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쿠팡을 지운 이유

10:30
Voiced by Amazon Polly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 3명이 청문회를 개최해 달라고 발의한 국민동의청원이 성사됐다. 청원인에 +1을 보탠 입장에서 청원이 성사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젠 국회 소관 상임위가 필요성에 대한 심사를 한 뒤 개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청문회가 성사되면 쿠팡 과로사, 블랙리스트 문제, 일용직 퇴직금 체불 등에 대한 국회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다.

▲이달 7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국회 농성장 앞에서 쿠팡 청문회 개최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SNS)

청원 동의 버튼을 누르며 나와 쿠팡의 복잡한 관계를 떠올렸다. 첫 인연은 취업준비생 시절이다. 용돈이 필요했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에는 향후 거취가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알바천국에서 가까운 물류센터를 검색해 문자로 지원했더니 합격 답장을 받았다. 다음날 통근버스를 타고 실려간 물류센터에선 발가락 고통 지옥을 만났다. 처음 신어 본 안전화의 사이즈 문제였는지 엄지발가락 살이 계속 벗겨졌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신발을 벗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울면서 퇴근시간까지 버텼뎐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기자 시절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 물류센터에서도 계속 확진자가 나왔다. 마스크를 나눠주고 방역을 완벽하게 한다는 데 직접 가서 보지 않는 이상 보도자료를 믿을 수 없었다. 직접 가서 방역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데스크에 보고한 후 쿠펀치 앱으로 근무를 신청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일하러 와 있었다. 하필이면 Hub(상하차) 업무를 지원해 쌀, 세제 같은 걸 알파벳 별 박스에 옮겨 담았다. 매일 앉아만 있던 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점심을 먹고 계단에 앉아 오후 근무는 어떻게 하지 또 울다가 조퇴를 해버렸다.

두 번의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경험 이후 난 쿠팡 앱을 지웠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밤 12시 전에만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물건이 배달되어 있는 감각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도저히 마트에 장 보러 갈 여유가 없을만큼 일이 바빠서, 동네 마트에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배송비 등 타 사이트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등 점점 쿠팡을 사용할 이유가 늘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 이유에 유통업 구조 변화의 이유가 더해졌다. 미국 나스닥 상장 전후로 쿠팡의 한국 이커머스 시장 독점은 사실상 가시화됐다.

쿠팡 앱을 완전히 지운 건 고 장덕준 씨 어머니인 박미숙 씨를 만나 인터뷰한 날이다. 쿠팡 칠곡물류센터 야간노동으로 장 씨가 숨진 지 2년쯤 지난 시점이다. 장 씨는 사망 4개월 뒤 산재 인정을 받았다. 쿠팡은 ‘업무는 전혀 힘든 게 없었고,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에 숨졌다‘며 아직 유가족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후 쿠팡 앱을 켤 때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 씨가 떠올랐다. 내내 울고 싶었던 나의 짧은 노동 경험도 떠올랐다.

▲쿠팡은 7일 오후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서 ‘쿠팡 김천첨단물류센터’ 착공식을 진행했다 (사진=쿠팡 뉴스룸)

지난 10일 쿠팡이 발행한 ‘2024 쿠팡 임팩트 리포트’에 따르면 쿠팡과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직고용 인력은 지난 9월 기준 8만 명이 넘는다. 쿠팡 관계사가 직고용하는 인력 비중은 수도권보다 지방 물류센터가 더 높다는 내용도 담겼다. 언론은 쿠팡이 청년실업률 회복에 기여하고 소상공인 매출, 대만 수출도 증가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일자리가 귀한 지방은 쿠팡 물류센터 투자 소식을 대대적으로 환영한다. 지난 7일 쿠팡은 경북 김천시에 김천첨단물류센터를 착공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경북도와 김천시 일대 로켓배송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김천시는 공식 SNS에 ‘‘완공되면 500명 이상의 직고용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격양된 반응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쿠팡의 혁신과 성장에 박수를 보낼수록 그 노동의 허점은 가려진다. 야간노동, 불안정 고용, 높은 산재율, 블랙리스트 관리 등 쿠팡이 어떻게 포장해도 이는 질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적어도 일하다 죽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쿠팡공화국’이 가리려는 노동환경을 촘촘히 점검할 때다. 청문회가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