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운동가들] 예술로 금호강을 디디다, 서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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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때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사회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운동가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사회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은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제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를 씁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며 자신과 대립하는 정치인과 싸우기 위해 운동가들을 몽땅 폄훼하기도 합니다. 운동권이라는 어원은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나선 학생운동가를 고립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였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기득권으로 살아가지 않았고, 또 일부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오늘날까지 사회운동을 이어가는 운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 사회운동을 시작한 운동가들도 있습니다. 2024년, <뉴스민>은 매달 1980년대 사회운동을 시작한 운동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운동가들의 삶과 더 나은 공동체를 바라는 운동가의 고민을 듣기로 했습니다.

삼덕동은 골목마다 힙한 카페와 술집이 이어진다. 평일 오후 빛바랜 간판의 슈퍼 앞 노상에선 60대 남성 두 명이 종이컵에 따른 막걸리를 마시고 건너편 카페의 흰색 차양 아래에는 헐렁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대기번호판에 이름을 쓰고 서 있었다. 통창의 미용실, 줄 서는 식당, 원룸 빌라촌, 폐지 실은 트럭, 외제차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우러진 골목의 끝, 구석 깊숙한 곳에 서민기의 집이 있다.

‘삼덕동 각진집’이라는 이름의 이곳은 서민기와 친구들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가끔 공연과 모임, 대관 행사도 열린다. 활짝 열어 놓은 대문을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금호강 디디다’라고 적힌 그물 조끼가 보인다. 천을 덧대 꿰매어 글자를 표현했다. 집에 들어서면 한눈에 거실이 들어온다. 커다란 데스크탑과 곳곳에 놓인 국악기들, 불규칙하게 붙은 글과 그림, 오래된 책장과 무지개 깃발, 문 대신 달린 커다란 천과 욕실의 친환경 제품들…. 시끄럽게 사람에 대해 말하는 공간이다.

서민기(35)는 국악인이다. 피리, 태평소, 생황을 연주한다. 20대에 음악만 한 그는, 30대 들어 다시 지역을 만났다. 대구는 고향이지만, 그뿐이었다. 대학 졸업 뒤 자연스럽게 국악인이 됐고 종종 대구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금호강을 만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시민단체 동료가 늘었고 함께 책을 썼다. 그가 운동가로 거듭난 과정이 궁금했다. 성명문과 구호를 넘어 예술로 표현하려는 그의 운동도 궁금했다. 2일, 삼덕동 각진집에서 서민기를 만났다.

▲10월 2일 오후 ‘삼덕동 각진집’에서 서민기를 만났다.

국악을 하다
예술인들과 교류하다

‘음악을 한다’는 건 서민기의 변하지 않은, 변하지 않을 정체성이다. 어릴 땐 피아노를 쳤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사촌언니의 권유로 피리를 알게 됐다. 그때 국악이 삶에 들어왔다. 피리와 태평소는 국악관현악 중에도 소리가 가장 크다. 선율을 끌어간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경북대학교 국악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웠거나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동기가 70% 이상이었다. 그들에겐 국악이 익숙했다. 그 틈에서 서민기는 ‘새로 배우는 것의 즐거움’에 빠졌다. 순수하게 악기를 잘 연주하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전문 연주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예술 노동의 특성상 프리랜서 신분이었다. 선배 연주자의 사업에 포함돼 정기 연주를 하거나 요양병원, 어린이집, 복권기금의 찾아가는 음악회 공연도 했다. 축제장이나 행사의 무대 공연도 했다. 국악기를 알리는 수업도 간간이 들어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주로 여러 팀에 동시에 소속돼 일을 했다. 전통음악을 하면서 피아노나 기타 같은 밴드, 전자음악과 결합하기도 했다. 그중엔 퓨전국악 밴드 ‘나릿’도 있었다. 대구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국악으로 풀어내며 음악장르에서 조금 더 확장된 작업을 주로 했다. 4-5년가량 활동했지만 당시만 해도 ‘연주자’라는 정체성 이상의 의미를 찾진 못했다.

2016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을 통해 경험의 폭이 좀 더 확장됐다. 예술인과 기업·기관의 매칭으로 다양한 예술직무 영역을 개발하는 예술인 복지 사업이다. 예술인은 다양한 예술인과의 협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생계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기업·기관은 예술을 통해 혁신의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참가하며 서민기는 미술, 싱어송라이터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예술인을 만났다.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어요. 리더예술인, 참여예술인으로 나뉘는데 저는 리더예술인으로 활동했어요. 6개월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끌고 가는 역할을 했죠. 대기업인 아시아나항공, KTDS (KT의 IT서비스 자회사)와 매칭됐고 제주의 1인 건축기업, 디아크문화관과도 작업을 했어요. 대구여성가족재단과는 근대골목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반지길 전시 프로젝트를 했죠. 프로젝트 방향을 설정할 때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진행 과정에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시민사회와 접점을 늘려가다
금호강에 서서 대구를 보다

경험이 쌓이면서 서민기는 ‘음악을 연주하는 플레이어’에 ‘기획자’라는 정체성을 더하게 됐다. 이전까진 무대에서 ‘무엇을 연주하는지’에 집중했다면 어느 순간 ‘어떤 무대인지, 어떤 역사와 배경을 갖는지’ 부터 관심이 갔다. 2022년 우연히 참가한 N맥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대구의 제로웨이스트 카페 ‘더커먼’ 매니저로 일하던 시기였다. 더커먼은 단순히 공간으로 작동하기보다 문화 기획, 비건 실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커뮤니티로 역할 한다. N맥 페스티벌을 함께 해 온 단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더커먼에서 일하며 비건 생활을 지향하게 된 서민기는 피리를 연주하며 N맥 페스티벌 활동가들과 동성로를 걸었다.

그의 연주를 본 이명은 생명평화아시아 활동가는 금호강을 떠올렸다. 생명평화아시아는 금호강의 생태계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현장조사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를 음악으로 풀어보면 좋겠다는 이 활동가의 제안에 파타고니아 후원이 더해져 ‘언제나 같은 꿈을 꾼다’라는 아트필름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을 하면서 서민기는 금호강이 좀 더 알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될 즈음 대구를 떠나고 싶었어요. 음악적 실험을 함께할 동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가장 컸죠. ‘떠나자, 집 없는 노마드로 살아보자’고 결심한 뒤 에어컨부터 팔았어요. 생명평화아시아의 연락을 받고선 금호강이 궁금해졌고, 떠나겠다는 마음을 일단 넣었죠. 솔직히 말하면 금호강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금호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과 음악으로 담아달라는 게 생명평화아시아가 의뢰한 내용의 전부였죠. 작업을 할수록 점점 궁금한 게 많아졌어요. 평소 소통하던 동료들에게 함께 하자 제안했고, 영화 감정원, 미술 민주, 디자인 안지경, 연극 이지수 그리고 음악하는 저까지 다섯 명이 모였어요. 활동 계획은 한 가지였죠. 일단 금호강에 직접 가보자.”

대구시는 5,400억 원을 들여 금호강 주변을 개발하는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대표 공약 중 하나다. 지역 환경단체는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와 한경단체 자문을 거쳐 개발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민기와 동료들은 금호강 인근을 걷거나 1박 2일 조류 답사에 참여하면서 강을 느꼈다. 2023년 한 해 동안 영상과 음악으로 금호강을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그럼에도 갈증이 났다.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자고 생명평화아시아에 역으로 제안했다. 5명의 예술인이 금호강에 계속해서 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활동이 될 수 있을 거라 봤다. ‘금호강 디디다’라는 이름도 이때 나왔다.

▲지난해 11월 대구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열린 대구지방환경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서민기 (사진=석민상)

“디디다는 ‘두 발로 직접 걷겠다’,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다’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예술인 지원 사업에 꽤 오래 참여했는데 팀명을 붙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만큼 마음가짐이 달랐던 거죠. 지역에서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끈끈한 동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대구라는 지역과 그 속의 자연과 내가 진하게 연결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개발은 이들에게 주요 화두가 아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교감해서 자연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풀어내다 보면 현안에 대한 대응은 따라올 거라 봤다. 처음 달성습지에 간 이들은 가만히 섰다. 강과 나무, 돌을 마주하니 ‘어쩌라고’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식생 활동가와 다시 강을 찾아 ‘강과 연결된 모든 곳이 강’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 안의 구성원이 보였다. 팔현습지 공사 이슈로 지역 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걸 보며 이들은 그곳에 사는 생명을 떠올렸다. 왜가리, 왕버들군락, 흰목물떼새 등 각자 하나의 생명을 맡아 종이에 그들의 말을 상상해 적었다. 이를 ‘팔현반상회’라는 그림대본집으로 엮었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결과물들이 나왔다. 결과물은 낭독회, 팔현습지 탐방 프로그램 등으로 이어졌다.

금호강이 더 궁금해지다
연대와 운동 방식을 고민하다

“올해로 넘어오면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지, 지원이 없어도 금호강의 이야기를 할지 디디다 멤버 다같이 깊이 토론했어요. 직업 특성상 대구를 떠날 수 있고 다른 작업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진 하자는 결론이 나왔어요. 모두가 진정성 있게 접근했기 때문 같아요. 강은 계속 흐르고 개발도 계속될 거잖아요. 계속 강이 궁금해요. 연출하는 친구는 강에 온 사람들의 표정이나 대화 소리가 궁금하다고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강가의 자연물이 가진 모습, 잎의 모양,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의 소리가 궁금해졌죠.”

디디다 팀이 올해 과제로 삼은 건 ‘수집생활’이다. ‘있는 그대로도 재밌는데 왜 자꾸 개발해야 할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41.5km 정도 되는 금호강 전 구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집하는 작업이다. 강에 있는 나무나 돌에 뜨개질로 싸개 작업을 하거나, 그곳이 담고 있는 소리를 모으는 식이다. 강에서 할 수 있는 놀이, 강을 있는 그대로 즐길 방법을 디디다의 시선으로 알리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전 구간에 거쳐 수집을 기록하고 이후에는 수집된 거점들을 이어 강 끝에서 끝까지 걷는 행진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지금도 기자회견 자리가 어색해요. 빨간색 글자와 현수막이 아름답지 않잖아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 진행도 어색하다 느끼는 요소예요. 반대만을 외치는 환경단체의 기존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래도 조금씩 변주를 주면서 제 나름, 디디다 나름 다른 방식을 찾아 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회견 발언에서 가면을 쓰고 ‘저는 수리부엉이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식이죠. 수리부엉이의 발언이 끝나면 ‘수리부엉이를 지켜주세요’를 세 번 외치기도 했어요.”

▲지난 8월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에서 진행한 수리부엉이클럽. (사진=백승)

작년 10월엔 팔현습지에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배치해 피크닉을 열었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몸으로 표현하거나, 팔현반상회 책을 함께 읽은 뒤 각자가 느낀 점을 나눴다. 기자회견은 아니지만 참가한 시민과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금호강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디디다의 활동이 개발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우리 편을 늘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더 많은 이에게 가닿을 방법을 고민했다. 서민기는 팀 차원의 활동과 별개로 기존의 활동단체나 활동가들과 연대에도 의지가 있다.

“디디다 활동을 넘어 연대하고 돕는 것도 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불편하지만 기자회견장에 가서 서 있기도 하고, 올해는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님 제안으로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죠.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하죠. 뜻에 동의하지만 생계를 위한 나의 일이 있고, 그러다 보면 온전히 돕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해지는 순간을 만나요. 갑자기 일을 만들고 해내는 방식도 제가 일해 온 스타일과 다르니까 불편함이 있었어요. 기자회견이 대표적이죠. 작년엔 내 안의 고민으로 힘들었는데 올해는 나름 답을 찾아가고 있어요. 동료들과 우리 방식의 활동을 이어 나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우면 되겠구나. 하지만, 여전히 어려워요.”

서민기는 불과 1여년 사이 금호강에 진심이 되어 버렸다. 올해 3월에는 디디다를 넘어 더 큰 연대체로 모인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을 출범했다. 개개인의 마음을 넘어 직접 행동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현재 8명의 예술가가 속해 있으며, 팔현습지의 소식을 각 작가의 시선으로 알리는 ‘월간팔현’과 함께 답사하는 ‘수리부엉이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곧바로 답이 나왔다. “활동가 정의를 찾아보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힘을 쓰는 사람이라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도 활동가일 수 있겠다 싶어요. 사실 저는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렸어요. ‘연주자’랑 달리 엄청 큰 이름 같이 느껴지잖아요. 지금은 ‘내가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예술의 한 장르를 하고 있다’ 생각해요. 활동가라는 말이 제 입에서 편하게 나오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지금의 서민기에게 예술가과 활동가로서의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에서 흐르는 금호강을 걸으며 대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고, 이를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작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금호강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

“작년엔 활동가와 예술가가 뭐가 다른지 많이 고민했어요. 제 나름 정리한 건 이래요. 물론 일반화할 순 없지만 활동가는 ‘이 사안에 반대합니다. 규탄합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예술가는 이 사안에 대해 보이고 들린 걸 전하고 그 안에 담긴 내 생각을 말해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넌 어떻게 생각해?’ 질문을 던지죠. 근본적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다는 건 같죠. 운동 방식에 대한 고민도 여기서부터 시작했어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