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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교회 장로예요. 직원들한테 시도 때도 없이 ‘교회 믿어야 합니다’ 말하거든요. 교회 나가는 사람한테는 별도로 수당을 지급해요. 매주 정해진 시간에 치킨을 시켜 먹고 선물을 주는데다 얼마 전에는 ‘연말이니 내 돈 1,000만 원을 내놓겠다. 교회에 많이 오는 순서대로 돈을 나눠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강요지, 뭡니까”
설마 싶던 그의 말이 공장 앞에 서니 곧바로 이해됐다. 13일 오전 찾은 태경산업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크게 걸렸다. 공장 입구에 천하대장군마냥 서 있는 전봇대 두 개에는 ‘노동자가’, ‘이긴다’라는 현수막이 각각 걸렸다.
조재식 민주노총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태경산업현장위 대표(64)는 내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간 회사와 싸웠지만 아직 바꾸지 못한 게 많다. 회사는 올해 임금·단체협약(단협) 교섭장에 인사노무담당 상무라는 외부인을 앉혔다. 원래 사장이나 사장 아들이 앉던 자리였다. 그는 회사에 상주하지 않았다. 회사가 제시한 단협안에는 그동안 노조가 이룬 많은 걸 과거로 돌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조건 저하 금지 조항을 삭제하거나, 태경산업 전체 노동자에 미치는 단협 효력을 조합원에게만 제한하는 식이다. [관련기사=태경산업의 끝나지 않은 노조 탄압···노동계, “특별근로감독 실시해야” (‘24.09.12.)]
조 대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달 16일 회사 앞에 천막을 쳤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 7번째 천막이다. 겨울을 앞두고 있었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천막 안에는 난로와 버너, 전기장판, 컵라면 한 박스, 인스턴트 커피부터 넣었다. 천막 지지대에는 농성일지와 건전지수거용 컵을 달았다. 농성 29일 차, 농성일지가 다섯 페이지를 넘어가던 날 조 대표를 만났다.
성서산업단지에는 올해 2분기 기준 자동차부품, 섬유, 화학, 목재, 종이 등을 만드는 2,986개 업체가 가동 중이며 4만 7,201명의 노동자가 고용돼 있다. 특징이라면 업체 대부분이 50인 이하 사업장이라는 점이다.
태경산업도 이중 하나다. 성서산업단지공단 ‘2024년 2분기 입주업체 리스트’에 따르면 태경산업에는 28명이 고용돼 있다. 고무호스를 생산하며 최근 5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성장했다. 2020년 매출액 63억 원, 영업이익 3억 원이던 실적은 2021년 매출 107억 원, 영업이익 5억 원으로 2022년 매출 168억 원, 영업이익 14억 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도 매출액은 166억 원, 영업이익은 9억 원을 기록했다.
조재식 대표가 태경산업에 입사한 건 2012년이다. 본가는 경남 거창이지만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19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대구로 왔다. 행정직 공무원으로 21년 일한 뒤 명예퇴직했고, 일자리를 찾다가 우연히 본 광고를 따라 태경산업에 입사했다.
막상 입사해 보니 작은 공장은 공직사회와 너무 달랐다. 사장이 정리 정돈이 안 되어 있는 책상을 발로 툭툭 차는 걸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3번 설, 추석, 휴가철 상여금 받는 날은 사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직원들은 ‘오늘 사장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어떻던데?’ 서로 물었다. 기분이 좋으면 20만 원, 아니면 10만 원이나 15만 원이었다.
노동 환경도 열악했다. 틀에 고무 형태를 맞춰서 솥에 넣어 25분 정도 찌다 보면 땀이 주체할 수 없게 흘렀다. 10월 말부터 2월까진 그나마 할만했다. 여름엔 공장 내부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갔다. 150도로 달궈진 솥 앞에서 일하다 보면 온몸의 물이 다 나오는 것처럼 땀이 빠졌다. 그런데도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조 대표는 퇴근하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소주 한잔 하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성서공단지역지회와 연결됐다. 2014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처음엔 직원 28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는 직원을 개별적으로 불러 회유, 탈퇴를 종용했다. 그해 임단협에 들어갈 때는 전부 탈퇴하고 조 대표를 포함한 2명만 남았다. 탈퇴한 직원들은 미안해서 남은 직원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당시를 들여다 본 기록이 포함된 경북대 사회학 석사논문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집합행동-대구 성서공단 노동자들을 중심으로>(조은별, 2014.12.)는 이렇게 설명한다. “회사 관리자들은 주말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조합원들을 만나 노조 탈퇴서를 받기 시작했는데, 2명의 조합원만을 남기고 모두 탈퇴하는 등 분열을 겪게 된다. (중략) 노조에 남은 두 사람은 개별적인 노동조건 향상보다는 사업장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겠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2명으로 꾸려진 노조는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를 조금씩 바꿔왔다. 단협을 통해 노조가 얻어낸 성과는 전 직원에 적용됐다. 상여금은 설, 추석, 여름휴가, 연말 총 4번 정해진 금액을 주도록 바뀌었다. 회사에 설치된 직원 감시용 CCTV를 철거하고, 만 60세였던 정년은 만 65세로 연장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조항도 2021년 신설했다. 전 직원이 모이는 조회시간에 사장이 노조를 비난하거나 특정 대통령 후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조 대표는 그 자리에서 시정을 요구했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비조합원들도 노조를 응원했다.
천막도 여러 번 쳤다. 성서공단지회, 금속노조,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 주변의 연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천막에서 자고,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은 뒤 바로 출근했다. ‘여기서 밀리면 성서공단 전체 노동자가 밀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단전에서 각오가 올라왔다. 어떤 날은 ‘빨리 퇴직하면 이런 꼴 안 볼 텐데’ 싶다가 또 어떤 날은 ‘회사의 부당한 행태를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누군가 또 나서야 할 텐데’ 싶었다.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조 대표가 느끼기에 이번 회사와의 싸움은 좀 다르다. 본인의 퇴직이 1년 남았다는 점, 회사가 외부인을 데려와 협상 자리에 앉혔다는 점 등에서 신호가 좋지 않다고 느낀다. 회사는 그동안 노사가 합의한 노조 활동시간에 대해서도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미리 회사에 인원과 시간을 명시해 공문을 보내면 노조 활동시간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외부에서 온 인사노무담당 상무는 이걸 문제 삼아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조 대표는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회사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건 2명이던 조합원이 이제 5명까지 늘었다는 점이다. 2014년 가입한 조 대표, 2015년 가입한 조합원 총 두 명이 쭉 노조를 지켜왔는데 3년 전 1명, 2년 전 1명 가입하더니 올해 5월 추가로 1명이 가입했다. 조 대표는 “아직 회사를 바꿔나가는 단계”라며 “나이가 조금만 더 젊다면 진짜 제대로 바꿔보고 싶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열심히 하고 나가면 남은 동료들이 열심히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을 앞둔 소회를 물었더니 싸움에 대한 각오가 대답으로 돌아왔다. “성서공단 노동자들의 등대 같은 조직이 되고 싶어요. 모두를 대변할 순 없겠지만 우리 활동으로 다른 노동자도 사장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대로 싸워서 태경산업현장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생각입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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