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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11일 만이다. 3일과 14일 사이 전국 곳곳에선 광장이 열렸다. 광장을 연 것은 시민들이다. 그리고 대구에서 시민의 요구를 받아 무대를 만든 건 ‘윤석열퇴진 대구시국회의’(대구시국회의)다. 대구에서는 14일 주최 측 추산 4만 5,000명이 모이기도 해, 전국적으로도 집회 참가자가 많기로 꼽힌 지역이기도 하다.
대구시국회의는 대구지역 시민단체, 노동조합 88개가 참여한 조직이다. 노동·장애인·여성·평화·의료·대학생 단체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진보정당도 속해 있다. 운동권이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처럼 집회가 익숙한 이들이 없었다면 12.3 윤석열 내란 사태 바로 다음 날부터 매일 무대가 세워지긴 어려웠을 테다. 이들은 무대와 스크린을 설치하고 음향, 트럭을 준비했다. 경찰에 집회신고를 하고 매일의 진행안과 피켓을 준비하기도 했다.
장지혁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대구시국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시민단체들의 소통창구, 노동조합과의 중간다리 역할도 한다. 장 운영위원장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대구시민대회의 실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그에게 지난 11일 동안 열린 10번의 대구시민시국대회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인터뷰 첫 순서라 부담스럽지 않나.
나보다 더 고생한 실무자가 많아서 부담스럽다. 집행위원장은 전체 진행을 총괄하는 게 주요 업무다. 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하고 언론 대응을 했다. 파트별 실무를 담당한 이들이 정말 고생했다.
–12월 3일 밤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 전부터 몸살기가 있었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휴대전화에 ‘윤석열 계엄 선포’ 알림이 떠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믿을 수 없어 뉴스를 틀었는데 진짜였다. 바로 휴대전화 송수신이 되는지부터 확인했다. 메시지 송출을 위해 방송은 유지해도 통신은 두절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방송도, SNS도 통제가 안 되고 있었다. 실패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국회에 군부대를 투입하길래 그때부턴 ‘제 정신이 아니구나’ 했다.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육군 제2작전사령부도 움직일 거란 생각에 잠깐 긴장했는데 뉴스를 보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곤 바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등 단체 실무자들과 통화해서 다음날 기자회견과 집회를 결정했다.
-그리곤 4일 바로 1차 시민대회가 열렸다.
다음 날 오전 바로 회의가 잡혔다. 실무진 라인에서 간단히 일을 나누고 대표자들에게 승인받는 절차를 거쳤다. 시민대회 참석 인원이 첫날 1,000명 정도였는데 매일 조금씩 늘었다. 그 주 토요일에는 참석자가 갑자기 많아져 추산을 포기했다가 다시 세기도 했다. 보통 집회가 끝나고 행진할 때, 3,000명 빠지는 데 10분이 걸린다. 그런데 그날은 80분 이상 (참석자가) 빠졌다. 그래서 대략 2만 명으로 추산했다. 잠깐 앉았다가 가거나, 지나가다 멈춰서서 구경하는 등 참가자 동선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인원 추산이 쉽지 않다.
그날그날 대오의 밀도에 따라서도 인원 추산 방법이 다르다. CGV대구한일극장 앞에 무대가 설치되는 경우 대오가 밀도 있게 앉는다면 오락실 위치까지 800명~1,000명 정도 된다. 옛 대구백화점 앞까지 대오가 앉는다면 2,000명이 넘는다고 본다.
-대구시민시국대회에 들어간 예산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평일 집회 기준 1,500만 원 정도 든다. 무대, 음향, 트럭 각각이 최소 3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일단 빚을 내서 시작했고, 시국대회를 시작한 후 계속 후원이 들어와서 어떻게든 메꾸고 있다. 1,000원, 5,000원 등 소액 후원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과 비교해서 무엇이 가장 달랐나.
붐업 단계가 없었던 게 8년 전과 가장 큰 차이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는 이슈가 터지고 기자회견을 하고 집회를 예고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해 10월 24일 JTBC에서 최순실의 국정개입에 대한 증거로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했는데, 그에 대한 집회를 그다음 주 토요일에 열었다. 상황팀, 모금팀, 홍보팀 등 팀을 꾸려서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윤석열 탄핵 정국에선 갑작스럽게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실무진 구성이나 진행안에 대해 논의할 시간 없이 바로 다음 날 일단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역할을 나누긴 했지만 완벽하게 팀 구성을 한 채로 돌입할 순 없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주축이 된 사람들이 이번에는 여건상 빠지기도 했다. 한 세대가 넘어가면서 실무진 나이가 훨씬 젊어졌고, 한편으론 그래서 매일의 집회를 감당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피드백들이 빠르게 반영됐다.
매일 집회를 쳐내면서도 조금씩 정돈해 나갔다. 둘째 주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언론 대응을 내가 맡으면서 외부와의 소통창구를 통일하고, 행진을 담당할 진행팀 등 핵심 업무에 대한 담당자를 정했다.
집회 참석자들의 연령대에 따른 고민도 있었다. 10대 후반이 많아진 것은 이전 집회들과 분명 다른 점이다. 이들은 집회가 재미없으면 주최 측에 인스타그램 DM으로 항의한다.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거나 ‘플레이리스트가 단조롭다’는 식이다. 이런 피드백을 받아 반영하면서도 단지 즐겁게만 집회를 꾸리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또한 반영해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였다.
아슬아슬한 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가수 빅뱅의 멤버 중 한 명이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됐기 때문에 빅뱅 노래를 틀면 안 된다는 피드백은 충분히 반영할 수 있지만, 같은 그룹의 다른 멤버인 GD 노래도 틀면 안 된다는 피드백에 대해선 논의의 여지가 있는 거다. 주최 측이 연예계의 모든 논란을 미리 파악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 외에도 대표자 발언과 자유 발언을 적절히 분배하는 것, 안전을 위해 현장 질서를 통제하는 것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활동가가 주로 참석하는 집회와 일반 시민이 다수 참석하는 집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가.
12월 7일 집회를 예로 들 수 있다. 한 시간가량 시국대회를 진행한 뒤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까지 행진했는데, 도착해서도 열기가 뜨거웠다. 경찰이 건물 앞을 막고 있었고, 주최 측은 계란 던지는 퍼포먼스를 고민했다. 하지만 집회 참석자들이 조직된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컸다. 다치거나 벌금을 물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참석자들이)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했다. 10대, 20대 비중이 크기도 했다. 결국 방향을 틀어서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퍼포먼스로 진행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같다.
-실무자 면면을 보면 이번엔 시민단체보다 민주노총 활동가 수가 더 많았다.
전반적으로 시민단체 여력이 안 났다. 연말이라 결산, 총회 준비, 후원행사 등 바쁜 일이 있는 상황이었다. 역량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집회 참석률은 매우 높았다. 많은 단체가 매번 깃발을 챙겨서 회원들과 나와줬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14일 집회에서 스크린과 음향이 계획대로 설치가 안 됐다. 우리야 늘 집회에 가지만, 그날 참석한 사람 중엔 이런 자리가 처음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준비가 계획대로 됐다면 더 많은 사람이, 오래 참석했을 것이다. 발언 자료를 보면 ‘어릴 때 엄마와 촛불집회에 왔던 경험 때문에 이번에 또 나왔다’는 내용들이 있다. ‘이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야 다음에 또 나올 텐데’ 싶어서 그날의 상황이 두고두고 아쉽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집회를 계속한다고.
헌법재판소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대구시민시국대회를 이어간다. 이번 주 토요일 21일에는 CGV대구한일극장 앞에서 연다. 크리스마스 전이니 파티 분위기로 행진 없이 열 계획이다.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진중하고도 재미있게 기획해서 많은 이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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