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왜행성”처럼 공전하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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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행성’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건 간단한 일이다. 이 영화가 구현하는 이미지는 겉보기엔 지극히 사실주의적이지만, 실제로는 상징과 추상 표현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일상 속 스쳐 지나버리면 기억할 틈도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실제로는 마치 주인공의 렌즈에 투영되고 필터링 거친 것으로 보이는 풍경이란 점을 초반에는 포착하기 어렵다. 주인공의 심리적인 흐름을 이미지가 표상한다는 실체를 투시하지 못한다면, 그의 행위와 과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저 허우적거리다 종막에 이를 수도 있다.

그만큼 ‘왜행성’의 궤적을 쫓기란 길을 한 번 잘못 들어가 버리면 종잡을 수 없는, 그리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 될 테다. 현대 천문학에서 왜행성 관측이 여전히 만만하지 않은 난제인 것처럼. 영화는 제목뿐만 아니라 실제 전개 과정 또한 정확히 왜소행성의 특징을 고스란히 닮았다. 어디까지 염두에 두고 한 작업일까 궁금하다면, 영화를 직접 확인해보자.

이름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궤적

주인공 ‘태양’은 검정고시 학원에서 시험을 앞두고 있다. 반듯한 모범생으로 외관상 보이는 그는 학원 교사들의 우호적 기류와 호의에 둘러싸여 있다. 그가 다른 또래들처럼 대놓고 일탈하지 않고 착실히 공부하는 데다, 집안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아빠는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거의 인연을 끊은 상태라 봐도 좋을 정도다. 태양의 형 역시 집 밖에서 생활한다. 그는 자신들을 버리고 나간 아빠에 대해선 별 감정이 없지만, 형에 대해선 아직 정을 간직한 상태다.

태양은 병약한 엄마와 둘이 살아간다. 엄마는 그의 보살핌이 없으면 곤란하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육신의 고통보다 정신적 문제가 더 심각해 보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태양의 아빠가 가정을 방관하고 외면했기 때문일 테다. 엄마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후유증을 앓으며 자식들 또한 남편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의심병에 빠져 있다. 아마 태양의 형 역시 엄마의 그런 히스테리에 지쳐 집을 떠났을 테다. 그렇게 둘 남은 집에서 태양은 엄마에게 아빠의 책임, 엄마 노릇, 아들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중이다. 그는 조용히 그 무게를 감당한다. ‘효자’란 낡은 표현이 태양에겐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오늘도 태양은 함께 놀자는 또래들의 제안을 사양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엄마의 운동화를 산다. 집에서 종일 누워 있지만 말고 함께 산책이라도 다니자는 바람에서다. 엄마 역시 효자 아들의 선물을 반기지만, 가족관계를 고려한 태양의 한 마디에 그만 역린이 꿈틀해 버린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엄마의 히스테리는 겉잡을 도리 없이 증폭되고, 질려버린 태양은 집 밖으로 나간다. 엄마는 한참 누워 있다 문득 일어나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터질 것 같은 속내를 감춘 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태양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목격한다. 당황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윽고 짐을 싼 뒤 바다를 보러 떠난다. 과연 그는 무엇을 보았길래, 그리고 어떤 결심을 내렸기에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걸까.

실제 왜행성의 정체성을 그대로 닮은 주인공의 숙명

영화 ‘왜행성’을 소화하기 위해선 제목이 된 ‘왜행성(왜소행성)’의 개념에 대해 우선 이해해야만 한다. 과거에 태양계를 구성하는 개념은 태양이라는 항성을 둘러싼 9개의 행성과 그 위성들이었다. 여기에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 정도가 추가된다. 하지만 이제 그 인식은 낡은 과거의 개념이 된 지 오래다. 태양계의 범위는 훨씬 더 광활해졌고, 새로운 구성원이 대폭 추가된 상태다. 소행성대 역시 해왕성 너머 ‘카이퍼 벨트’를 추가로 특정하고, 기존 범위에서 한창 바깥에 가수 윤하의 노래로 더 유명한 ‘오르트 구름’ 지대가 더해졌다. 학창시절 교과서의 기억과 퍽 달라진 셈이다.

그중에도 가장 큰 변화는 명왕성의 퇴출이다.  20세기 후반 대논쟁을 통해 우리가 알던 9번째 행성,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에서 퇴출당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행성’은 8개로 줄었다. 실체는 확인되지 않지만, 훨씬 먼 거리에서 9번째 행성의 존재를 찾는 중이다. 그렇다면 명왕성의 지위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소행성과 행성 사이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다. 추락한 명왕성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명왕성과 몇 개의 유사한 천체가 그 범주에 포함된다. 일단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구체의 형상을 취해야 한다. 혼자 떠도는 게 아니라 주변의 더 작은 천체에 중력 등 영향을 끼쳐야 한다. 참 애매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왜행성을 왜 굳이 제목으로 지은 걸까? 주인공이 바로 전형적인 왜행성의 활동 양태를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태양’이다. 아무리 봐도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가 아닌데 말이다. 태양계의 유일한 ‘항성’인 태양은 스스로 발산하는 빛과 열로 구성원 전체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영화 주인공은 그런 존재와 한참 멀다. 하지만 검정고시 학원 교사들의 주목을 이끌 만큼의 일정한 중력장은 갖춘 것 같다. 바로 그런 지점이 또래 친구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원심력의 근원일 테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의 미약한 중력으로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결국 자신을 의지해야만 하는 엄마를 돌봐왔다. 고작해야 10대의 끝자락에서 가장이자 자식 노릇을 동시에 해낸다. 하지만 왜행성은 존재감이 너무나 희박하기에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 운명을 필연적으로 지닌다. 예민하거나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만 간신히 보일 따름이다.

유행과 대세를 추종하지 않고 고고히 작은 빛을 발하는 영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왜행성’은 딱딱 합이 맞아떨어지는 논리적 개연성이나 사회적 주제를 풀어내는 전형성과는 동떨어진 궤도로 자체 회전하는 영화다. 주인공 태양의 내심을 우리는 그저 추정할 뿐, 그의 입이나 주변 인물들의 설명으로 안내를 받을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은유와 추정으로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그를 둘러싼 상황의 급변을 어렴풋하게 따라갈 뿐이다. ‘왜행성’의 패턴과 영화의 설정 및 전개는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왜행성’의 기본 개념에 대해 정보를 갖추고 안 갖추고는 본 작품의 해석을 위한 결정적 추로 기능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난해하지만 어떤 생채기 같은 감흥을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아득하게 남길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겐 불친절한 서사와 느슨한 호흡 탓에 졸음 또는 벗어나고픈 불유쾌한 중력으로 받아들여질 테다. 혹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고자 했지만, 감독 역량의 한계 때문에 그저 겉 분위기만 남긴 범작으로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첫 데뷔작에서 이 정도로 뚝심 있게, 영화제 취향이나 요즘 경향 고려 없이 우직하게 자신이 보여주고자 한 원형질을 구현하는 도전은 무척 진귀한 것이라 오히려 희미하게 빛난다.

급기야는 태양이 엄마를 위해 운동화를 고를 때 진열된 채 빙빙 돌아가는 신발의 궤적까지 마치 왜행성의 회전처럼 보일 정도다. 학원 교사들의 과분한 호의를 사절하는 주인공의 태도 역시 비록 왜소하지만 타 천체에 흡수되지 않겠다는 작은 별의 의지로 느껴진다. 행성 지위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렇다고 위성으로 전락하는 걸 거부하는 명왕성의 존재감처럼 말이다. 그만큼 제목을 고스란히 따르는 총체적인 이미지 조성 의도가 결말로 갈수록 확연히 두드러진다.

‘왜행성’이란 작품은 그야말로 천체물리학의 ‘왜행성’ 설정을 온몸으로 구현한 작업이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일단 직접 체험하길 권할 수밖에 없다. 3차원 이미지를 2차원 텍스트로 온전히 풀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탓이다.

대구 독립영화 차세대 창작자의 선봉에 서다

‘대구 독립영화’라 하지만 그 안에는 몇 갈래 결이 존재한다. 영화의 꿈을 품고 유학을 떠난 이들과 지역에서 꾸준히 동료들을 모아 악전고투하며 활동해온 이들이 있다. 전자 중에는 지역으로 돌아오거나 후자와 협력관계를 형성하며 다시 귀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후자의 경우 오랫동안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면서도 지역사회에 그 존재감을 알리지 못했던 것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오랫동안 숙성해온 역량을 개화하며 작은 시민권을 쌓아나가는 상황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축적한 실적과 역량을 기반으로 삼아 과거와 확연히 구분되는 ‘대구영화학교’ 과정이 탄생한다. 2019년 1기부터 2024년 현재 수료작품 완성을 앞둔 6기까지 매년 지역영화인 12명이 새롭게 추가돼 어느새 72명을 배출했다. 이들은 과거 세대에 비하면 확연히 달라진 시스템 아래 여러 수혜를 누릴 수 있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출한’ 선배 그룹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에 처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맨땅에 헤딩하면서도 혁혁한 수상실적을 남겼는데, 갖출 것 갖추고도 왜 성과가 없냐는, 마치 투기장에 내몰린 신세이기도 한 것이다.

사정을 아는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일이긴 하다. ‘영화학교’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여전히 지역의 영화교육 시스템은 4년제 정규 영화학과에 비하면 1학기 정도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축적된 자원과 역량을 지닌 전국 50여 개 대학 영화과와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때로는 ‘무에서 유를 창출한’ 선배 세대가 너무 열심히 했나 원망스러울 정도다.

그런 가운데 영화학교 1·2기는 그 질문에 답하듯 일정한 실적과 주목을 획득하는 중이다. 1기 출신 박재현 감독은 <나랑 아니면>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 감독상을, 역시 1기 박찬우 감독은 <국가유공자>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 심사위원상 및 합천수려한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2기에선 근래 단편영화 중 가장 많이 상영되고 호명되는 작품 중 하나일 <고백할거야>의 김선빈 감독, ‘대구독립영화’하면 떠오르는 사실주의 경향을 계승하는 장주선 감독의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일정하게 1·2기의 경우 ‘증명’의 최소치에는 턱걸이한 셈이다. 그렇다면 바통은 후속 기수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왜행성’의 이호철 감독이 바로 딱 맞춰 등장했다. 3기 촬영전공의 감독은 선배 세대의 패턴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개 영화학교 출신 창작자들은 수료 작품이 아니라 차기작, 즉 인큐베이터를 벗어나 만든 첫 작업에서 본인의 개성과 영화적 완성도를 온전하게 평가받아 주목도를 높여왔다. 이호철 감독 역시 그런 궤도를 뒤따르는 중이다. 이는 조급증을 버리고 지역에서 신진 창작세대에게 일단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다면, 그에 걸맞은 광맥이 여전히 숨어 있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동기들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선배들의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비전을 꿈꿀 이들에게 마음껏 창작할 들판을 제공하는 건 결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작품정보>

왜행성
The Dwarf Planet
2023 | 한국 | 드라마 | 31분 47초
감독/각본/편집 이호철
출연 정다민, 안민영, 김하늘, 정민지, 김준석, 한희은
PD 이지영
촬영/조명 전상진(컬러플러스)
미술 이호철
동시녹음 송현직
사운드 최지영
조감독 변석호

2024 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2024 25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경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