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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11시 50분, 경북대학교 북문 길 건너 횡단보도 앞에 선 이현정 씨(23세, 여)가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미친거 아니가” 스피커 너머의 학과 친구가 동의하는 말을 하자 이 씨는 “밤에 잠을 못 잤다. 수업 들어가서 졸아야겠다”고 말했다. 손에 든 유에스비에 하다 만 과제가 담겨 있다. 밤새 친구들과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사진과 기사를 공유하느라 늦잠을 잔 탓이다.
“밤에 게임 하느라 소식을 늦게 접했어요. 국회 앞에서 경찰이랑 시민이 몸싸움하는 영상을 친구가 보냈더라고요. 단체카톡방, 텔레그램방,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면서 실시간 소식을 확인하면서 밤을 새웠어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말이 되냐’, ‘윤석열이라면 그럴 수 있다’, ‘담화문 핵심이 도대체 뭐냐’, ‘국장(국내주식시장)이 아니라 미장(미국주식시장)만 해서 다행이다’ 등 친구들이랑 떠들다 보니까 새벽 4시더라고요.”
경북대학교 복지관에서 조별과제 중이던 사회학과 여학생 셋도 현정 씨처럼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카톡으로 뉴스 기사 공유하다가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는 것까지 보고 잤어요. 저희 세대는 비상계엄이라는 단어가 낯설잖아요. 국회 앞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다는 걸 듣고 혹시 유혈사태가 발생하진 않을까 덜컥 무섭더라고요. 그전부터 대통령한테 기대는 없었는데요. 그래도 탄핵은 힘들겠다 싶었거든요. 어젯밤에는 탄핵이 현실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김민아(가명, 20세) 씨 말에 나머지 두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복지관 식당에서 조별과제 중이던 컴퓨터공학과 남학생 둘은 “나한테 무슨 영향이 있을지 먼저 찾아봤다”고 입을 모았다. 김가람(가명, 24세) 씨는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뭔가 찾아보니 온라인 카페 접속을 차단하고, 언론도 탄압할 수 있다더라고요. 전쟁까지 걱정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나와 관련 있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20대들은 대체로 (대통령에) 부정적이잖아요. 주변 분위기를 봐선 내년쯤 탄핵당할 수 있겠다 싶어요”라고 말했다.
사회과학대학 건물 앞에서 만난 경제통상학부 이민호(가명, 25세) 씨는 정치에 딱히 관심은 없지만 어제 부모님과 할머니가 뉴스를 보며 놀란 이야기를 꺼냈다. 이 씨 부모님은 대구가 고향이고 두 분 모두 국민의힘 지지자이다. 할머니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 얘기를 자주 꺼낼 정도로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어제 비상계엄 선포, 오늘 새벽 해제 뉴스에 대해선 “대통령이 경솔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어머니가 특히 정치에 관심이 많으셔서 뉴스를 열심히 보세요. 저는 오히려 그래서 정치 얘기를 싫어하고요. 어머니도 어제 비상계엄 선포 뉴스에는 ‘윤석열이 잘못했다’ 하시더라고요. 그 세대가 공유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경솔했다’는 어머니 말에 공감해요”라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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