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다시 만날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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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모인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2월 7일 대구 CGV한일극장 앞에 모인 2만 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부족으로 자동 폐기되는 걸 실시간 스크린으로 확인했다. 모두 국민의힘을 향해 탄식과 야유를 쏟아냈다. 일주일 뒤인 12월 14일 공평네거리 앞 왕복 6차선을 채운 4만 5,000명은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을 함께 만끽했다. 시민들은 옆사람을 얼싸 안으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4만 5,000명이라는 수는 기록적이다. 10일간 대구지역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조합, 시민단체, 교수‧연구자, 문화예술인 등 각계각층에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부터 매일 열린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선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장애인, 노동조합, 학생단체, 진보정당의 깃발이 휘날렸다. 수많은 응원봉과 피켓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적혔다. ‘역사 공부하다 역사가 되러 왔다’거나 ‘최애 콘서트 취켓팅 할 시간도 부족한데 탄핵, 구속, 해체 외치러 나오게 하냐’ 같은 거다. 모두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따라 불렀다.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집회에 모였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억압 받고 있다는 감각 때문일 거다. ‘TK의 딸’이 대표적이다. SNS에서 화제가 된 어떤 대자보에는 ‘‘수치도 양심도 모르는 당신들을 대신하여 당신들의 몫까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껴온 TK의 딸이 말한다.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고 적혔다. 이건 반어법으로 읽어야 하는 구호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대구는 가사노동 분담률, 가족관계 만족도 모두 전국 꼴찌다. 집안, 학교, 회사 분위기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나도 시민’이라 외치는 소리로 읽는 게 맞다.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등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들의 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학생 인권, 장애인 집회, 퀴어축제 모두 대구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아 온 현장이다. 농인 유튜버 ‘영’씨는 자유발언에서 “농인들은 듣지 못해 독재정권의 비상계엄에 더욱 공포에 떨었다”고, 본인을 성소수자라 소개한 최진아 씨는 “동료시민으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계속해서 낼 것이다. 우리 세대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눈물로 배웠다. 내가 좋아하는 가족과 아끼는 사람들, 우리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지만 광장은 여전히 시민들의 것이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표를 던진 국회의원을 심판하고 다음 선거를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결과로 이뤄져야 한다. 동성로에 모인 집회 참석 인원 만큼이나 변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14일 오후 대구에서는 주최측 추산 4만 5,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사진=정용태 기자)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