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옆집에 붙은 임대 딱지···지방 도시의 슬픈 초상

11:29
Voiced by Amazon Polly

지방 중소도시 구도심에 살면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주차장, 분리수거장과 같은 생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관공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웃 공동체도 없다시피 하며, 새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어서 학교나 학원도 점차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사람 없이 불만 켜진 파출소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 새로 조성된 지구대로 연결되는 인터폰만 놓여 있다. 이것이 지방 중소도시 중앙상가에서 평생 살면서 체득하는 ‘소멸’의 감각이다. 30년 전 정착한 이 지역은 꾸준히 쇠퇴하고만 있다.

이 지역은 90년대까지만 해도 제일합섬, 세모페인트와 같은 경공업 공장에서 일을 마친 노동자들, 기차역을 이용한 상인들, 지역 주민들이 모여 밤새 먹고 마시는 불야성이었다. 이제는 경공업 공장들이 빠진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교통이 발달하고 신도심과 분리되며 시장을 낀 구도심을 찾는 사람은 점차 줄고 있다.

구도심 쇠퇴는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지만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웃집에도 임대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옆집에 붙은 임대 딱지를 보자 그 집과 얽힌 30년에 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릴 적에는 술을 많이 마시는 이웃집 어른에게 감정이 썩 좋진 않았으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고마운 이웃임을 깨달으며 ‘동료애’ 비슷한 것이 싹텄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 어른과 마주 앉아 술잔을 채워드리기도 했다. 그 어른이 세상을 떠나고 자녀가 가게를 맡으면서 이웃집 문을 두드릴 일이 없어졌다. 그 집 아들과도 언젠가 말을 터야겠다는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다. 사람의 온기가 머물렀던 곳임을 알아서, 옆집에 걸린 임대 딱지는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경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들도 모두 똑같은 구도심 쇠퇴 문제를 겪고 있다. 포항 육거리는 고등학생 시절 기숙사를 빠져나와 친구들과 놀던 시내 중심가다. 그곳 또한 내가 사는 경산과 마찬가지로 최근 부쩍 임대 딱지가 붙고 있다. 철강산업에 올인하다시피 한 포항은 글로벌 철강 경기 침체와 지역에 대한 고민이 없는 업계로 인한 여파에 휘청이고 있다.

구미, 김천, 경주도 판박이다. 구도심에 형성됐던 행정기관과 상권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 문제를 겪는다. 이 문제는 단지 구도심 주민의 생활 불편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공동화가 심각해질수록 사회 인프라 유지 비용이 증가한다. 학교, 수도, 도로, 금융, 교통, 행정서비스 유지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전체 시민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이 발달하며 도시가 팽창하던 시기는 끝난 상황에서 도시가 앞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기능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그래서 구도심 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와 경북이 대구경북 행정통합 주민설명회를 마쳤다. 경북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신통찮다. 경북도민은 누구보다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당사자로서 행정통합에라도 기대를 걸어볼 법한데도 이들의 특별한 호응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밋빛으로 점철된 급작스러운 홍보에 비해 지역민이 쌓아온 비관의 감각이 깊은 탓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역민의 체념을 되돌릴 시간과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 대구시가 보이는 모습처럼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반발 여론을 뭉개고 통합을 강행한다면, 그로 인한 갈등 비용을 더욱 크게 치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 나오는 주민투표 주장 또한 성급한 구호로 느껴진다. 대구와 경북이 나뉘어, 대도시와 소도시가 나뉘어 다수결하는 식으로는 어떠한 통합도 이룰 수 없다. 시간을 들여 행정통합 방안을 마련하고, 시간을 들여 설득해야 한다. 지금 제시된 행정통합안에는 경북 도시들이 겪는 구도심 침체 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한 대책조차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이 체념과 우려를 거두고 기대를 걸어볼 때까지 설득해야 한다. 행정통합을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태도는 정치인의 한탕주의에 불과하다. 도시마다 동네마다 처한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