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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아침,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남색 모자에 검은색 장갑을 착용하고, 파란색 패딩을 입었다. 피켓 대신 손에 든 부채에는 검은색 펜으로 ‘박정혜, 소현숙은 꼭!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썼다. 그 옆에 선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은 무지개 색실로 짜인 모자와 장갑, 주황색 점퍼를 입었다. 알록달록 색연필로 ‘노동자, 민중들도 충분히 쉬고 웃고 춤추는 세상을 만들자’고 쓴 부채를 손에 들었다.

지난 22일부터 두 사람은 부산 호포역에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까지 약 160km를 걷는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320일째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2명과 연대하기 위함이다. 김진숙은 해고된 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을, 박문진은 영남대의료원 옥상에서 227일을 버텼다. 두 사람이 길을 나서자, 하나, 둘 동행하는 발걸음도 더해졌다.

8일 차인 이날은 대구 북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신동역까지 걷는다. 호포역에서 출발한 두 사람은 삼랑진역, 밀양역, 상동역, 청도역, 팔조령 휴게소, 기쁨의 꽃동산을 지나왔다. 매일 15~20km씩 걷는다. 그리고 매일 10명~30명이 이들과 함께 걷기 위해 합류한다. 이날은 대구, 부산, 구미, 안동, 군위 등에서 30여 명이 왔다. 오전 11시, ‘일본 먹튀기업 옵티칼은 고용을 책임져라!’고 새긴 파란 조끼를 나눠입고 길을 나섰다.

▲29일 11시, 대구 북부 시외버스터미널에 모인 30여 명은 파란 조끼를 나눠 입고 걷기 시작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지도위원(앞줄 왼쪽부터).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영남대의료원의 박문진,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박정혜와 소현숙은 모두 여성이다. 김진숙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35m 높이 크레인 위에 올라갔을 때를 떠올렸다. 대소변이 든 ‘바께스(플라스틱통)’을 아래로 내리는 일이 수치스러웠다. 무게 때문에 남성 동지가 통을 받아야 했다. 고공에 있는 박정혜와 소현숙도 말 못 할 어려움이 많을 거라 생각하면 발걸음이 빨라졌다. 텅 빈 공장을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그 외로움을 잘 알았다.

박문진은 2019년 김진숙이 자신을 향해 걸어 왔을 때를 생각했다. 박문진이 해고자 원직 복직과 노동조합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74m 높이 영남대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일 때다. 박문진은 암 투병 중인 김진숙이 부산에서 대구까지 걸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곤 농성을 그만두려 했다. 병원에서 일하니 항암치료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다. 심지어 김진숙은 12월 23일 출발한 첫날 산을 경유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한 사람 살리려다 한 사람 죽는 거 아니냐며 혼비백산했던 그때 일이 생생했다.

▲박문진과 김진숙 두 사람이 8일차 도보길을 경쾌하게 걷고 있다.

5년 전 김진숙이 혼자 시작한 길을, 이번엔 박문진과 김진숙 두 사람이 함께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영남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며 만난, 오래된 벗이다. 1993년 김진숙이 부산노동자연합 의장이고, 박문진이 대구 영남대의료원 노조위원장일 때 한 살 터울인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90년대에는 집회나 교육이 많았다. 1998년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던 시절 함께 인도도 다녀왔다. 지나온 시간부터 앞으로 맞이할 시간까지, 걸으며 나눌 이야기는 충분했다.

“‘앓는 것도 사치라, 걸어서 박문진에게로 갑니다’라고 했던 김진숙의 마음을 알겠다”고 박문진이 말했다. 김진숙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 친구한테 내가 그때 얼마나 쌔가빠지게 걸었는지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길도 있었는데 굳이 그때 걸었던 팔조령(대구 달성군 가창면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을 넘어서 왔죠. ‘나한테 잘해야 돼’ 얘기하면서 혼자 걸었던 얘기도 해주고요”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문진이 “고공에 있는 박정혜와 소현숙을 생각하면 맛있는 걸 먹어도, 여행을 가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하니 옆에서 김진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딛는 걸음마다 고공의 두 사람을 향한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자신에게도 말한다. ‘끝까지 무탈하자.’ 고공에선 몸과 생각을 조금만 돌리면 끝없이 먼 낭떠러지가 보인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아는 두 사람이다.

▲8일차는 30여 명이 박문진, 김진숙과 걸었다.

남들보다 반걸음 빠른 김진숙의 옆에서 박문진이 걷는다. 그 뒤를 같은 조끼를 입은 30여 명이 묵묵히 따라 걸었다. 정승철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조합원은 몸이 아파 일을 쉬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길을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1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옛날보다 연대의 힘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다. 고립된 투쟁이 답답하고 속상했는데, 이렇게 길에 나와 함께 걸으니 그 마음들이 좀 해소되는 것 같다.

2013년 송전탑 위에서 쌍용차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했던 문기준 쌍용자동차 조합원도 발걸음을 보탰다. 당사자로 고공에 올라갔을 때와, 고공에 있는 이들을 위해 걷는 지금 마음은 비슷하다. 그들의 투쟁이 꼭 나의 투쟁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지금의 투쟁은 과거와 비교해 관심이 적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조석옥, 김옥희 두 사람은 안동에서 왔다.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이제는 퇴직했는데 김진숙이 다시 길 위를 걷는다는 소식에 만사 제쳐두고 대구에 왔다. 김진숙에 대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위의 박정혜, 소현숙에 대해선 신문을 보고 빠삭하게 알고 있다. 원래 잘 걷는데 오늘은 김진숙의 발걸음을 쫓아가는 게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게, 한 걸음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게 삶의 의미다.

박문진은 말했다. “다만 이 희망뚜벅이 걸음이 조금이나마 박정혜, 소현숙의 고공농성을 알려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SNS, 1인 시위 등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거든요. 고공의 두 사람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어 김진숙이 말했다. “노동자의 투쟁에 사람들이 무감해졌다고들 하지만 어쨌든 전 시민사회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제가 연대의 힘으로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37년 만에 복직도 했잖아요. 그 수가 오늘은 많을 수도, 내일은 적을 수도 있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이들은 내일 경북 칠곡 신동역에서 포남보건진료소까지 걷는다. 연대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더해질 것이다. 이튿날인 12월 1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도착하면 공장 내에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는 업체로 일본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투자기업이다. 2003년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했다. 한때 직원이 700여 명, 2017년 기준 매출액은 7,843억 원에 달했으나, 주요 납품업체인 LG디스플레이 공장 이전으로 매출액이 줄었다. 2018년, 2019년에는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해 60명 수준으로 생산직이 줄었지만, 2022년에는 200여 명으로 늘었다. 2022년 10월 화재가 발생해 공장 1개 동이 전소했다.

한편 지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관계 회사인 한국니토덴코로 10명이 전적한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해고노동자들은 전례가 있는 만큼 니토덴코가 해고노동자 7명을 고용승계해야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