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역사의 한복판에서” 대구지하철·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자리에

이태원 참사 2주기 대구시민추모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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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했다.

29일 오후 6시 34분,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대구시민추모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민주노총 대구본부, 대구4.16연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경이주연대회의 공동 주최로 열렸으며 100여 명의 시민이 주최 측이 나눠 준 보라색 꽃을 손에 들고 참석했다.

추모대회가 시작된 오후 6시 34분은 2년 전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에 최초로 신고가 접수된 시간이다. 참가자들은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애도, 추모와 더불어 진상규명, 재발방지, 안전한 사회를 구호로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서서 대회를 지켜봤다.

▲29일 오후 6시 34분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대구시민추모대회’가 열렸다.

추모대회 참석을 위해 대구를 방문한 송기춘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조위원장(전북대 법전원 교수)은 “참사 발생 2년 만인 최근에야 특조위가 시작됐다. 위원회는 진상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 국회에서 ‘진실에는 정파가 없고 진상규명에는 여야가 없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양심에 기초해 일한다면 정책의 충돌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순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어머니)은 올 초 출범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을 소개했다. 최 부서장은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국가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는지’에 집중해 활동했으면 좋겠다”며 “참사 희생자들이 연대체를 만들고 재난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에서 시작한다는데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인 황원욱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도 유가족들에게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있어달라고 당부했다. 황 위원은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진상규명은 안 될 것이고 책임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며 추모사업은 굉장히 어렵게 진행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오늘 멀리서 온 유가족분들에게 당부드린다. 가족이 죽었지만 우린 죄인이 되어 있다. 언론 앞에 나서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숨다 보면 우울증이 생긴다. 그러니 함께 있어 달라. 싸움은 길어지고 결국 유가족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

▲추모대회 마지막 순서로 추모대회 참석자들이 달서구 노란공방에서 두 달에 걸쳐 만든 보라색 꽃을 헌화하는 단체행동을 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안재민(계명대 사회학과 3학년) 씨는 “이태원 참사 당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게 생각난다. 얼마 뒤 뉴스에서 보상금이 언급됐는데, 한 손님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참사 이후 혐오의 문제로 번지는 상황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며 “오늘 추모대회에 참석해서 참사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발언에서 연대의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운영된 이태원참사 2주기 대구시민추모분향소에는 많은 시민이 보라색 꽃을 헌화하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한편 이태원참사 2주기 대구시민추모분향소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추모대회가 끝난 오후 8시까지 운영됐다. 추모대회가 진행 중인 7시경 자녀들과 함께 추모분향소를 찾은 박수진(40대, 달서구) 씨는 “2년 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그날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들 그럴 것이다. 대통령과 책임자들은 왜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묵혀 두고 방치하는지 답답하다”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잘 모르지만 오늘처럼 함께 보고 느끼며 차곡차곡 쌓이면 차차 이해할 것이다. 계속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분향소를 방문한 곽근영(화원중 2학년) 씨도 “시내에 옷을 사러 왔다가 추모분향소가 보였다. 당시 집에 있다가 뉴스로 참사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경찰이나 책임있는 사람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데 마음이 아팠다”며 “오늘 분향소에 와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니 나이가 어린 언니, 오빠가 많아 다시 또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이날 대구지역 진보정당들도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추모하는 논평을 냈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2주기를 앞두고 참사 책임자들의 1심 소식이 들려왔다. 용산구청장, 서울경찰청장, 서울경찰청 책임자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소환조사조차 없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지 오래”라며 “700일 만에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출범했다. 유족들이 외롭게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진보당 대구시당도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출범한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난항을 겪고 있다. 특조위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회와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