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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의 극심한 혼란에 비하면, 6년쯤 지난 1597년의 형세는 그나마 버틸만했던 듯하다. 비록 왜군들은 여전히 조선에 남아 있고, 중국 군대 역시 계속 조선으로 파견되고 있지만, 그래도 조선은 그사이를 비집고 농사지어 양식도 마련하고 민생도 힘들게 보존하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힘든 피난 생활을 했던 오희문의 눈에도 이제 일상이란 게 존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리 ‘일상’이라 표현해도, 전쟁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전쟁 상황을 수습하려는 노력과 의도마저, 백성들에게는 죽음과 같은 현실을 만들기도 했다. 이 기록이 있기 한 해 전인 1596년 호남과 호서 지역에서 왜군들이 분탕을 쳤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명나라에서는 양경리를 대장으로 하는 대군을 조선에 추가로 파병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왜군을 물리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왜군만큼이나 재앙이었다. 모든 전쟁에서 원군은 자신이 도와주러 가는 나라에 대한 강한 우월 의식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타국의 전쟁을 도와준다는 인식은 자기 목숨에 대한 불안감만큼 그 나라 백성들에 대한 폭력적인 우월 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군을 맞이하고 이들과 함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은 적과의 전투보다 더 힘든 굴욕과 고초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당시 조선은 양경리가 끌고 오는 대군을 맞이하고 응대하는 모든 일을 황해도와 강원도에 맡겼다. 이 두 도에서는 명나라 군사들에게 보낼 말과 인부들을 충당하고, 온갖 물자를 모아 대군을 지원해야 했다.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접경에 들어오면 중국 장수들을 접대하고, 이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야 했다. 동시에 그들은 명나라 군사들의 폭압적인 우월의식을 온몸으로 맞서야 했다. 황해도와 강원도는 명나라와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들 명나라 군대가 남쪽으로 출정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이 어느 경로를 통해 전쟁 지역으로 갈지에 대해 모든 지역이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더 재앙이 강원도를 덮쳤다. 주상 역시 명나라 군대를 응원하기 위해 원주와 제천 두 고을로 거둥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왕의 거둥은 기본적으로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멀리서 조선의 전쟁을 도와주러 온 명나라 군대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터였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먼 길을 떠나겠다는 결정에는 좋은 의도만 있었을 듯하다.
그러나 백성들의 현실을 달랐다. 왕의 거둥이 예정되자, 정부 예산을 책임지는 호조는 선발팀을 꾸려 홍천에 거점을 꾸렸다. 그리고 강원도 전역에서 주상의 거둥에 필요한 물품과 식량, 말, 인부 등을 거두기 시작했다. 왕이 거둥하면, 모든 필요한 물자는 왕의 거둥 지역에서 나오는 게 당연했던 당시 상황에서 이는 관례였다. 그들은 전쟁 중에도 그나마 살아 있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왕에게 충성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이렇게 되니, 왕의 거둥 결정은 백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왕의 거둥 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아예 강원도를 떠나기 시작했는데, 그 행렬은 피난 행렬만큼이나 급하고 비참했다. 피하지 못한 이들에게서는 비참한 소식도 들려왔다. 강원도 이천에 사는 한 백성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급하게 물품을 요구하는 조정을 보면서,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아내에게 “내 한 몸이 살아 있으니 관아에서 역役을 이리 심하게 지운다. 차라리 내가 죽으면 당신이라도 편안할 것”이라면서 술 한 동이를 비운 후 목을 매었다. 그에게 관군이 왜군과 다른 게 무엇이었을까?
안 그래도 전쟁이라는 상황이 쉽지 않은 데, 거기에 명나라 군대 이동과 왕의 거둥이 겹쳤으니, 어느 백성인들 쉬 버틸 수 있는 이가 있었을까? 이를 기록한 오희문은 전란 종식을 위한 군대의 움직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백성들이 부담스러우니 과연 전란이 끝날 때까지 조선 백성들이 남아 있기는 할까?”라고 반문했다. 조선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조선 백성을 사지死地로 몰아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이 이렇다. 많은 경우 의도 자체가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자신의 정권을 보위하기 위한 친위 쿠데타마저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판이니, 명분과 의도만으로 어떤 일을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특히 조정의 대책이나 정부 정책은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왕의 선한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거둥이라도 백성들이 그로 인해 죽어 나간다면, 백성들 입장에서 이 의도는 나쁜 의도와 구별되지도 않고 구별해야 할 필요도 없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