느꼈다. ‘TK딸’이라는 말을 통해 이런 상황이 조명 되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TK콘크리트를 TK딸이 부순다’는 말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래서 채 씨는 집회에 여성이 많은 것, 비수도권 지역 가운데 대구에서 집회 규모가 큰 것을 두고 “억눌린 마음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집회에서 만난 이들은 대구에 살지만, 국민의힘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정치 관심도는 제각각이지만 문제의식은 비슷했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대구 전체 투표수(약 161만)에서 윤석열 대통령 득표가 약 119만이고, 그를 뽑지 않은 표가 41만 가량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거리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됐다. 대구에 살면서 국민의힘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 않은 이들, 대구가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면서 보수의 텃밭처럼 여겨지는 현실에 답답해 하는 이들이다.
대구 정치 지형은 달라질 수 있을까. 채 씨는 이번 ‘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그 콘크리트에 균열을 낸 것 같다고 했다. 첫번째 탄핵 표결 때 서울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던 아버지가, 두번째 서울행 집회를 앞두고 선 채 씨에게 따뜻하게 입고가라며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채 씨는 첫번째 탄핵 표결에서 국민의힘이 단체로 참여하지 않고, 퇴장한 모습에 아버지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렇지만 정말 아버지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채 씨의 말처럼 TK콘크리트는 당장 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TK딸’ 채 씨 같은 이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가 있다면 콘크리트에는 균열에 균열을 더하고, 언젠가 그 콘크리트가 부서질 수 있다.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며 본회의장을 떠난 국민의힘 의원들을 그 자리에 다시 앉힌 것은 채 씨와 같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1년 뒤에도, 또 당명을 바꿔도 기억하고 목소리 내는 것이다. 계속해서 내란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면서 국정을 혼란 시키는 이들에게, 진짜 ‘국민의 힘’이 무엇인지를.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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