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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안녕하세요. 9월 26일 목요일 저녁입니다. 오늘 모임 주제는 ‘케이팝에 K는 어디에 있는가’ 입니다. 참석자는 김민호(만 27세, 백수), 유경진(만 33세, 대구쪽방상담소), 임아현(만 28세, 활동가), 조영태(만 32세, 대구참여연대), 박정빈(만 31세, 래퍼 탐쓴)입니다. 저는 진행과 기록을 맡은 김보현(만 31세, 뉴스민)입니다.
유경진: 대구쪽방상담소에서 일하는 유경진입니다. 2012년의 에이핑크가 마지막 케이팝 덕질입니다.
조영태: 경진님, 아마 그 당시 군대에 있었겠네요. 저는 대구참여연대에서 일하고요. 꾸준히 다양하게 덕질 중입니다. 요샌 뉴진스, 르세라핌, 엔믹스, 키스오브라이프, 프로미스나인 등 케이팝 아이돌을 두루 파고 있습니다.
보현: 개인적으로 돈을 써야 ’덕질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저의 마지막 덕질은 중학교 1학년 동방신기였어요. 물론 5인 체제 동방신기입니다.
김민호: 서울과 대구를 왔다 갔다 하는 무직자입니다. 오늘 입은 축구 유니폼도 덕후 느낌이 나죠. 인디밴드를 좋아합니다.
임아현: 대구에 살면서 이것저것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지역 인디밴드에 관심이 많고요. 원래 꿈은 대중음악평론가였습니다.
탐쓴: 대구에서 랩 하는 탐쓴입니다. 섭외 연락을 받고 바로 기쁜 마음으로 응했고요. 팟캐스트 같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에 꾸준히 출연하고 싶었어요. 외국 래퍼들은 자유롭게 자기 플랫폼을 만들어서 주저리주저리 얘기합니다.
#케이팝이 뭐야?
경진: 진행자가 찐덕후 아현님과 전문가 탐쓴을 섭외했으니, 저를 포함한 잔잔바리들이 먼저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대중음악 분야는 약합니다. 덕질이라고 할만한 게 제 인생에 없었고, 아까 말했듯 2012년 에이핑크, 인피니트까지가 저의 마지막 아이돌이에요. 적극적 소비자까지 나아가지 못했고요. 아까 진행자가 말한 ‘돈을 써야 덕후’라는 측면에서 보면 덕후는 아니죠.
민호: 저도 섭외받았을 때 부담이 컸어요. 아이돌에 돈을 써 본 적은 없거든요. 뉴진스로 케이팝에 입문했기 때문에 잘 몰라요. 제 전문 분야는 록입니다. 라디오헤드를 가장 좋아하고요. 린킨파크도 좋아합니다. 아현님하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가는 버스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페스티벌 셔틀만 운영하는 꽃가마라는 회사가 있어요. 2년 전 그 대구셔틀에서 만났습니다.
아현: ‘덕질을 시작했다’고 스스로 정체화한 게 12살이에요. 그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했어요. ‘난 오타쿠’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고요. 작년까진 실물 앨범이 500장 정도 있었는데 부동산 이슈로 처분을 많이 했습니다. 카라와 윤하가 큰 두 축입니다. 저의 음악 세계를 만들었죠.
일단 카라 결로 가면 걸그룹 계열이 있고요. 윤하는 당시 다양한 아티스트와 콜라보(협업)를 했어요. 에픽하이는 물론이고 김범수, 휘성 등의 가수가 저한테는 갈래로 쫙 퍼져요. 살짝 설명하면 에픽하이는 힙합으로 넘어가는 갈래가 생기고요. 그 라인으론 소울컴퍼니(과거 활동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를 좋아했어요. 윤하가 대중가수이다 보니까 성시경, 김범수, 박정현, 박화요비의 필모그래피까지 다 뚫었죠. 윤종신, 토이 라인이 있고 여성보컬인 아이유, 태연, 보아 라인도 뚫고···. 이런 식으로 대중음악, 케이팝 문화와 함께 자랐습니다. 이 주제가 나에게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죠.
탐쓴: 처음 덕질을 한 대상은 에미넴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누나가 에미넴을 좋아해서 소개했죠. 그때부터 힙합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 가수의 랩을 듣고 싶어 찾아봤는데 오버그라운드 래퍼들은 제 성에 안 차더라고요. 그래서 찾은 게 가리온이고요. 아까 아현님이 말한 소울컴퍼니가 제 뮤즈입니다.
보현: 오버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가 뭔가요?
탐쓴: 오버그라운드가 TV, 라디오 등 대중매체에 나오는 뮤지션이라면 언더그라운드는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음반 판매, 공연 등으로만 활동해요. 하지만 이젠 나눌 필요가 없죠. 파급력 큰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어요.
보현: 다양한 덕질 이야기가 나오네요. 본격적으로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전에는 ‘해외에서 인기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 정도로 소개되거든요. 그렇다면 ‘외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아이돌’, ‘영어로만 곡을 쓰는 가수’, ‘케이팝의 영향을 받은 해외 팝’ 같은 사례는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요.
경진: 이번에도 잔잔바리가 먼저 나서겠습니다. 케이팝하면 한국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 기준에 따르면 아이유는 한국의 유명한 팝 가수이지만 케이팝 가수는 아닌 것 같거든요. 지금의 ‘케이팝’은 해외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돌 음악을 주로 말하지 않나요?
영태: 역사적 배경 속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중 댄스, 힙합, 알앤비, 발라드, 록, 일렉트로닉 등을 일컬을 때 사용됐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어요. 넓게 보는 개념 같네요.
탐쓴: 저는 한국인이 팝을 하면 케이팝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선 싸이, 아이유의 음악도 충분히 케이팝이죠. 그들이 만든 곡 중 ‘팝’이라 불릴 만한 게 있거든요. 다만 특정한 음악 장르로 쓰일 정도로 케이팝이라는 영역이나 특징이 생긴 것도 같아요. 특히 해외에선 케이팝을 두고, 무리를 지어 외형적으로 매력적인 가수들이 나와서 멋있는 춤을 추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 드라마를 우리가 ‘미드’라 부르고,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를 ‘케이드라마’라 부르는 것처럼 케이팝도 어쩌면 이러한 특징이 모여서 사용되는 거죠. 기준이 모호하지만 때론 언더 래퍼 곡도 좀 팔리면 케이팝이라 분류되기도 해요. 경계가 없어진 느낌도 있어요.
아현: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케이팝보단 제이팝이 익숙했거든요. 최근에 와서야 케이팝이라는 용례가 생긴 것 같다고 느껴요. 제이팝은 특유의 전개나 스타일, 애매하게라도 떠오르는 게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케이팝에도 은연 중에 기대되는 음악의 양식이 있단 말이죠. 케이팝스러운 게 음악적으로 생겨난 것 같아요.
탐쓴: 한 곡을 수십 명이 부르기도 하죠.
아현: 맞아요. 케이팝스러운 전개에는 그런 파트 분배, 댄스 브레이크 타임이 있죠. 발라드로 보면 소몰이 창법 같은 건데, 이런 식의 케이팝만의 음악적 특색이 있어요. 케이팝을 아이돌로 국한해 보면 혹독하게 연습생을 굴려서 오랜 기간 연습을 시킨 다음 데뷔 과정에 치열한 경쟁 시스템을 붙여서 데뷔시키는 것도 포함돼요. 그다음 해외에 데뷔하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미국, 일본 시장에 있던 가수들과 다른 부분이 어필되고, 그 과정 자체가 마케팅 요소로 쓰이면서 케이팝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된 것 같아요.
#케이팝 전에 한류
아현: 케이팝 이전에 한류라는 게 있었잖아요. 그 한류를 영어식으로 표현하다 보니 ‘케이’라고 붙인 거고요. 국뽕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케이팝 좋아하는 건 국뽕이라고 좁게 보지 않고 문화적으로 잘 해석하고 전달하는 방법도 얘기해 보면 좋겠어요.
경진: 제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핵심이 바로 한류와 차이거든요. 아시아권을 넘어서 미국, 전 세계까지 팔릴 수 있냐가 중요한 거죠. 싸이와 BTS가 어떤 기점이 됐죠. 한류는 아시아권에 국한된 성공이었잖아요. 케이팝의 성공은 한국 문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점이었죠.
탐쓴: 전 좀 다르게 보는데요. 이미 그전에도 케이팝으로 불렸어요. 동남아에서 많이 따라 했거든요. 떼로 나와 춤을 춘다거나 외모를 많이 보는 등 케이팝 특징은 해외에서도 따라 하고 있었어요. 물론 BTS가 증폭기가 됐죠. BTS는 해외에서 성공한 팝스타의 스타일을 전부 분석해서 가져왔어요. 영어로 가사를 다 써버린다거나, 그 와중에도 한국적인 걸 시도해서 잘 접목했죠.
아현: 한류에서 ‘류’는 흐름이잖아요. 일본에서 한류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한국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유행, 바람이 불고 지나간 정도였다는 거죠. 반면 케이팝은 케이푸드, 케이드라마 같이 다른 문화가 함께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류랑 다르게 긴 호흡으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태: ‘케이팝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말에 대해선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구체적으로는 “외국인 멤버들로만 구성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케이팝’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인데요. 한국 엔터테인먼트 소속이고, 일반적인 케이팝 아이돌 음악 제작 방식을 취한 그룹이더라도 이런 케이스는 케이팝이 아니라고 봐야지 않나요?
보현: 관련 자료를 좀 찾아봤는데요. ‘케이팝의 현지화와 토착화: 필리핀의 SB19 사례를 중심으로’(신정원, 서울대학교)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필리핀에서 케이팝 방식과 스타일을 차용한 음악을 ‘피팝’이라 한다더라고요. 이들은 케이팝과 유사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케이팝이 아니라 자국 팝이라고 주장해요. 논문은 이런 현상을 케이팝의 토착화라 보고요. 실제 케이팝 스타일의 음악과 멤버 구성을 하는 아이돌 그룹이 ‘케이팝을 흉내 낸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은 사례도 있대요.
논문은 결론에서 “케이팝 모델은 미국 문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 노력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생산과 서구 중심적 구도를 강화한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해석해요. 흥미롭더라고요.
#케이팝에서 ‘K’ 찾기
보현: 다음 이야기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케이팝 산업에 한국적 특징이 있을까요? BTS 리더 RM이 해외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완벽주의적 특성이나 생존경쟁 체제가 케이팝의 성공 요인임을 전제한 듯한 질문을 받거든요. ‘케이팝의 젊음, 완벽에 대한 숭배, 지나친 노력 등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라고요. 굉장히 직접적이죠.
영태: ‘(여자)아이들’ 신곡을 보면서 느끼는데요. 데뷔할 땐 동양풍 노래가 많았어요. 그런데 최근 노래에선 가사 80% 이상이 영어이거나, 뮤직비디오에 외국인이 주로 등장하는 걸 보면 좀 그래요.
탐쓴: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아현: 저도요. 케이팝이라면 한국풍이어야 한다는 건 너무 뒤처지는 발상 아닌가요?
영태: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죠. 종로에서 일본어 간판과 메뉴판뿐인 가게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탐쓴: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팝이라는 용어 자체가 해외에서 왔고, 팝에서 강조되는 건 아무래도 대중성이라 생각해요. 특정 장르라기보단 누구나 듣기 좋다는 느낌을 내는 음악을 지칭할 때 쓰이죠. “이 노래 되게 팝적이다”고 말하면 ‘되게 대중적이고 듣기 편하다. 직관적이다’ 이런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영태님 이야기에도 공감해요. 저도 한국적인 걸 좋아해서 제 노래 가사는 한국어로만 쓰거든요. 사투리로 랩을 하고요. 다만 케이팝의 ‘팝’은 애초 해외에서 온 용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작해서 우리나라만의 특색이 요만큼 생긴 것 자체도 저는 충분히 한국적이라 생각이 드네요.
영태: 10년 전의 케이팝과 지금의 케이팝을 비교해 보면 경향성은 확실히 있지 않나요? 단편적일 수 있지만 당시 소녀시대와 지금의 신인 아이돌 그룹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차이가 있죠. 가사에 영어 비중이 높다거나 빌보드 차트 진입을 강조하고, 데뷔부터 해외 콘서트 중심으로만 활동하잖아요.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고 데뷔하니 외국인 멤버 비중도 늘고요.
#케이팝의 처음엔 ‘K’가 있었나
탐쓴: 팝 장르의 포인트는 대중성과 상업성이라 봐요. 예를 들어 뉴진스처럼 한국적 가치를 찾고 증명해 내는 아티스트도 물론 있지만 전 케이팝 자체를 새로운 한국이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아현: 가사를 한국어로 쓴다면 무조건 케이팝인가? 한국인 작곡가가 작곡했는데 일본어 가사로만 썼다면 그건 제이팝인가? 창작자와 제작자, 창작 환경, 소비자 등 환경에 의해 경계는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앞에서 얘기한 케이팝의 글로벌화 추세에 따라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거고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 카라도 요새 한국에서 활동을 거의 안 해요. 일본에 훨씬 팬이 많고 티켓 동원력이 좋으니 어쩔 수 없죠. 이달의소녀라는 그룹은 어쩌다 보니 멕시코에서 인기가 많아요. 한국에선 콘서트를 안 하고 월드투어만 돌죠. KARD라는 혼성그룹은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남미 쪽에 가면 공항이 미어터져요. 전부 한국인으로 구성된 그룹인데 남미 스타일의 음악을 하거든요. 가수, 창작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한다면 케이팝이지만, 남미의 박자로 음악을 만드니까 케이팝이라 볼 수 없기도 하겠죠. 이런 사례를 보면 케이팝이 한국 폼을 잃어버린다고 아쉬워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 같은 팬들 입장에선 이 가수를 오래 보려면 누구라도 팔아 줘야 하니 오히려 잘된 거예요.
경진: 케이팝 열풍의 반대급부로 한국 음악계의 장르적 다양성이 없어진다는 느낌도 받아요. 발라드나 알앤비, 힙합 같은 장르도 차트의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차트에 케이팝 아이돌 비중이 크잖아요. 주류 매체에서도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만 부각되는 것 같고요.
아현: 오늘 모임에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없어서 논의가 좁다고도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게 없어져 간다’는 말은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나왔을 걸요. SES도 처음 등장했을 때 일본 아이돌 컨셉을 가져왔다는 비판이 있었고요.
물론 한국적인 게 없어져 간다는 말로 문화를 비평하는 시도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이 안에서 이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냐’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로 전소미의 ‘fast forward’라는 곡이 있어요. 전소미라는 가수는 실제 혼혈이고 매우 이국적으로 생겼죠. 그런데 뮤직비디오에 태권도 장면이 나와요. 30여 명이 모여서 찐으로 품새를 해요. 세븐틴의 ‘손오공’, 뉴진스의 ‘디토’에도 우리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뉴진스라는 그룹이 이지리스닝과 해외 타겟팅이라는 컨셉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도 창작자들이 한국의 향수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요.
탐쓴: 100% 동의해요. 다만 저는 영태님을 좀 응원하고 싶어요.
영태: 그만해 주세요. (웃음)
탐쓴: 저도 슬픔을 느껴요. 우리 것을 덜어낼수록 우리다워진다는 게 슬프잖아요. 그래도 언어에 국한되지 않아야 할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면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시대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도 최근에는 가사에 한국어만 사용하지만, 그건 ‘저’인거구요. 선택한 사람의 기호와 전략인 거지, 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뉴진스는 누가 봐도, 자나 깨나, 앞으로 엎어지나 뒤로 엎어지나 한국에서 만든 그룹입니다. 그래서 ‘케이팝이 무엇이냐’ 질문하면 전 ‘한국인이 제작, 노래하는 팝’이라면 다 케이팝이라고 넓게 봐요.
아현: 또 하나 화두를 던지자면요. 캣츠아이라는 신인 케이팝 아이돌이 있어요. ‘C’가 아닌 ‘K’로 시작합니다. 케이팝의 정수를 담았다는 의미에서 ‘K’이고요. 한 명 빼고는 다 외국인 멤버예요. 넷플릭스에 이들의 데뷔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하이브 미국 법인의 프로듀서가 전 세계 지원자를 대상으로 ‘너희도 여자 BTS가 될 수 있어, 미국에서 데뷔시켜 줄게’라는 식으로 홍보해서 연습생을 모으고 두 달간 빡세게 보컬, 댄스 경쟁을 붙여서 나중엔 팬 투표까지 거쳐서 데뷔시킨 애들이에요. 그럼 이 그룹은 케이팝 그룹인가요, 아닌가요?
경진: 이 그룹 이름에서 말하는 ‘케이팝의 정수’라는 게 뭘까요? 하이브의 자본력과 한국식 경쟁 시스템이 캣츠아이의 ‘K’의 뜻 아닐까요.
민호: 시스템 자체가 케이팝인 거죠.
탐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봐요. 시스템이 만들어 낸 케이팝의 특징에 집중한다면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손을 대야 나오는 가수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아까도 말했던 자잘한 요소가 있잖아요. 여러 명인 경우가 많죠. 해외 팝 장르에는 원맨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유도 전 정확하게 케이팝이라 보고요. 마돈나 같은 가수도 팝 장르를 부르거든요. 해외에선 떼로 나온 그룹이 대부분 인기를 얻지 못했어요.
그 와중에 빅뱅 같은 그룹도 있잖아요. 특히 GD를 대단하다고 보는데, 한국에서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밈을 노래에 넣어요. ‘다 같이 놀자 동네 한 바퀴’, ‘여기 여기 붙어라’ 같은 구간이죠. 외국인이 들으면 멋있는 말 같거든요. 10년도 더 전부터 우리나라 것을 강조하는 부분을 넣어왔어요. 결국 아티스트의 역량 문제인 거죠. 개인적으론 YG 가수들이 이런 부분을 잘 살린다고 봐요. 싸이도 그렇잖아요.
#케이팝 이야기에 지역 얹기
경진: 마지막 이야기 주제는 진행자가 의무적으로 넣은 느낌이네요.
보현: 케이팝에서 갑자기 우리 대구 이야기로 넘어왔죠. 자연스럽게 행동해 주세요. 제가 던지는 질문은 ‘뉴진스는 전국노래자랑에 나올 수 있을까?’입니다. 말하자면 비유인데요. 아이돌 팬들이 ‘왜 우리 가수는 대구에선 콘서트 안 해’라고 푸념하잖아요.
아현: 여러분, 옛날엔 ‘드림콘서트’라는 게 있었어요. 당시 핫한 가수만 나왔죠. 아, 물론 지금도 있지만 위상이나 성격이 좀 달라졌습니다.
경진: 이분 사관 같아요.
아현: 드림콘서트처럼 지역에서도 지역 방송사를 중심으로 콘서트를 여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역 청소년들에겐 그게 아이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거죠. 그런 식으로 내수시장에 기여하던 시절이 있었죠. 이젠 아이돌 산업의 몸집이 커졌어요. ‘군’이 있거든요. JYP를 예로 들면 트와이스는 1군, 엔믹스는 2군이죠. 3군은 새로 데뷔했거나 일본에서 데뷔한 아이돌이죠. 이젠 드림콘서트에 이 3군만 나와요. 질문의 의도가 ‘전국투어를 도는지’ 묻는 거라면 우리가 아는 아이돌 중엔 그런 사례는 없을 거예요.
다만 아이돌은 콘서트를 안 하지만, 대구 같은 비수도권에서 콘서트를 하는 가수는 있어요. 타겟층의 차이인 거죠. 윤하는 대구에서 콘서트를 하거든요. 윤하는 일본에서 데뷔했지만 이젠 해외팬을 타겟으로 하는 노래를 거의 만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한국, 가끔 지역도 돌면서 팬들과 소통하려 하죠. 전 지역에서 콘서트보다도 팬미팅을 안 하게 된 문제가 더 크다고 느껴요.
탐쓴: 그런데 케이팝 아이돌과 로컬이 어울리나요? 전 원래 그런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본에선 로컬 기반 아이돌이 가능하죠. 실제 있고요. 일본의 지역 기반 아이돌이 다른 지역에 가서 공연하더라도 어쨌든 로컬에 돌아와서 (지역 팬들에게) 보답해야 하죠. 하지만 한국의 케이팝 아이돌은 그럴 의무도 없고, 일단 좀 안 어울린달까요.
덧붙이자면 일본에 지역 기반 아이돌 산업이 가능한 건 시민의식 영향도 있어요. 아날로그를 사랑하고, 그 연장선에서 CD를 구매해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문화가 있어요. PC방에 가고, 술 마시러 가는 것처럼 ‘심심한 데 주말에 지하아이돌, 지역아이돌 공연 갈래?’가 가능한 거예요.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죠. 그래서 로컬 아티스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고요. 이렇게 말하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일본은 로컬 문화가 있고, 우리는 로컬 문화가 없어요.
아현: 한국은 좁기 때문에 그냥 다 로컬이에요.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서울에서 소비되는 문화가 전국에 동일하게 미치는 영향이 있다 생각합니다. 잠깐 돌아가서 팬미팅을 지역에서 안 하는 게 왜 문제냐면 교보문고나 핫트랙스, 신나라 레코드 같은 오프라인 음반 매장들이 망하면서 기세가 기울고, 이런 현장의 팬사인회 같은 자리가 지역에 생길 수 없다는 환경도 있어요.
탐쓴: 더해서 KTX가 발달한 영향도 있죠.
영태: 아이돌을 떠나서 문화예술 영역 자체에서 지역성이 약화되고 있잖아요.
탐쓴: 죽을 맛이죠.
영태: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다 이젠 서울에서 해외로 나가요.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탑승하기가 더 어려워지죠.
아현: 그래서 제가 최근 일본까지 카라 콘서트를 보러 다녀왔죠.
영태: 예전엔 팬사인회, 드림콘서트처럼 아이돌, 나의 우상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그나마 있었는데 이젠 로컬이 사라지고 서울, 넘어서 해외까지 가야 하네요. 접근성은 계속 떨어지고 비용은 점점 늘겠군요.
탐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대구 힙합, 인디밴드 훑기
아현: 자연스럽게 지역의 아티스트 이야기로 넘어 가볼까요. 지역 인디 가수들의 그라운드가 보장돼 있느냐는 문제까지 얘기해 주시죠.
탐쓴: 아이돌은 이제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넘어갔어요. 애초 그 영역 자체가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요. 로컬 아티스트 입장에서 말하자면 너무 부럽고 대단한 거죠. 전 지역 아티스트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긴 시간 활동하고 있으니까, 가령 우연히 릴스로 대박 나서 수억 원을 벌어들인다면 의리를 지키러 대구로 돌아오겠지만, 그냥 출신이 대구일 뿐 가수들 입장에선 그런 행위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대구에서 실제로 거주하며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또 현재까지 발매한 정규도 여섯개 가량 되는데요, 그러나 지역이 오히려 지역 가수를 더 안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어요. 어쩔 수 없죠, 무조건 인지도 순으로 가수를 부르려고 하거든요. 이해는 하지만 로컬이 있길 바라면서 음악을 하는 청년이라 여러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현: 힙합신과 밴드신은 느낌이 또 달라요. 대구에선 힙합 페스티벌이 지역 대표 축제로 알려져 있거든요. 대구 사람들이 ‘우리 청년 문화를 자랑한다’고 할 때 힙합 페스티벌을 꼽곤 해요.
경진: 왠지 시장님이 그럴 것 같네요.
아현: 유구한 역사가 있죠. 하지만 그게 실제 지역 아티스트들과 연결되는 고리는 많이 부족해요. 반면 밴드는 신(영역)이 있어요. 다만 매우 작죠. 진행자가 사전에 준 질문 ‘시장이 점점 축소되고 있지 않냐’에 대해선 전제가 잘못됐다고 답하고 싶어요. 축소할 만큼의 볼륨이 없죠.
보현: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본인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 자체는 더 많아지지 않았나요?
민호: 플랫폼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글로벌하니까 오히려 더 접근할 수가 없어졌죠.
탐쓴: 맞아요. 메이저에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죠. 유튜브 예능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이미 유명한 연예인들이 넘어오면 못 이겨요. 플랫폼이 다양해져 봤자…. 오히려 예전처럼 매체가 덜 발달해야 로컬이 힘을 써요. 힙합이든 밴드든 마찬가지죠. 소울컴퍼니가 예전에 인기 있었던 건 마이너한 영역을 찾아 듣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나만의 소중한 보석’ 같은 느낌인 거죠. 예를 들어 ‘쇼미더머니’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더 이상 동네에서 좋아했던 형, 오빠들을 더 들을 이유가 없어요. 상대적으로 이제 더 이상 멋이 없는 거예요.
메이저하게 잘 나가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의 앨범과 곡들을 찾아 듣기도 바빠요. 굳이 로컬에서만 활동하고 앨범 수도 적고 애매한 가수의 노래를 듣지 않는 분위기가 된 거죠. 힙합신이 특히 심해요.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랩퍼블릭 등 프로그램들이 가장 장수했고 가짓수도 다양하죠.
아현: 예전엔 디깅(덕질)하는 게 좋았죠. 한 가수, 한 곡을 파고 들어가는 과정을 행복하게 즐기는 문화 영역이 있었거든요. ‘남들과 다르게 난 이 앨범을 다 듣겠어, 즐기겠어’라는 걸, 쇼미더머니는 못 하게 해요. 사람들 입맛에 맞게 다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원하는 장르를 찾아서 충분히 느끼고 향유할 시간을 안 주는 거죠.
탐쓴: 전 쇼미더머니11 이전 시즌 동안 한 번도 안 나갔어요. 마지막에 곧 폐지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경험이라도 해보자고 나갔죠. 나가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이제 진짜 음악은 쇼구나’라고요. 거기 있는 수많은 사람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어요. 어린 애들이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신기했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당연한 시대구나 싶으면서, 좋은 앨범이 나왔다고 디깅해서 듣는 건 힙합신에 이젠 거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노이즈 마케팅으로 뜨거나 극소수 음악성을 인정받고 뜨는 경우 아니면 힙합신은 초토화됐어요. 신인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됐죠.
아현: 힙합신에 국한해서 얘기할 순 없는데 단순히 음원 하나, 디지털 싱글이 아니라 좋은 퀄리티의 앨범을 만들어 내는 래퍼들, 힙합신의 용감한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탐쓴: 힙합 얘기가 길어지는데, 지금 인디밴드 신이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이 나오기 직전 힙합신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밴드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인 ‘탑밴드’는 잘 안됐잖아요 쇼미가 11시즌이나 간거에 비하면. 근데 만약 잘 됐다면 밴드신도 결국 힙합신처럼 같은 결말을 맞았을 거예요. ‘찾아 듣는 맛이 없는’ 느낌으로요. 어쨌든 쇼미더머니가 최장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돼서 신은 많은 변화를 맞았고, 이젠 기성세대가 이끌어주는 형태 말고는 등용이 안 돼요. 그런데 뭐, 백날 이런 얘기해 봤자 ‘네가 못 해서 못 뜬 거지’라는 얘기밖에 못 듣거든요. 그래서 그저 될 때까지 입 닫고 앨범을 내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까지 하는 것 같아요.
아현: 대구의 인디밴드 신을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제임스 레코드인데요. 술집이면서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공연 기획을 하면서 지역 아티스트 음악을 컴플레이션, LP로 제작해요.
탐쓴: 떡볶이가 맛있죠. 힙합신과 다르게 밴드신은 로컬 문화가 확실히 있고, 특히 대구에선 제임스 레코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아현: 전 안타깝기도 해요. 또래 청년들과 얘기해 보면 대구에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다고 하거든요. 맞는 말인데도 가슴이 아프죠. 서울 혹은 수도권, 페스티벌 위주로 팔리는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파이가 커질수록 지역의 인디밴드는 어쩔 수 없이 소외당하고 소비할 수 있는 영역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잖아요.
영태: 대구 도시 브랜드가 답답하고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아현: 부산에 ‘보수동 쿨러’라는 밴드가 있어요. ‘보수동’이라는 지명이 밴드 이름에 들어갔죠. 그런 걸 보면 브랜드는 그룹이 만들어 나가는 게 큰 것 같아요. 그룹이 정체성에 ‘지역’을 포함하는가 여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거죠.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유
보현: 마지막 질문입니다. 각자가 케이팝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눠볼까요?
경진: ‘치열함, 끈기, 투지’를 꼽겠습니다. 제가 케이팝에 눈이 뜨였던 이유였던 것 같아요. 학대에 가깝다는 논의도 일부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동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죠.
민호: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을 생각해 왔는데요. 뉴진스 음악에는 ‘250’과 ‘프랭크’가 있죠. 케이팝에 케이가 없어진다는 얘기를 한참 나눴지만 한편으론 다양한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태: 전 ‘위로’라고 하겠습니다. 케이팝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오늘 이야기 나누면서 케이팝에 케이가 없어진다는 딴지를 거는 것도 제가 나이 들었다는 방증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현: 유튜브 콘텐츠 가운데 유난히 한국에서 잘 되는 게 ‘성장’을 담은 콘텐츠라고 해요. 예를 들어 처음엔 턱걸이를 한 개도 못 했는데 한두 달 뒤에 서너 개를 하는 거죠. 이게 케이팝 문화에도 잘 녹아든 것 같아요. 성장형 아이돌, 연습생 신화, 연습생일 때 잘했는데 데뷔하고 보니 더 잘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저도 그런 성장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껴요. 그들이 열심히 사는 걸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탐쓴: ‘진흙 속에서 피운 꽃’, 제가 좋아하는 힙합곡 제목입니다.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도 개인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게 케이팝 같아요. 박태환, 김연아, 박지성, 손흥민 같은 스포츠 스타는 실제 성과도 냈지만 시스템을 넘어선 개인의 노력으로도 주목받잖아요. 아이돌도 같다고 생각해요. 조그만 땅덩어리,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한강의 기적을 계속해서 이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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