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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에서 태어나 쭉 충청도에서 거주하던 전봉수(69) 씨는 강제로 대구시민이 됐다. 1998년 천안역에서 납치돼 대구시립희망원에 강제로 수용됐기 때문이다. 전 씨의 주민등록증마저도 주소지가 대구시로 돼 있다. 희망원 강제수용 도중 새로운 주민등록이 됐기 때문이다.
전 씨는 원치 않는 대구시민이 돼, 희망원에서 24년간 강제수용됐다. 희망원에서의 삶은 자유를 잃은 삶이었다. 봉수 씨는 7~8명과 함께 한 방에서 생활했고, 종이가방 만드는 일을 해야 했다. 희망원을 벗어나려 하면 며칠간 독방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벌을 받았다.
2016년 희망원 인권침해 사태 이후 지역 장애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압박에 대구시는 희망원 거주인에 대한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전 씨도 2022년 7월 희망원을 퇴소해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 한 차례 희망원에서 도망 나와 고향인 아산시를 배회하며 가족들을 찾기도 했으나, 가족을 만날 수는 없었고 다시 희망원을 찾아가야 했다. 그랬던 전 씨는 희망원 퇴소 직후 뜻하지 않게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인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장애인자립생활주택 담당자가 전 씨와 경찰에 가족 찾기를 문의했기 때문이다. 전 씨 가족이 경찰에 실종 신고한 상태였고, 곧바로 전 씨 신원이 확인된 것이다. 24년의 세월, 전 씨 가족들도 충청도 지역의 시설들을 방문하며 전 씨를 찾으러 다녔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대구에 있으리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 씨 가족에게는 24년이라는 이별의 기간이 허탈하고, 원통하다.
전 씨의 강제수용 피해는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조사에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희망원을 포함한 전국 4개 집단 수용시설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끝에 이들 시설에서 전 씨를 포함한 피해자 13명을 확인했다. [관련 기사=진실화해위, 대구희망원 부랑인·장애인 강제수용 진실규명···독방감금·시설 ‘뺑뺑이’도(‘24.9.10.)]
전 씨는 진실화해위에서 강제수용 피해를 인정받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전 씨는 10일 대구지방법원에 국가상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억울하게 잃어버린 청춘 24년, 무엇으로도 배상받지 못하겠지만,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는 것에서 회복이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10일 오후 1시 30분, 전 씨와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대구시립희망원 강제수용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희망원 퇴소자의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 제기는 전 씨 사례가 처음이다.
기자회견에서 전 씨는 “천안역에서 어떤 스님이 밥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눈 떠보니 희망원이었다”며 “희망원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 20년 동안 가족을 못 만났다. 희망원 안에서는 때리는 것도 많았고, 죽는 것도 많이 봤다. 청춘이 아깝다. 사과받고 싶다”고 말했다.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처장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시설 수용 정책을 유지하면서 벌어진 수많은 개인의 인권침해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국가로부터 반드시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씨의 소송을 대리한 강수영 변호사(법무법인 맑은뜻)는 “시설 입소 과정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업무, 20년이 넘는 세월 가족이 애타게 찾는 상황에서 연고자를 찾아줄 업무 모두 대한민국의 책임하에 있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 자행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희망원에서 전 씨는 강제노동, 독방 수용, 인권침해, 감시를 일상적으로 당했다. 실제 생년월일과 다른 주민등록을 했고, 청춘을 잃어버리게 했고, 사회와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단절시키는 불가역적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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