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들] ⑥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대회 끝나면 쓰레기 줍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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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무도한 자에게 권력을 내어주었을 때 국가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처절한 경험을 하며, 대한민국은 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형형색색, 각양각색의 응원봉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뉴스민>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그들, ‘민주주의자’들을 만나고, 기록한다.

동성로 CGV한일극장 앞에서 한 시간가량 윤석열퇴진 대구시민대회가 끝나고 다들 행진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때부터 김희선(67), 엄재호(58) 씨 부부는 분주해진다. 비닐 봉투와 집게를 챙겨 들고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뒤로 이동한다. 천천히 앞으로 빠지는 줄을 따라 걸으며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행진 선두에 선 트럭을 따라 모든 참가자가 앞으로 빠지기까지 대략 10여 분, 부부가 지나간 자리는 대회 시작 전보다 깨끗했다.

▲김희선(67), 엄재호(58) 부부는 10일 월요일부터 집회에 종량제 봉투를 챙겨 나왔다. (사진=정용태 기자)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사는 희선 씨는 12월 3일 밤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서울 용산에 사는 딸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걸 알았다. “헬리콥터가 지나가. 무서워. 엄마 어떻게 해. 대구로 내려가야 할까”라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곧바로 뉴스를 틀었다.

“우리는 10.26 비상계엄을 한번 경험한 세대거든요. 12.12 군사반란도 직접 경험했고요. 비상계엄 이후의 상황에 대해 굉장히 두렵더라고요. 기시감이 들면서 ‘지금 이게 사실인가, 영화 속인가’ 싶더라고요. 그도 그럴 게 대통령 포고령에 ‘처단한다’고 나오잖아요. 뉴스에선 군인들이 국회에 몰려가는 게 나오니 계속 불안에 떨면서 밤을 보냈어요.”

희선 씨는 우선 딸에게 “침착하고 기다려라”고 했다. ‘딸과 같은 젊은 세대가 느낄 공포감은 또 다르겠구나’ 생각했다. 그들 입장에선 갖고 있던 자유를 뺏기는 셈이었다. 교과서로만 보던 통금, 집회시위의 자유 박탈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걱정됐다. 계엄령이 해제된 뒤에도 국회 상황과 경제 폭락 뉴스를 보며 불안한 며칠을 보냈다.

“2차 계엄령이 선포되진 않을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잖아요. 일상이 완전히 긴장된 상태에 있는 거예요. 그래도 집회에 나오니 젊은 층이 많아서 좀 안심이 됐어요. 탄핵 콘서트라는 느낌도 받았고요. 우린 겁내고 두려워하면서 길에 섰잖아요. ‘시민의 힘이 대단하다, 우리보다 더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운동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김희선, 엄재호 부부는 시민대회 내내 직접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부부는 함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시민대회에서 쓰레기를 줍고 사탕을 나눠주며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봤다. 희선 씨는 “오늘은 사비로 대구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 12명의 얼굴이 박힌 피켓도 만들어 왔다. 투표를 안 하고 나간 이들의 뒷모습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면 지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서문시장에 대통령이 와도 지금의 대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두 번 다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