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짜리 통합 박람회, FIX2024가 놓친 퍼즐 한 조각

엑스코 동관, 가장 큰 규모로 마련된 ‘모빌리티관’
대기업은 홍보, 지역 중소기업은 교류와 영업 목적
채용박람회, 트렌드 분석 등 시너지 효과 기대
엑스코 서관에는 로봇, ABB, 스타트업 박람회
지역 고등학생, 스타트업부터 매년 참가한 중소기업까지
4개 행사 1개로 합친 시너지 효과는 “글쎄”

15:52
Voiced by Amazon Polly

“로봇이 빨간색을 따라가도록 설정돼 있어서 빨간 공을 바닥에 뒀는데, 맨 앞의 아이가 입은 빨간색 티셔츠를 보고 따라가네요. 오늘 시연한 로봇 외에도 다양한 로봇이 전시돼 있으니 천천히 구경하고 가세요. 오늘 연구소에서 학생들도 여럿 함께 왔으니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24일 목요일 오전 11시, 세계적인 로봇공학연구소 로멜라 연구소의 데니스 홍 교수가 직접 아르테미스 등 여러 로봇을 설명했다. 로봇은 부스 안을 두발로 걸어 다니고 공을 차기도 했다. 아르테미스는 올해 국제로봇대회 ‘로보컵’ 휴머노이드 어덜트 부문에서 전승 우승을 기록한 이족 보행로봇으로, 국내에선 이번 FIX 2024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구소 부스를 둘러싼 40여 명의 관람객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9살 아이와 함께 참석한 이성연 씨(50대, 대구 북구)는 “아이 교육 차원에서 현장학습으로 왔다. 개인적으로도 자동차, 기계에 관심이 많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신기술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2024 미래혁신기술 박람회’(FIX 2024)가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엑스코에서 진행된다. 대구시가 정기적으로 열어온 대한민국 미래 모빌리티 엑스포(DIFA), 대한민국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엑스포, 대구국제로봇산업전, 스타트업아레나를 통합한 행사다. 4일간 열리는 행사에 대구시가 책정한 예산은 약 40억 2,000만 원이다. 대구시는 데니스 홍 교수와 같은 국내외 VIP 연사 등을 초청하는 예산만 9,000만 원을 책정했다. 홍 교수도 23일 컨퍼런스 연사로 참여했다.

▲24일 오전, 로멜라 연구소의 데니스 홍 교수가 직접 로봇을 시연하는 모습

엑스코 동관, 가장 큰 규모로 마련된 ‘모빌리티관’
대기업은 홍보, 지역 중소기업은 교류와 영업 목적
채용박람회, 트렌드 분석 등 시너지 효과 기대

메인은 451개사가 부스 2,000여 개를 마련해 참여한 박람회다. 엑스코 동관에 마련된 모빌리티관에는 테슬라,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삼성SDI, GM 등 대기업과 지역의 자율주행기업이 참가했다. 이 외에도 모터‧배터리‧충전기 등 자동차 부품 기업과 투자 유치 상담을 위한 지자체도 부스로 참가했다.

전시관 바깥쪽에는 마련된 대기업 부스들은 다양한 볼거리로 일반인 관람객의 발길을 잡았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현대모비스의 e코너시스템이 장착된 실증차 모비온, 도심항공교통 특별관의 실물 크기 UAM 기체를 활용한 시뮬레이터 등 쉽게 볼 수 없는 대형 전시물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멈춰서 호응을 보였다.

대구에 본사를 둔 2차전지 양극재 소재 기업 엘앤에프도 부스로 참가했다. 양극재 제품을 15만 배로 확대시킨 전시물을 부스 중앙에 배치하고 벽면을 이용해 앞으로 생산할 차세대 양극재 제품을 소개했다. 박원영 ESG홍보팀장은 “우리 메인 고객은 국내 배터리 3사인데, 그 중 이번에 참가한 건 삼성SDI뿐이다. 영업이나 교류보다는 홍보에 중점을 두고 부스를 준비했다”며 “내일 행사 일부로 채용박람회가 열리는데, 그중 계명대, 영남대 학생들을 따로 섭외해서 투어와 안내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4일 오전 9시 30분 행사를 준비 중인 모빌리티관 부스들. 전시장 바깥쪽에는 대기업, 안쪽에는 중소기업이 주로 배치됐다.

전시관 안쪽에는 주로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자리했다. 경북 경주에 본사를 둔 자동차 부품사 대승(주)도 그 중 하나다. 김무겸 매니저는 “주로 우리 회사와 연이 있거나 모듈 부품에 관심 있는 업체에서 상담하러 온다. 옆 부스와 교류하고 참가 직원들이 번갈아 행사장을 둘러보며 업계 트렌드를 공부하기도 한다”며 “어제는 윤활제 만드는 업체가 부스들에 명함을 돌리고 갔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좋은 기회다. 지방권은 알음알음 업체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규 업체를 알게 되고, 새로 견적을 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에 대해 묻자 김 매니저는 “부스 크기와 종류별로 다르지만 부스 하나당 400만 원 정도 참가 비용이 든다. 우리는 계열사 포함 부스 3개로 참여하는데 홍보물 제작, 물품 이동비 등 부대비용까지 따지면 부담이 안 되는 건 아니”라며 “입구부터 전시장 바깥쪽으로 빨간색 카펫이 깔려 있다. 아무래도 메인은 대기업 중심으로 배치된 바깥쪽이다 보니 안쪽 부스들로는 일반인 관람객이 잘 안 온다”고 답했다.

경북 영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아이이는 작년 모빌리티 엑스포에서 성과를 보고 올해도 부스로 참가한 경우다. 강정헌 책임연구원은 “작년에 신규 고객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도 성과가 있다. 어제 해외 바이어가 상담 후 메일로 세부적인 스펙을 협의하기로 했다”며 “4~5년 전만 해도 이런 행사에 내연기관차 엔진 분해도가 보였는데, 지금은 세대가 바뀌어서 전기차 위주의 전시, 부스가 많다. 지역기업 입장에선 ‘이렇게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변화의 계기, 미래차 전환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엑스코 서관에는 로봇, ABB, 스타트업 박람회
지역 고등학생, 스타트업부터 매년 참가한 중소기업까지
4개 행사 1개로 합친 시너지 효과는 “글쎄”

엑스코 서관에선 대한민국 ICT융합엑스포, 대구국제로봇산업전, 스타트업아레나가 구역을 나눠 배치됐다. 로봇, VR 등 체험 행사가 곳곳에 마련돼 일반인 관람객 비중이 높아 보였다. 같은 점퍼를 입은 대학생과 고등학생 단체 관람객도 군데군데 보였다.

대구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학생들은 ICT융합엑스포의 한 구역에 부스로 참가했다. AI로 홍보물을 생성하는 서비스 ‘팔레트’를 개발해 학내 경연에서 1등을 한 이성은(대구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 2학년) 씨는 “작년에도 엑스포에 프로그램을 출품했는데 올해는 특히 소회가 남다르다. 작년보다 개발, PT 모두 실력이 늘었다”며 “학생 신분으로 지자체, IT기업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귀하다. 지역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고, 직접 참가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매년 대구국제로봇산업전에 부스로 참가해 온 에이치알티시스템은 ‘의리로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대구 북구에 본사를 둔 에이치알티시스템은 협동로봇과 3D프린팅 설비를 판매한다. 김지윤 마케팅팀 주임은 “매년 대구국제로봇산업전, 대구국제자동화기기전에 참가했는데 영업이나 계약 부분에 크게 기대한다기 보단 기업을 홍보한다는 생각으로 나온다”며 “전국의 여러 박람회에 참여하지만 대구는 지역 분위기 때문인지, 영업이 쉽진 않다. 수도권과 달리 아직 기계 자체를 신기해 하는 정도이고, 실제 현장에 도입하는 것에는 보수적이라고 느낀다”고 했다.

반면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들은 행사 효과에 기대가 크다. 2022년에 창업한 뷰전은 삼성전자의 사외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출신 기업으로, 대구 삼성창조캠퍼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김건우 뷰전 전무이사는 “부스 참가를 통해 적극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고, 어제부터 실제 성과도 내고 있다. 아무래도 부스 규모가 (큰 기업과 비교해) 작지만 전반적으로 행사에 만족하고,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게자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인 관람객도 이날 행사장을 찾았다.

기존 4개 행사 별도로 운영하던 걸 1개의 행사로 합쳐서 진행한 것에 시너지 효과가 느껴지는지 묻는 말에 대해선 기업 관계자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박원영 엘앤에프 ESG홍보팀장은 “작년 열린 모빌리티 엑스포와 비교해서 그다지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동·서관 별도로 운영 중인 데다 직접적으로 연계해 이뤄지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 투자유치 홍보를 위해 부스로 참가한 강종수 밀양시 투자유치과 주무관도 동·서관으로 나누어진 행사장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강 주무관은 “일반인 관람객보다 행사장 부스들에 관내 지원 사업 등 산단 투자 유치를 홍보하고 있다. 아무래도 공간이 동·서관으로 구분돼 있다 보니 옆 행사장 부스들과 교류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지윤 에이치알티시스템 마케팅팀 주임은 “작년에 부스로 참가한 대구국제로봇산업전에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올해는 확실히 오가는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주말에 가까운 내일과 마지막 날인 토요일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