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로에 터잡은 기술자들, 그들을 향한 눅진한 시선

문찬미 작가 '기술되지 않은 시간' 모루 전시

17:35
Voiced by Amazon Polly

이미지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 생성되는 수많은 콘텐츠는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좀 더 짧게, 좀 더 자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는 엄지손가락 뒤로 사라지는 이미지는 자극적이나 의미는 없다. 스쳐가는 이미지는 그것이 아무리 인상적이더라도, 껍데기뿐인 경우가 많다.

예술로서 사진은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피사체를 비춘 반사광을 화려하게 포착하는 기술, 또는 일상적 생활 공간을 넘어 극한의 상황까지 들어가는 발품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어쩌면 이미 그 또한 난무하는 콘텐츠 속에서 진부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정말 어려운 것은, 피사체의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꾸준한 관계 맺음,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에서 피사체와 피사체가 드러내는 순간의 의미를 포착하는 다정한 시선이다.

문찬미 작가 기획 전시 ‘기술되지 않은 시간’에는 작가가 포착한 다정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북성로 공구 골목에 터 잡은 기술자들이다. 다양한 기술자와 그들의 작업공간이 묶이면서, 작품을 통해 북성로의 오늘이 재구성된다.

‘경문보링’, ‘옥천정밀기어’, ‘선일포금’과 같은 기술자들의 작업공간이 먼저 눈길을 끈다. 그 공간은 광산의 그것과 같은 근대적 이미지를 전달한다. 곧이어 관객의 시선은 광산을 딛고 서 있는 기술자로 향한다. 기술자의 몸짓에서는 고집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여기까지는 ‘기술자’에 대한 관객의 통상적 상상회로를 따른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에 시선이 이르는 순간, 관객은 마치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에 입 댄 듯 의외의 감정을 느낀다. ‘차갑고 날카로운 쇠’와 같은 모습, 혹은 ‘용광로 같은 열정과 땀방울’을 기대했을 것이나, 정작 그들은 고향 집 어른이 보낼법한 따뜻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의외의 모습’은, 바로 작가가 기술자들과 켜켜이 쌓은 시간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처음 북성로에 이끌려 그곳에 터를 잡은 때는 2016년. ‘공구 골목’, ‘우동 불고기’와 같은 단상만 스쳐 갔던 이곳을 작가는 ‘여러 시간의 층위가 교차하는 곳’으로 느꼈다. 당장 사진으로 담는다고 해도 그럴듯한 작품이 나올 듯했다.

북성로는 실제로 공구로 대표되는 과거의 생활문화양식과 아파트로 표상되는 현대적 양식이 대결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작가는 곧바로 카메라를 들지는 않았다. 그보다 북성로를 일터로 삼고, 북성로의 문화와 예술, 기술을 기록하고 보존하겠다는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HOOLA)에 속해, 기술자들과 관계 형성을 시작했다.

▲문찬미 작가가 전시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제게 다가온 북성로는 화려하고 강하고 거친 이미지였어요. 튀는 불꽃, 작업하는 기술,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만한 장면을 걸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북성로에 당장 일터를 잡게 됐고, 일을 하면서도 작품 고민을 거듭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기술자들, 사장님들 입장에서도 저는 외부인이었는데, 관계가 점차 쌓이면서 제게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거든요.”

그 때문인지, 작가의 사진에는 관객이 아닌 작가를 향한 사물도 등장한다. 작가를 향해 놓인 박카스 한 병. 종이컵에 담긴 작가 몫의 음료. 이러한 사물은 사진 속과 바깥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가 된다. 작가는 내부인이자 외부인이 된다. 그러면서 관객을 사진 속으로 초대한다.

사진 속에서 관객은 먼저 근대의 향취를 느낀다. 일상에서 흔히 보기는 어려운 기계-공구로 가득 찬 이미지, 정형화되지 않은 작업공간 탓이다. 들어선 배경에 익숙해지면 이제 그 배경에 서 있는 사람에 눈길이 간다. 그 사람은 대대로 북성로 공구 골목을 이어온 기술자다. 기술자들도 예의 그 정형화된 표정을 버리고, 반가운 친구를 향한 듯한 미소를 보낸다. 바로 이것이 켜켜이 쌓은 관계 속에서 건져낸, 혹은 발견한 그들의 숨겨진 모습이다.

‘기술되지 않은 시간_선일포금’에 이르러서는 사뭇 다른 느낌을 얻는다. 그 공간에는 사람이 없다. 미소를 짓거나, 음료를 건네는 사람이 부재한 그 공간에는 예의 그 따스함이 사라졌다. 범람하는 아파트에 밀려, 혹은 깁고 땜질해 생명을 이어가는 ‘기술’보다는 빠르게 쓰고 버리는 생활양식에 밀려 점차 쇠락할 북성로라는 공간의 미래가 연상되는 것인지,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다만 창틀에서 가늘게 넘어오는 빛줄기는 미약한 온기를 전하고 있어, 비관적이거나 비극적인 느낌과는 거리를 둔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이를 배경으로 한 사람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 사람에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공간과 기술의 특징도 분위기처럼 사람에게서 흘러나왔어요. 사람에게서 철을 녹이는 용광로 같은 얼굴도, 작업장의 포슬포슬한 흙과 같은 부드러운 얼굴도 같이 나왔고, 그 표정이 공간과 배경과 연결됐죠. 북성로라는 공간에도 또한 다양한 표정이 교차해요. 제조업의 쇠퇴, 재개발. 그런 복잡한 일을 미래의 어느 때에 마주할 수도 있고. 그래서 기술자분들이 저와 제 그룹에 보내는 기대도 느껴지는데, 종종 무겁게 느껴지는 때도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자리매김하면서, 기록을 이어나갈 거예요.”

텅 빈 껍데기 같은 이미지의 홍수에 지친 이라면, 문찬미 작가가 마련한 ‘기술되지 않은 시간’ 모루 전시에서 담백한 사람 이야기로 마음을 채울 수도 있겠다. 북성로 기술자들이 건네는 미지근한 커피와 같은, 담백한 이야기가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문찬미 작가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