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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사회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 지방대 인문사회계열 학과 폐과 소식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돈 되는 학과, 취업 잘 되는 학과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학과는 통폐합되거나 사라진다. 대구대 사회학과 앞에는 대구가톨릭대, 경남대, 청주대 사회학과가 폐과됐다.
7일, 사회학과 학생들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넘어 장례식을 열었다. 충분히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할 시간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왜 사회학을 공부하는지, 학과 폐지 경험이 각자에게 어떻게 남을지 나누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에는 ‘사회는 존재하는데 사회학은 왜 사라지는가?’라고 썼다. 현상을 분석하고 그다음을 상상한, 적어도 이날은 사회학이 이겼다.
22학번, 폐과 소식을 듣고
3월초, 김민정 학생회장(22학번)은 수업을 들으랴 학생회 업무를 파악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날도 수업이 많았다. 학과장인 박정호 교수가 학생회를 불러 모았다. 세미나실에 모인 학생 6명은 ‘폐과’라는 단어를 들었다. 유혜림 총무부장(22학번)은 뉴스에서 타 대학 폐과 소식을 보고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했던 걸 떠올렸다. 며칠 뒤 교수들은 수업시간을 이용해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폐과 소식을 전했다. 대학본부는 학교가 정한 기준에 미달됐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통보였다. 학생회는 개강총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구대가 사회학과 폐과를 확정한 건 올해 3월이다. 대학본부에 따르면 사회학과는 최근 3년 학과 평가 지표가 좋지 않았다. 재학생 정원 유지율, 중도 탈락률 같은 지표다. 올해 사회학과 신입생은 15명, 정원 31명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2022년, 2023년에는 31명 정원을 다 채웠다. 학생들은 올해 미달 이유를 학제가 개편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수시 모집 이후 진행되는 정시 모집에서 학과가 아닌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뽑으면서 사회대학 내 비인기 학과인 사회학과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학생회는 매주 화요일 회의마다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폐과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았을 신입생이 가장 걱정이었다. 개강총회, MT, 체육대회, 축제 같은 행사 일정이 몰려왔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행사는 무사히 치러야 했다.
5월이 되어서야 학교 측은 사회학과를 포함한 6개 모집중지 학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화가 나 있었고 학교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내놨다. 학생회장 대신 참석한 총무부장 혜림은 공청회장에 앉아 깨달았다. 이미 폐과는 결정됐고, 이후 재학생을 위한 조처를 설명하기 위해 불러 모은 것뿐이었다. 학생들은 찜찜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사회학과 학생회는 대학본부에 한 번 더 자리를 만들어달라 요청했다.
6월, 사회학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가 열렸다. 민정은 재학생들 의견을 받아 정리한 파일을 들고 갔다. 한 4학년 학생은 ‘학과 모집중지 이유가 뭔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이유가 뭔가’라고 적었다. 1학년은 ‘전과 시 이전 과에서 들었던 건 어떻게 되는가’, 3학년은 ‘모집중지 학과 학생들의 학습권, 학생회 운영을 완전히 보장해달라. 휴학‧군 휴학 등으로 불가피하게 늦게 복학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해달라, 학우들의 중도 이탈을 막는 게 본부에도 좋은 일’이라고 남겼다.
이 자리에서도 혜림은 같은 얘기가 반복된다고 느꼈다. 공청회 내내 사진을 찍고 노트북을 펴 타이핑하던 대학본부 직원에게 회의록을 달라고 요청했다. ‘따로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러던 차 학생회장 민정에게 13학번 선배라는 박재범의 연락이 왔다.
13학번, 장례식을 준비하며
‘사회학과 졸업해서 뭐 먹고 살래?’ 졸업하고도 가끔 박재범(13학번)은 대학시절 들었던 그 질문을 떠올렸다. 학생 때 사회적기업을 창업했지만 경영학적 접근을 못 해 말아먹고, 대학원에 입학했으나 석사 논문을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재범은 사회학을 공부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배운 걸 써먹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대학생 때는 학생회장을 했다. 고생스러웠지만 지난 10년간 술자리 안주로 충분히 활용했다. 회장을 맡으라고 떠밀었던 후배 권민조, 김수진(15학번)과는 여전히 한 번씩 얼굴을 본다. 편입생이지만 사회성이 좋아 친했던 고은영(17학번)도 함께 봤다. 재범을 제외한 셋은 대학원생이다. 여전히 사회학을 공부한다.
올 초 사회학과가 폐과된다는 소식을 핑계 삼아 넷이 모였다. 이들은 술잔을 부딪치다가 ‘장례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재범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수진은 늘 그랬듯 걱정되는 부분을 짚었다. ‘장례식이라는 이름과 분위기가 너무 무겁지 않을까, 한 번 더 상상력을 발휘할 순 없을까.’
재범은 재학생들의 공감대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겁지만 밝게 느껴질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졸업생 넷은 회의를 거듭했다. 장례식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순 없었다. 다만 ‘장례식’ 뒤에 괄호를 치고 ‘메모리얼 파티’라는 부제를 붙였다. 재범은 이 행사가 슬프기만 하지 않은, 추모와 위로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은 속전속결이었다. 7월 초 재범은 학생회장 민정에게 연락했다. 사회학과가 연례행사로 여는 사회학제를 기본 틀로 잡았다. 2019년부터 코로나19를 이유로 중단된 상황이었다. 민정을 포함한 학생회 구성원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사이기도 했다. 다음은 교수들을 설득할 차례였다. 어떤 교수는 판을 키워보자고 제안했고, 어떤 교수는 재학생들이 다칠까 봐 걱정했다. 재범은 모든 기대와 우려를 안았다.
행사는 11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 첫날 메인 일정은 강연과 논문 발표로 잡았다. 어쨌든 ‘사회학제’였다. 어설퍼도 재학생들이 직접 논문을 쓰기로 했다. 대학원생 세 명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장례식 빈소를 차리되 재학생이 즐길 수 있는 체험 부스를 같이 배치하기로 했다. 둘째 날은 졸업생과 재학생이 교류할 수 있는 홈커밍데이로 꾸렸다. 재범은 구성, 장소, 예산을 잡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행사기획이야 지난 10년간 해온 일이었다.
중요한 건 펀딩이었다. 행사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진행하고 재학생들에게 돈을 남겨줘야 했다. 내년부터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학회비가 끊긴다는 의미다. 학생회 운영이 축소되면 학과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창구가 줄어들 게 분명했다. 대학본부는 학생들이 피해 볼 일이 없을 거라 했지만 장학금이나 학과 운영비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었다. 재범은 광주 역사기행,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등 선배들과 자신이 경험한 것을 후배들이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했다.
10월 초, 재범은 한국사회학회에 메일을 보내 행사를 알렸다. 계획한 홍보 방법 중 하나였다. 메일을 쓰며 재범은 원망스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사회학과가 하나둘 사라지는데 학회는 왜 조용한지 답답했다. 한편으론 기대했다. 사회학과 폐지 자체는 새롭지 않으나 ‘장례식’이라는 행사는 반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SNS와 언론을 통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재범의 기대보다 훨씬 큰 반응이 돌아왔다. 온라인으로 만나 행사를 준비하던 학생회와 졸업생의 어깨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행사를 2주가량 앞둔 10월 24일 저녁 7시, 사회과학대학 세미나실에서 오프라인 회의가 열렸다. 준비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이는 건 처음이었다. 재범은 경북 구미의 직장에서 곧바로 오느라 칼각 잡힌 양복 차림이었다. 서울에서 온 민조, 수진, 은영은 몸보다 캐리어가 먼저 회의실에 들어왔다. 수업을 마친 학생회 구성원도 속속 도착했다. 재범은 며칠간 쏟아진 언론 기사를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다 숨을 골랐다. 약간의 흥분과 우려가 섞인 목소리로 재범이 회의를 주재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학회 장소를 옮기면 어떨지, 추모화환을 받아야 하는지, 장례식 컨셉에 맞게 음식은 육개장 컵라면으로 하면 어떨지 논의할 게 쌓여 있었다. 졸업생 민조, 수진, 은영은 홍보 대비 행사가 부실할까 걱정했다. 재학생 민정, 혜림은 혹시라도 재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했다. 재범은 모든 걱정을 받아 적었다.
24학번, 남은 대학 생활을 상상하며
11월 7일 오후 12시 행사 시작 2시간 전, 대구대 사회학과 장례식 빈소에 추모화환이 하나둘 도착했다. 빈소 제단에는 사회과학 서적들이 펼쳐졌다. 서강대 사회학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대 사회학과는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라고 적힌 추모화환을 보냈다. ‘무겁지만 밝게’라는 행사 취지에 맞게 축하화환도 왔다. 화환은 사회학제가 열리는 강당으로 보내졌다.
행사 시작 1시간 전,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림이 된다’고 생각한 방송사도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언론보도와 SNS에서 사람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했다. 재학생들은 학생회 선배들, 졸업한 선배들과 만나는 자리를 기대하고 참석했다. 얼른 부스행사가 시작돼 달고나를 만들고 네컷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부인들이 떠나고 해가 진 뒤, 천막에 조명이 켜진 다음이 이들의 진짜 축제였다.
종종거리던 김미수(24학번)는 잠시 멈춰서 거꾸로 걸려 있는 명찰목걸이를 다시 걸었다. 명찰에는 ‘학생회’라고 적혀 있다. 학교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행사를 함께 준비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경산의 대구대에 온 건 순전히 사회학과에 오기 위해서였다.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수업은 재밌었다. 당장 진로를 정하기보단 재밌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대학 캠퍼스는 예쁘고 학식은 맛났다. 입학하자마자 만난 학생회 선배들도 친절했다.
미수는 이번 1학기에 전공과목 3개를 들었다. 박정호 교수의 ‘사회학으로의 초대’에선 일상 속 장면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걸 배웠다. MZ세대 사이에서 밈이 왜 유행하는지 토론할 수 있다니 너무 흥미로웠다. 이희영 교수의 ‘일상생활의 사회학’에선 차별과 소수자에 대해 배웠다. 박치현 교수의 ‘사회과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도 비슷했다. 1학기가 끝나자 미수는 사회학의 기초를 넓게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모헌화를 할 시간, 미수는 순간 폐과 소식을 들었던 3월이 아득했다. 박정호 교수가 수업 중간 운을 뗐다. 사회학과 재학생뿐 아니라 사회학과로 전과를 생각하는 학생, 자율전공학부에서 사회학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학생 모두 모이라는 전달이었다. 교수의 입에선 ‘폐과’, ‘모집중지’, ‘더 이상 신입생이 안 들어온다’는 말이 이어졌다. 6년 동안은 학과가 유지된다는 이야기에 남자 동기들이 웅성거렸다. ‘군대 2년 갔다 와서 바로 졸업하라는 거냐’ 불만이 나왔다.
미수는 전과나 편입을 잠깐 고민했다. 미수가 대학생활에 기대한 건 사회학 수업만이 아니었다. 선후배 간의 연대, MT, 체육대회도 대학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선 학습권을 보장해주고, 지도교수 상담도 계속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남았다. 사회학과에 남을 거면 교직이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학생회 선배들은 자꾸 미안해했다. 너희가 졸업할 때까진 책임지겠다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원할 테니 언제든 말만 하라고 했다. 미수는 그런 선배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
오후 2시 30분, 개회식이 시작됐다. 17학번 고은영이 만든 영상이 상영됐다. 학교에 가는 버스부터 대학 정문, 사회대까지 걸어가는 길을 비추더니 졸업생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차례로 나왔다.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다. 사회를 맡은 15학번 권민조는 목이 메여 진행을 멈췄다. 강단 위에 올라선 준비위원회 구성원들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박정호 대구대 사회학과 학과장은 개회사에서 힘주어 강조했다. “이번 추모행사의 취지는 단순히 지방대학의 위기 혹은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위기를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 행사의 주제는 학과의 모집 중지 상황을 파티로 기념하고 승화시키는 유쾌한 사회학적 상상력입니다”
이어 덧붙였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학교 재정을 안정화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육의 성과를 시장에서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회학의 진정한 교육적 효과는 시장 밖에서 상품이 아닌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반드시 돌아옵니다. 혹자는 인문학을 시대를 못 따라가는 학문, 뒤처진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인문학은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때로 시대를 거스르고 역행하는 안목까지 지닌 학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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