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그림을 만나다] ‘플라워 킬링 문’, 김영환X제이크 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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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주] ‘영화, 시·그림을 만나다’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본 후 시인은 그 영화의 이미지를 시로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 함께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와 그림,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좋은 영화 또한 한 폭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시인과 화가가 본 그 영화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플라워 킬링 문’
감독:마틴 스콜세지
출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2023, 러닝타임 206분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부족의 땅에 석유가 발견되고, 부족 사람들은 값비싼 차를 몰고 호화로운 집에 산다. 1차 전쟁에서 돌아온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오세이지 여성 몰리(릴리 그래드스톤)와 결혼한다. 그의 삼촌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은 지역의 영향력 있는 백인 인물로 오세이지 부족의 재산을 탐한다. 이때 오세이지 부족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몰리의 자매들도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 사건이 계속되자 연방정부에서도 수사관을 파견한다.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은 문명과 야만의 익숙했던 경계를 허무는 고발극이자 반성의 참회록이다. 러닝 타임 206분. 3시간 26분의 긴 시간이지만 감독은 자신이 직접 스크린에 등장하며 서늘하며 추악한 백인들의 범죄를 목도하기를 요청한다. 기꺼이 그 요청에 응답한다. 그가 믿고 보는 거장이고, 이 이야기는 그가 내미는 양심의 칼날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돈 때문이다. 오일 머니, 검은 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황금빛 돈이다. 그 돈의 주인은 인디언이었다. 1920년대 북미 원주민인 오세이지족은 백인들에 의해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당한다. 희망이 없던 이들에게 신은 축복을 내린다. 그들의 땅에 석유가 터져 나온 것이다. 순식간에 그들은 부자가 된다. 백인을 하인으로 두고, 기사가 딸린 차의 소유주가 된다.

이때부터 오세이지족에게 의문의 죽음이 닥친다. 누군가는 머리에 총을 맞고, 누구는 자고 있던 집에서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폭사한다. 1921년부터 3년간 24명이 살해된다. 그러나 아무런 수사도 이뤄지지 않는다. 인디언 살인자보다 개를 걷어찬 사람이 더 유죄를 받기 쉬운 때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석유는 축복이 아니라 죽음의 안내자였다. 영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그랜이 2017년 내놓은 ‘플라워 문’이 원작이다.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집으로 돌아온다. 하는 일 없이 얼굴만 미끈하게 잘 생긴 그는 ‘킹’이라 부르던 삼촌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을 찾아간다. 헤일은 그에게 제안을 한다. “어떤 색깔의 여자를 좋아하니?” “흰색, 검은색 다 좋아요.” “빨간색도 괜찮니?”

1차 대전에 참전한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집으로 돌아온다. 하는 일 없이 얼굴만 미끈하게 잘 생긴 그는 ‘킹’이라 부르던 삼촌 윌리엄 헤일(로버트 드 니로)을 찾아간다. 헤일은 그에게 제안을 한다. “어떤 색깔의 여자를 좋아하니?” “흰색, 검은색 다 좋아요.” “빨간색도 괜찮니?”

영화는 시작부터 인종적 논쟁점을 꺼내 든다. 1921년 오클라호마 털사에서는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한 흑인 대학살이 벌어졌다. 공식 통계로는 36명이 사망했지만 재조사 결과 300명에 이르는 흑인이 사망한 걸로 추정됐다. 이제 인디언 차례라는 것을 넌지시 던진다. 어니스트는 통통하고 피부가 좋은 몰리(릴리 글래드스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결혼에 이른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은 오일 머니를 둘러싼 100년 전 인디언 살인사건을 통해 미국 주류 백인사회의 폭력의 역사를 다시 쓴다. 문명의 백인과 야망의 인디언이란 이분적 편견을 깨부수며 탐욕과 착취에 길 백인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플라워 킬링 문’의 원제는 ‘플라워 문의 살인자들(Killers of the Flower Moon)’이다. 오세이지족은 5월을 꽃을 죽이는 달이라 했다. 비극의 시기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윌리엄 헤일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기도하며 신을 찬양한다. 신이 야만인 인디언에게 축복을 내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야. 그러나 내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어. 그에게 이웃은 백인이며, 신은 백인의 구세주이며, 법은 늘 백인의 편이어야 했다. 살해를 지시하면서도 인디언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는 위선을 보여준다.

어니스트는 ‘킹’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몰리를 사랑하지만, ‘킹’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양심은 있지만, 그것이 백인 우월의 의식을 떨쳐내지 못한다. 영화는 미국 폭력의 역사가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백인 주동자와 그들의 작당과 모의에 놀아난 수동적 백인이 자행한 것임을 이 둘의 캐릭터로 잘 보여준다. ‘오일 머니’라는 단어에서 이미 폭력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플라워 킬링 문’은 이런 텍스트가 거장의 주제 의식과 만나 서사극의 담대함으로 증폭된다. 그들의 비열함에 치가 떨리지만 감독은 관객을 주저앉힌다. 자극시키기 위해 기름칠을 하지 않는다. 마치 ‘이것이 일상이었는데 뭘!’이란 듯 ‘당신은 어때?’라며 무심하게 스토리를 진척시킨다. 그래서 3시간이 넘는 이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길 필요가 있을까 여겨질 수도 있다.

지역 신문에 난 몰리의 부고에는 그 어떤 범죄의 표현도 없다. 이 이야기는 100년 전에 일어났던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의식의 관점이라는 것을 감독이 직접 호소한다. 마치 ‘그래서 3시간도 못 참아!?’라는 듯 말이다.

거장의 향기에 배우들의 호연 또한 말할 필요가 없다. 내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은 로버트 드 니로의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올 정도다.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메소드 연기는 언제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어니스트라는 캐릭터의 다층적 내면을 책장 넘기듯 순간순간 표변하며 살려낸다.

▲김영환 화가(왼쪽)와 제이크 레빈 시인. (사진=김중기 평론가)

영화를 본 후 김영환 화가는 동판화 작업을 시작했다. 동판화를 제작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료들 중에 석유에서 나온 것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의도를 밝혔다. 작품은 거대한 달을 배경으로 석유 시추기에서 석유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형상이다. 동판화 작업은 까다롭고 손도 많이 간다. 동판에 송진가루를 뿌려 불을 붙이면 망점이 생긴다. 여기에 부식액을 뿌려 부식을 촉진시키면 더 짙은 화상을 얻을 수 있다. 석유가 터져나오는 듯한 효과가 그런 과정 끝에 만들어졌다.

작품을 가득 채우는 달은 오세이지족의 슬픈 운명을 뜻한다. 약육강식의 야생이 지배했던 그 시대, 달은 꽃을 죽였다. 웃자란 식물에 의해 이제 갓 피어난 꽃들이 시들어갔다. 백인들의 야욕에 오세이지족은 죽어 나갔고, 그들은 금세 꽃망울을 터뜨린 꽃처럼 연약했다. 그들은 싸우지 않았고, 그들의 슬픈 운명에 순응했다.

김영환 화가는 “이것이 우리와 다르다”며 “우리 민족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모두가 분연히 일어나 싸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채색본에서는 그들의 죽음의 흔적이 핏빛 강이 돼 석유 시추기 앞을 흘러내린다. 축복이었던 검은 석유가 죽음의 재앙으로 변한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flower killing moon’ 동판, / 왼쪽부터 원본, 채색본, 흑백본. 17x20cm, etching .aquatint 기법, 부분 채색.

미국인 시인 제이크 레빈은 야만에 의해 세워진 미국의 역사를 여러차례 지적한 적 있다. 특히 ‘플라워 킬링 문’에서 보여준 백인의 탐욕과 씻을 수 없는 죄악에 분개했다. 태생적으로 죽이기 위해 태어난 존재, ‘내츄럴 본 킬러’라고 단정했다. ‘플라워 킬링 문보다 내츄럴 본 킬러’는 운율이 살아 있는 시다.

토닥토닥, 흑흑 등 공감각적인 시어로 채워져 있다. 아메카리 원주민 문화에서 코요테는 속임수를 뜻한다. 몰리가 처음 본 어니스트에 대한 인물평이 ‘코요테 같다’이다. 뭔가 속이려고 드는 백인이라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니스트와 결혼한다. 어니스트는 영화 속에서도 뭔가 어리숙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으로 나온다.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다. 삼촌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할 뿐이다. 어니스트는 무지한 모든 백인 남성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다.

제이크 레빈은 “언어는 자연적으로 자라고 사물을 연결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볼 때 언어는 곰팡이와 아주 유사하다. 그리고 버섯은 곰팡이의 일종이다. “시인은 사회에서 자라는 곰팡이의 일종이기도 하다. 사회가 시인을 죽이려 해도 시인은 그 틈새와 어둠 속에서 자란다. 곰팡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지만 영양가도 될 수 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곰팡이 경제에서 버섯을 거래하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코요테는 맛있어 보이는 버섯도 속일 수 있다. 독이 될 수 있다. “언어가 우리를 속이는 방법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습한 숲에서 자라는 독버섯처럼 언어가 어디에나 있고 기만적이기 때문에 시인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버섯이 먹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들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매우 강력하다.”

‘플라워 킬링 문보다 내츄럴 본 킬러’
_ 시인 제이크 레빈

보통 코요테는 가까이 가면 도망친다

토닥토닥토닥

보통 코요테의 흰 달리는 발이 보인다

울부짖음

밤에 코요테의 울부짖음은 무엇인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밤의 소리에 코요테 울음소리가 없을때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에서

두 팔을 별을 향해 뻗은

사와로 선인장이 가장 슬픈 것이다

너무 흑 흑 하는 것이다

죽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흑 이지

돈을 많이 벌면 죽이는 것이지

죽이는 것은 흑흑 하지않고 오 예스하는 것인데

시인은 킬러가 아니다

우리가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음악은

인간의 귀 사이에서 자라는 곰팡이와 같기 때문이다

시인의 마음은 버섯 모양 마음이고

시인의 버섯 모양의 마음은

 버섯처럼 포자를 살포하지

동료들 만날 때마다

약간 젖은 이끼 낀 숲 바닥에 있는 촉촉

상금을 받을 때, 시인은 첫번째 질문

이 돈으로 버섯을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버섯이 풍부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시인이지

지하철 녹색 선을 타고 있는 군중 속에

승객에게 촉촉한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보다

버섯마음을 감추고 싶어하는 나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거무틱한 표정이 있다

석양의 무법자

클린즈 이스트우드

내 얼굴 좀 봐 봐

당신의 가족을 죽이고

당신의 돈을 훔치러 왔다고 말하는 얼굴이 있는데

나의 입을 열면

아주 작고 귀여운 버섯들이 공기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버섯 중 일부는 인간에게 독이 있지

나의 내추럴 본 킬러즈…

미안해

그들의 잘 못이 아니다

버섯은 어쩔 수 없다

김중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