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에 놀란 TK 민심, “우리 새끼들 또 전쟁 겪을까 밤새 눈물”

동대구역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
“탄핵으로 가는 길, 돌이킬 수 없어”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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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9시 20분, 동대구역 제2맞이방 TV 앞 의자에 앉은 A 씨 가족은 전날 비상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의 이야기를 열띠게 나눴다. 대구 남구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A 씨(50세, 여)와 아버지(87세)는 서로를 ‘꼴통 보수’, ‘전통 보수’라 소개했다. 가족은 A 씨 남편의 음악회에 참석한 뒤 오후 10시 30분 귀가해 저녁을 먹으면서 TV로 소식을 접했다. 새벽 2시까지 온 가족이 모여 뉴스를 보다가 잠들었고, 이날 아침 동탄으로 가는 부모님을 동대구역에 모셔다드리러 A 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시작한 토론이 기차역 플랫폼까지 이어졌다.

“여당이 잘 받쳐주면 그래도 탈 없이 국정 운영을 할거라 생각했는데, 어제 비상계엄 선포 뉴스를 보고 ‘이젠 탄핵이다’ 싶었어요. 놀라고 황당하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걱정됐죠. ‘전쟁이 날지, 경제가 망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담화문을 봐도 그래서 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A 씨가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85세)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우리는 6.25 전쟁을 겪었잖아. 이북에서 피난 오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우리 새끼들이 또 전쟁을 겪으면 어쩌나 무섭고 밤새 눈물이 나더라고. 윤석열은 국민의힘에서 세운 사람이잖아. 윤석열이도 불쌍해. 어리석고 고생을 하잖아. 이재명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지.” 아버지가 말을 이어받았다. “내가 이승만 때부터 군인이야. 나라가 어떻게 되려나 싶어. 탄핵도 탄핵인데 다음이 안 보여.” 해군사관학교 15기인 A 씨 아버지는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다.

▲동대구역 역사 안에서 시민들이 간반에 있었던 비상계엄 소식을 뉴스로 확인하고 있다. (사진=박중엽 기자)

동대구역서 만난 직장인들도
“탄핵으로 가는 길, 돌이킬 수 없어”

아침 일찍 동대구역을 찾은 직장인들도 대통령 탄핵으로 가는 길을 돌이킬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신천동에 사는 B 씨(38세, 남)는 어제 야근 후 퇴근길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지인의 카카오톡을 받았다. 사실이라 믿기 어려웠다. 당연히 가짜뉴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뉴스 속보를 확인한 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싶었다.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렸다.

“담화문 내용이 길잖아요. 이유도 너무 많고요. 사실은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거죠. 집에 돌아가선 유튜브 생중계를 틀어놓고 국회에서 결의안 통과되는 것까지 봤어요. 탱크 지나가고 헬기 뜨는 게 뉴스에 다 나왔잖아요. 대통령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또다시 탄핵이 되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제 위헌적인 계엄령을 선포한 건 탄핵, 나아가 내란죄에 대한 우리 판단이 필요한 상황 같아요. 가족, 직장, 친구 주변도 다 비슷한 반응이고요.”

달서구에 사는 직장인 C 씨(53세, 남)도 비슷한 이야기를 내놨다. “잠을 못 잤어요. (뉴스를) 끝까지 봤어. 밤을 꼴딱 새웠어요. 대통령 담화문이 너무 기가 차서 황당하더라고요. 나라가 빨리 정상화가 돼야 해요.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나라가 운영돼야 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 분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전부터 거부권 행사나 국정 운영에 불만이 있었는데, 지금 시대에 비상계엄이라뇨. 이젠 (여론을) 돌이킬 수 없죠.”

아침 일찍 창원에서 대구로 출장 온 D 씨(40대 중반, 여) 씨는 직장 동료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밤 11시 회사는 다음날 재택근무를 하라는 공지를 내렸다가 새벽에 다시 출근하라는 재공지를 냈다. 원래같으면 재택근무 소식에 환호를 질렀겠지만 워낙에 황당한 소식이라 밤늦게까지 얼이 빠져 있었다. “민주주의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 대통령이 불명확한 이유로 40년 전 악몽을 다시 꺼낸 거잖아요. 그냥 직장인이라 정치랑은 먼데 담화문에 전혀 동의가 안 되더라고요. 제 아이를 생각하니까 무섭기도 했어요.”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던 이도 전날 밤의 비상게엄 선포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황여술(72) 씨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여당 대표에게 이야기도 안 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곧바로 해제했지 않나. 개혁을 하고자 하면 밀어붙일 수는 있다. 비상계엄도 할 수 있다고 본다. 할 거면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못 모이게, 해제를 못 하게끔 준비를 해서 해야지. 주변에선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