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10명이 써내려간 ‘고향’, ‘대구’,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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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은 ‘저출생’, ‘인구소멸’, ‘고령화’와 같은 심화되는 한국의 사회 문제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농촌 지역으로 갈수록 한국이 이주민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는 걸 체감하기 쉬워진다. 그런데 정작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 그리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목소리를 듣기는 어려웠던 이주여성,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대구를 주제로 쓴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19일 오후 2시, 대구 동네책방00협동조합에서 이주여성의 작가 도전기 지구본 프로젝트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10명에 달하는 필자, 그리고 이주민과 가족이 참석했다. 이주민 작가 10명은 이달 ‘뿌리 한 줄기 잎사귀 한 장-대구에 뿌리내린 이주여성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대구시민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가들과 함께 사단법인 이주와 가치가 발행했다.

▲19일 오후 2시, 대구 동네책방00협동조합에서 이주여성의 작가 도전기 지구본 프로젝트 북콘서트가 열렸다.
▲참여 작가들이 그린 그림

책은 크게 4개 파트로 나뉘었다. 작가들이 말하는 ‘고향’, 그리운 사람에게 쓴 작가들의 ‘편지’, ‘차별’, 그리고 ‘대구’다. 작가들은 중국 출신 1명을 빼면 모두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로, ‘고향’ 파트에서는 코코넛과 바나나 나무가 심긴 풍경과 고향 향기, 가족에 대한 향수가 엿보인다.

고향에서 지낸 만큼 한국에서 보낸 세월도 깊어가며, 이들은 한국, 그리고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그들은 ‘어느 나라가 더 좋으냐’와 같은 다소 난감한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한다.

‘차별’ 파트에서는 혼인신고를 하고 지금도 같이 살고 있는데도 동사무소로부터 1인 가족 대상 조사 통지문을 지속해서 받는다던가, 초면에 반말을 한다든가, 어머니가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한국에서 낳은 자녀도 미등록이 되는 제도적 차별에 대해서도 말한다.

‘대구’ 파트에서는 이주여성들이 다닌 팔공산, 서문시장 등 명소와 그 인상, 관계가 쌓이며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이외에 ‘편지’ 파트에서는 그리운 사람을 향한 이주민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전 남편에게 쓴 편지도 있다.

북콘서트에서 홍매 작가는 “한국에서 20년을 살았다. 중국에서 산 시간과 비슷하다. 그런데 ‘중국이 좋으냐, 한국이 좋으냐’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질문과 비슷하다”라며 “고향 중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긴 하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남편보다 더 많이 관광지를 가봤다. 혈연은 없어도 친구들도 많다. 이곳도 고향”이라고 말했다.

안나(필명) 작가는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필명을 지었다. 그는 미등록 이주여성이다. 그래서 작가의 자녀가 받는 차별에 더욱 마음이 쓰인다. 안나 작가는 “드라마에서 본 그 배역이 얼마나 예쁜지.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 그렇게 필명을 지었다”며 “제일 힘든 건 아이도 미등록인 점이다. 잘못이 있다면 미등록인 내게 있는데 아이까지 미등록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미등록 아동을 만들어 낸 건 대한민국의 법인데, 여러 지원에서도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북콘서트 진행을 맡은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이주여성이 스스로 이야기를 표현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만들려고 했는데 시작하고 보니 작가들은 정작 글로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다”며 “이 책을 통해 대구에서 뿌리내리고 잎사귀를 틔우며 살아가는 이주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