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이사를 앞둔 터라 미리 가재도구를 하나씩 포장하다 구석에서 먼지로 코팅한 DVD타이틀 몇 개를 찾았습니다. 날씨도 습하고 일하기도 귀찮다는 핑계로 하나씩 돌려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그중에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도 있었습니다.
십 년 전, 2006년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천만 관객 흥행몰이를 하던 무렵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겨울은 춥고 여름에는 덥다는 경상도 대구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대구의 동쪽, 그러니까 경산, 영천, 포항, 경주는 한 번씩 다녀봤어도 서쪽인 성주, 고령, 김천지역은 딱히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해 너무 더웠던 여름, 지인들이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자는 이야기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냉큼 응했고, 그렇게 나선 길은 대구의 서쪽 성주였습니다.
대구 도심을 벗어나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비닐하우스가 많더군요. 대부분 참외농장이었습니다. 과수 중심이라 비닐하우스가 많지 않았던 동쪽과는 달리 성주지역은 정말이지 하우스가 많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성주군 가야산 자락에 있는 포천계곡이었습니다. 준비해간 음식을 먹으며 물장구도 치면서 한여름의 더위를 싹 날렸습니다. 성주가 초행길이었지만, 참 아름다운 자연과 이색적인 경관을 가진 좋은 곳으로 기억이 남았습니다.
10년이 지난 2016년의 7월, 우리 정부는 북한 미사일 대응수단의 하나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경북 성주군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도 전문가가 아닌지라 이런저런 귀동냥을 통해 알아보니 기존 미사일 방어체계보다 사거리가 길고, 더 넓은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경북 성주군에 배치하는 이 무기의 작전범위에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경기도 평택 이남은 포함되지만, 휴전선은 물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핵심지역은 미치지 못합니다.
게다가 사드를 배치한다고 하니 주변국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웃 국가들은 즉각 반대 입장을 내고 사드미사일 배치 중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드를 사용하기 위해 함께 설치하는 레이더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고, 경쟁국들의 핵심 정보자산으로 활용될 공산이 큰 게 문제라는 겁니다. 쉽게 말해 옆집이 대문에 CCTV 달았는데, 담벼락을 넘어 우리 집 안방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고, 뒤집어 말하면 유사시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된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성주군은 미사일 포대가 배치될 성산을 비롯해 대황산, 빌무산, 봉화산, 비룡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입니다. 그중에서 성산은 해발고도가 유독 낮은 편(해발 380m)에 속합니다. 포대 운용의 핵심요소인 X밴더 레이더는 대다수 주민이 거주하는 좁은 구릉지 하늘 위로 끊임없이 극초단파 전자파를 뿜어낼 예정입니다. 건강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충분한 설명과 동의도 없이 도입 예고 며칠 만에 성주 배치 확정이라는 기막힌 현실을 접하며 더운 여름날 일터와 삶터를 지키기 위해 뜨거운 아스팔트로 너도나도 나서고 있습니다.
영화 <괴물>도 비슷한 갈등 관계가 등장합니다. 2006년 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여러 모순을 ‘괴물’이란 캐릭터를 중심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대충 요약하면 외국군(천조국) 실험실의 위험한 폐기물을 불법으로 한강에 방류하고, 이 폐기물을 먹고 자란 ‘괴물’이 사람들을 공격하며 사회가 일순간 혼란에 빠집니다. 그 와중에 잡혀간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좌절합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과 무관심(혹은 이기심), 정부기관의 폐쇄성과 경직성, 언론의 호들갑과 무책임한 정보의 남발 속에 서로 불신하던 가족은 서서히 하나가 되어 ‘괴물’의 실체에 접근합니다.
그런데 10년 전 영화 <괴물>에서 등장하는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무기가 현실의 사드미사일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는 시민을 공포로 몰아가던 바이러스의 숙주로 ‘괴물’을 규정하고 정부와 군이 나서 외국에서 개발된 무기 ‘에이전트 옐로우’를 들여와 서울 한복판에서 사용하려 합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정부와 군 입장에서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기를 개발한 외국군이 사용을 권고했으니 그냥 밀어붙입니다.
바이러스를 확인도 못한 상태에서 이를 사용하려는 정부기관과 막으려는 시민들 간의 힘겨루기 현장에 ‘괴물’이 뛰어들며 혼란은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이제 10년이 흘러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이라는 위협에 대응할 새로운 무기체계를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레이더가 뿜어대는 전자파의 유해성에 대한 성주지역 주민의 우려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여러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해명과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 또, 주변 국가들에게는 안보와 관련된 영향은 절대로 없을 것이며 오직 핵무기 억제력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외교채널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무기체계로 북한이 핵 개발을 멈추고 주변국과의 긴장 관계가 해소되어 한반도가 평화로워진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습니다만, 지금 이야기되는 사드의 작전범위와 배치 목적, 주민 갈등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 나가서 대외 반응을 고려했을 때 사드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어쩌면 영화 속 ‘에이전트 옐로우’같은 역할로 전락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듭니다.
10년 전 영화 <괴물>은 ‘괴물’을 만든 게 어쩌면 우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만든 ‘괴물’을 잡기 위해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지금 다시 보더라도 효과가 의문스러운 무기를 사용하려던 것까지도 말입니다.
그런데 한여름 성주에서 벌어지는 사단을 보고 있자니 거꾸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에이전트 옐로우’를 만들고 사용하기 위해 ‘괴물’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무기의 도움 없이도 성주의 농민들이 들녘에서 다른 걱정 없이 참외농사를 짓는 풍경을 만드는 게 우리 사회 속 ‘괴물’ 하나를 지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은 레디앙(redian.org)에도 실렸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에이전트 옐로우’라는 무기는 60년대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에이전트 오렌지’ 즉 ‘고엽제’를 패러디한 이름입니다. 이 고엽제가 유명한 이유는 제초제가 광범위하게 살포된 지역의 주민들과 2세들이 건강악화와 유전적 돌연변이가 일어난 경우가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며, 이 고엽제에 노출된 우리나라 참전 군인들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