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령 코끼리 ‘코순이’, 새집으로 이사갈 수 있을까

사람으로 치면 100살 최고령 코끼리
'생애 마지막 이빨'이 사라지기 전, 이사갈 수 있을까
2027년 12월까지로 미뤄진 대구대공원 이전 계획
지난해 9월에야 기초 공사 시작
달성공원 관리소 측, "코순이 함께 이사가도록 잘 보살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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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에 사는 코순이는 국내 최고령 코끼리다. 1971년에 달성공원에 왔다. 서류상에는 코순이가 1969년에 태어난 것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그것이 코순이의 실제 탄생 연도인지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코순이를 지켜본 수의사는 이미 그때 2살이라고 하기 어려운 크기였다고도 전한다. 1969년을 기준으로 해도 올해도 56살, 아시아코끼리 평균 수명이 60살인 걸 고려하면 사람 나이로 100살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코순이는 좁은 울타리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코순이의 세상은 실외 방사장 479.55㎡(145평)와 내실 242.45㎡(73평)을 포함해 722㎡(218평)이다. 철장이나 담장, 먹이 창고 같은 시설물까지 포함한 것이어서 실제 코순이가 누빌 수 있는 세상은 이보다 더 좁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규격으로 활용되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코끼리 외부 방사장 면적 기준은 최소 500㎡이고, 야생 아시아코끼리가 넓은 활동 반경을 습성으로 한다는 걸 고려하면, 코순이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가늠하긴 쉽지 않다.

▲ 지난달 28일 찾은 대구 중구 달성공원 동물원에서 코끼리 ‘코순이’가 야외방사장으로 나오고 있다. 안내문에는 코끼리가 자유롭게 내실과 방사장을 오가고 있다며, 보이지 않아도 양해를 바란다고 적혀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살 초고령 코끼리
‘생애 마지막 이빨’이 사라지기 전, 이사갈 수 있을까
전시동물, 동물복지 인식도 과거에 비해 빠르게 변해

‘코끼리 내실은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코끼리가 편히 쉴 수 있게 문을 열어 두고 있으니, 코끼리가 보이지 않더라도 관람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코순이가 사는 코끼리사 철장에 붙은 안내문에선 동물복지를 고민하는 동물원의 고민이 엿보이지만, 동물복지 개념이 없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설, 좁은 공간이라는 한계는 코순이를 온전하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그 탓에 언젠가부터 코순이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정형행동’이라는 병이다. 코순이는 때때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동물원 동물에게 나타나는 일반적 증상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코순이에게 ‘춤추는 코끼리’라는 별명을 붙였다.

▲ 코순이가 흙목욕을 즐기는 모습 (사진=달성공원)

오랜 기간 코순이를 지켜본 박순석(55) 수의사는 “코순이의 장수 비결은 아직 치아가 남아있다는 것과 온화한 성격 같다”고 했다. 코끼리는 일생 6~7회 이갈이를 하는데, 코순이의 연령을 고려했을 때 더 이상 새로운 이빨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빨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닳으면서 서서히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씹는 것이 어렵고, 먹는 것과 영양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급격히 노화되고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수의사의 설명대로 아직은 건강한 치아 덕분에 코순이는 하루에만 티모시 건초 25kg를 포함해 먹이 44kg을 먹어 치운다. 먹이만으로 부족한 영양 공급을 위해 비타민E, 칼슘 영양제도 급여 받는다. 인공적인 공간과 행동풍부화 시설이 제한적인 동물원 동물이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것을 고려하면, 동물원의 살뜰한 보살핌이 정형행동 같은 아픔 속에서도 코순이가 국내 최고령 코끼리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코순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이 근원적으로 코순이가 행복하게 마지막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잘 없다. 개선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달성공원 이전이 오래전부터 추진되면서 공원 시설을 향상시키는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1991년부터 달성공원은 여러차례 이전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0년에는 민간투자자를 찾지 못했고, 2010년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가 국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2017년, 2020년에도 이전 계획이 발표됐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2023년 또는 2026년 완공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사이 코순이와 함께 이곳을 지키던 수컷 코끼리 복동이는 2023년, 49살로 생을 마쳤다.

그렇게 코순이의 세상은 50여 년 동안 1970년에 머물렀다. 행동풍부화를 도울 나무나 인공 연못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는 회색빛 시멘트 세상이다. 지난해 5월에야 대구시는 대구대공원 기공식을 열고 겨우 첫 삽을 떴다. 대구시는 대구도시개발공사를 중심으로 한 공영개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2027년 12월까지로 미뤄진 대구대공원 이전 계획
지난해 9월에야 기초 공사 시작
달성공원 관리소 측, “코순이 함께 이사가도록 잘 보살필 것”

대구시 계획에 따르면 대구대공원 사업면적(162만 5,000㎡) 중 135만㎡(83.1%)가 동물원이나 산림 레저 스포츠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코순이가 생활하게 될 코끼리사는 야외방사장만 3,403㎡(1,029평)이고, 615.75㎡(186평) 규모로 내실도 계획되어 있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진흙목욕탕을 비롯한 행동풍부화 시설도 포함돼 있다.

다만, 기공식이 이뤄졌지만 완공 시점을 가늠하는 건 어렵다. 기공식 당시 대구시는 2027년 6월로 완공 시점을 못 박았지만, 최근 대구도시개발공사에 따르면 완공시점은 6개월 정도 미뤄진 2027년 12월로 조정됐다.

▲ 대구대공원 조감도, 웰컴존 부분에 코순이의 집이 위치할 계획이다. (사진=대구시)

대구도시개발공사 대공원건설사업단 관계자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대공원 안에 여러 공사들이 진행 중인데 동물원의 경우 지난 9월에 공사가 시작됐고, 국제인증 기준에 맞춰 설계를 변경하고 심의를 진행하다 보니 2027년 연말까지 연기됐다”며 “일정이 더 늦어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임미연 달서구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대구대공원 이전 계획이 잘 추진됐더라면 복동이와 코순이가 하루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며 “새집으로 이사 갈 때까지 코순이가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수의사는 “코순이가 오기 전에 달성공원에 있던 코끼리는 집도 없이 느티나무에 쇠사슬로 다리를 묶어두기도 했다. 이듬해인가 그 코끼리는 죽었다”며 “그 이후에 코순이가 왔고, 예전엔 먹이체험도 했다. 그런 동물을 나도, 사람들도 어렸을 땐 신기하게 바라봤다”고 전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 안에 동물복지에 대한 관점이 빠르게 변화했다”고 “특히 동물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동물원 동물에 소홀할 것이 아니라 동물복지를 위한 환경에 더 많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현재 달성공원 동물원에는 코순이를 비롯해 포유류 21종 91마리, 어류 1종 300마리, 조류 50종 252마리가 있다. 조현백 달성공원관리소 관리장은 “코순이도 당연히 새집으로 이사를 함께 가야 한다”면서 “사육사들이 지금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지만 더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잘 보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